* 이길 수 있는 것

이 정도면 됐어… 라는 말이 가장 싫다 "야구든 인생이든 만족하는 순간 끝

modest-i 2014. 12. 13. 19:36

'野神'… 김성근

이 정도면 됐어… 라는 말이 가장 싫다 "야구든 인생이든 만족하는 순간 끝"

야구는 내게 짝사랑
쫓아다녀도 쫓아다녀도 결국 못잡는 여자 같아…'
됐다'하는 느낌이 없다… 죽을 때까지 야구할 것

선수 혹사하는 구식 야구?
비상식적 발상 않고서야 약팀이 어찌 승리하겠나
한계 넘고, 한계 또 넘고…그래야 새 길이 열린다

어떤 마을에 반년이 넘도록 비가 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기로 했다. 사람들이 산 중턱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올 무렵 기다렸다는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기쁘기는 했지만 빗속에 산에서 내려갈 일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우산을 준비해온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다섯 살 아이였다. 놀란 이장이 어떻게 우산 가져올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기우제를 지내면서 어떻게 우산도 준비 안 했어요?"

'야신(野神)' 김성근(72) 한화 이글스 감독은 그의 책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이와우)에서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인용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동시에 왜 평생 오로지 야구만 생각하며 살았다는 이 야구 감독이 리더십 강연으로 인기를 끄는지도 알 것 같았다.

9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바(bar)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김성근 감독
김성근 한화 감독은 요즘 인기 강사다. 야구 감독 경험을 통해 체득한 리더십 원칙을 강의하는데, 청와대를 비롯 기업, 대학 등에서도 강연을 한다. 주제는 리더의 책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 그는 선수들에게도 강의를 한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다. / 오종찬 기자
◇죽을 때까지 야구 하겠다

불쑥 물었다. '소원이 뭔가.'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죽을 때까지 야구 하는 것이다."

―욕심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인생이란 욕심을 좇아다니는 것 아닌가."

―야구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가.

"야구는 순간 자체에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으니까 순간순간 싸운다고 할까. 변화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재미있다. 야구 감독은 순간순간 움직인다. 순간 결정해야 하니까 갈등이고 뭐고 없다. 그게 재미가 아닌가 싶다."

―당신에게 야구는 무엇인가.

"짝사랑 같은 느낌이 아닌가 싶다. 쫓아다녀도 쫓아다녀도 못 잡는 여자. 결말이 없다. 야구는 '됐다' 하는 느낌이 없다. 가도가도 문제가 많다."

―야구 감독을 하며 느끼는 재미는.

"선수들을 가르칠 때 언제나 새로운 문제가 나온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독은 스스로가 순간순간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족이란 야구 감독의 세계에는 영원히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유와 만족이란 단어가 제일 싫다고 했다.

"만족한다는 것은 타협한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됐다'고 하는 거다. 인생 살면서 '이 정도면 됐다'고 하는 건 하나도 없다. 끝이 없는 거다."

―그쯤 되면 병 아닌가.

"모든 일이 그렇지만, 한 가지에 미친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다."

―야구 감독으로서 이루지 못한 게 있나.

"일본이나 메이저리그에 가서 감독 하고 싶다. 버티고 있으니 기회가 오겠지. 일본에서 오라는 권유가 서너 번 있었는데 다른 계약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못 갔다."

◇인기 리더십 강사가 된 비결

―요즘 인기 강사로 유명하다는데, 왜 사람들이 김 감독의 강연을 듣고 싶어할까.

"특수해서 그렇겠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건 몸을 안 사린다는 거다. 내 목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게 내 힘이다. 내 목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에게 맞춰 살 수밖에 없다."

―최근 청와대 강의는 어떤 내용이었나.

"조직을 위해서 나를 바쳐라. 조직에 플러스가 되면 나에게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과감하게 시도하라고 했다. 인간이란 조직에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자기한테 플러스가 되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청와대에) 일하러 간 거지 일자리 찾아간 건 아니지 않은가. 자신에 마이너스가 돌아오더라도 조직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라고 했다."

―리더로서 김 감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선수를 너무 혹사해서 감독만 살고 선수는 죽는다는 얘기도 있다.

"인생이란 모 아니면 도다. (탁자 위의 작은 녹음기를 집어들고) 이만한 아이가 있다고 하자. 영원히 이대로 살고 싶어한다. 그럼 적당히 살면 된다.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이 아이가 (더 큰 사이즈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이렇게 달라지고 싶어하면 목숨을 건 결단을 해야 한다. 더 노력해서 달라지든지 망가지든지. 거기서 내가 손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김 감독은 선수들을 '아이' '애들'이라고 불렀다.)"

―'혹사'라는 표현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밖에선 내가 선수를 혹사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말에 신경 안 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현재 자기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오버워크(혹사)하면서 그걸로 한계를 새로 설정하고 또 오버워크하면 한계는 점점 더 높아진다. 그것이 내가 팀을 만들어가는 방법이고, 나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혹사라고 하고 선수를 망가뜨린다고 하지만, 거기에 도달하지 않으면 사람을 못 만든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에선 좀 구식의 무리한 방법이란 느낌이 든다.

"호랑이가 있는 굴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비상식적인 발상이 아니면 새로운 걸 얻을 수 없다. 상식적인 발상, 상식적인 행동으로는 세상에서 이기지 못한다. 비상식적인 것에 새로운 길이 있고 거기서 새로운 결과가 나오는 거다. 그걸 시도할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선수들 훈련시키면서 스스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제일 중요한 건 원하는 목표까지 가는 것이다. 처음에 좀 고생할 때 불쌍하다고 동정해주면 선수를 못 만든다. 비정함을 갖지 않으면 조직이나 사람은 못 만드는 거다. 중간에 불쌍하다고 달래주면 아이는 목표한 데까지 못 간다. 그게 진짜 불쌍해지는 거다."

―김 감독은 하위 팀과 꼴찌 팀 조련사로 유명하다. 하위 팀들엔 분명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을 철저하게 못 하는 게 문제다. 당연한 일이란 무궁무진하게 많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눈 마주치면 인사해야 한다. 타자는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해야 하고, 상대와 싸울 때 머릿속에 데이터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당연한 걸 철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게 안 되면 조직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

―꼴찌 팀의 성장 과정은 분명 드라마틱하지만, 야구 팬 중엔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재미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일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승부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거다. 지려고 하는 게 아니다. 세상 사람들 입맛에 맞춰 승부하다가는 진다. 지면 그 손해는 선수에게 간다. 내가 앞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조직이 이기면 된다. 조직에 플러스 되면 나에게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한다. 내가 청와대 가서 말한 것도 그 얘기다."

―'이기는 야구'에 대해서도 찬반이 갈리던데.

"내가 하는 야구가 더럽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더럽든 지저분하든 이겨야 한다. 승부의 세계란 원래 그런 거다. 룰 안에서만 행동하면 된다. 투수를 10명 바꿨다고 뭐라고들 하지만 10명 바꾸지 말라는 룰은 없다. 10명을 바꾸더라도 이기면 된다. 세상 사람이 뭐라고 하든."

―지더라도 속 시원한 야구, 지르는 야구가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에서 최고 행복이 뭔 줄 아는가. 부족함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가난한 팀에서 결과를 내놓는 게 즐거움이다. 나는 약한 팀에 갔다고 해서 비관해본 적이 없다. '이 팀이 약하니까'라는 말을 해본 적도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저분한 야구가 재미없다고 해도 우리 집에선 그게 베스트 살림인 거다. 남이 뭐라고 한다고 거기에 맞춰서 살면 그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패배는 감독과 선수의 합작 아닌가.

"패배는 감독 잘못이다. 야구는 선수가 한다고 그러지만 선수를 배치한 사람이 나다. 작전과 선수 교체 등 모든 것이 다 내 발상에서 나온다. 야구는 감독 책임이다. 감독이 야구 하는 거지 선수가 야구 하는 게 아니다. 야구는 결국 사람을 적시에 적재적소에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이다. 다들 나보고 냉정하다 어떻다 말이 많지만 나는 실패에 대해선 말을 안 한다. 실패했을 때 비난하고 원인 추궁해봤자 팀으로서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누군가 잘못했을 때 실컷 야단치면 결국 감정의 응어리만 남는다. 조직으로선 마이너스이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풀어가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대전 중구 부사동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한화이글스 감독 취임식
김성근 감독이 지난 10월 28일 대전 중구 부사동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한화이글스 감독 취임식을 가진 뒤 팬들과 악수하고 있다. / 신현종 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