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神'… 김성근
◇가족 반대 무릅쓰고 한국으로
―일본에서 야구 명문고 가고 싶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갔다고 들었다.
"집에 돈이 없어서 아예 고등학교를 못 갈 뻔했다. 큰형님이 가고 싶으면 공립학교 가서 네가 돈 벌어 다니라고 했다. 그래서 야구와 별 인연이 없는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해 야구부로 활동했다."
―야구 선수 할 땐 발이 느려서 새벽에 우유 배달하며 하체 힘을 키웠다고 하던데.
"내가 발이 어마어마하게 느리다. 100m 뛰는 데 16초, 17초 걸렸다. 우유 배달한 건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학교에서 학비미납자명단을 전교생이 볼 수 있도록 붙여놨다. 너무 창피해서 야구부에서 연습하다가 제일 늦게 학교를 나오면서 그 명단을 뜯어서 집에 갔다."
―한국말은 일본에서 배웠나.
"한국에 올 땐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기업은행 야구단 들어가면서 명동 생맥줏집에 자주 갔는데, 거기서 술 마시며 한국어를 배워서 그런지 지금도 발음이 나쁘다."
―한국으로 올 때 가족들이 반대했나.
"부모 형제의 반대를 뿌리치고 왔다. 1964년 일본을 떠날 때 모친이 '이 결정은 네가 한 거니까 네가 책임져라'고 했다.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이 결정에 대해선 내가 책임진다'는 것과 '대한민국 최고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언제 최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징크스가 많다던데 마음이 약한 건가.
"식당, 길, 양복, 옷 입는 방법에 모두 징크스가 있다. 이기면 그대로 계속하고 아니면 안 하는 식으로. 결국 기대고 싶은 거다. 다른 거엔 기대지 않는데 이런 거엔 기댄다.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깊으니까. 사람은 약하다. 강한 사람도 내면은 약한 거다."
―책을 많이 읽나.
"선수들에게 매일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본다. 야구에 파묻히면 길이 하나가 되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선수들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 책을 읽는다."
김 감독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자신의 책 속표지에 '일구이무(一球二無)'와 자신의 등번호 '38'을 쓰고 서명해주면서, "일구이무는 준비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회는 한 번뿐이니까 그걸 잡으려면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은…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다.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는 그의 스타일을 놓고 선수와 팬들, 구단 관계자들은 칼로 베어낸 듯 지지와 비판 입장이 갈린다. 하지만 누구도 그가 맡은 팀이 돌풍을 일으킬 것이란 점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2006년 전체 8개 팀 중 6위였던 SK는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자마자 2007· 2008년 2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다.
김 감독은 프로·아마 야구를 오가며 수없이 해임됐다. 가장 최근엔 SK 감독을 하다 '잘린' 후 독립야구단인 고양원더스 감독을 했지만 팀이 해체됐다. 지난 10월 한화 감독이 됐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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