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현실주의 성향의 미국 국제문제 전문지가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인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장군 5명 중 1명으로 꼽았다.
미국의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TNI·THE NATIONAL INTEREST)'는 지난 11월호 '혼돈의 지휘관들(Commanders of Chaos)‘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장군 5인을 선정했다. 맥아더는 여기서 네 번째로 소개됐다.
TNI는 워싱턴에 있는 신보수주의 계열의 싱크탱크 미국이익센터(Center for the National Interest)가 발행하는 격월간지이다.
TNI는 “맥아더는 용감한 전사였으며, 최악의 장군 선정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의 화려한 업적 이면에 최악의 장군이라는 의견 또한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맥아더가 최악의 장군으로 꼽힌 이유로는 그의 몇가지 결정적인 판단 착오가 거론된다.
TNI는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 필리핀 사령관으로 있었던 맥아더 장군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의 다음 목표가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임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도 보유 전투기를 제때 산개하지 않아, 일본의 전투기 공격에 한꺼번에 공군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당시 맥아더는 일본군의 공격에 필리핀 코레히도르섬 사수에 실패하고 호주로 탈출했다.
6·25 당시에도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을 수세로 밀어넣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에는 전략적 실책을 범했다고 TNI는 분석했다.
서울을 수복한 뒤 너무 성급하게 북·중 국경지대까지 진격하는 바람에 중국의 개입을 불렀다는 것이다.
맥아더가 평양까지만 북진하고 대기했다면,
마오쩌둥이 미국의 중국 침공을 우려해 6·25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맥아더는 2차 대전 이후 보기 드문 압도적인 승리(인천상륙작전) 직후에 굴욕적인 후퇴를 해야했다.
맥아더가 상부의 지시에 불복한 점도 그가 최악의 장군으로 뽑힌 한 이유다.
맥아더는 중국이 개입하자 중국에 핵폭탄을 투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5억5000만 중국인의 목숨을 담보해야하는 것은 물론,
소련과 전쟁을 각오해야하는 위험한 생각이었다고 TNI는 지적했다.
TNI는 “이러한 생각 자체가 전선의 장군이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맥아더를 경질했다”고 썼다.
TNI는 맥아더가 뛰어난 군인이었음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맥아더가 좀 더 현명한 판단을 했다면
현재 한반도의 거의 전부가 대한민국 정부 통제 하에 놓여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독립전쟁 때 활약했던 허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맥클레런(George McClellan),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에르빈 롬멜(Erwin Rommel)에게 완패했던 전차부대장 로이드 프레덴덜(Lloyd Fredendall), 2003년 이라크전을 지휘한 토미 프랭크(Tommy Franks) 전 미 중부사령관 등도 맥아더 장군과 함께 최악의 장군 5인에 선정됐다.
유엔의 결의에 의해 한반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기 위한 통합군이 구성됐다. 1950년 7월14일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유엔 깃발을 전달받고 있는 맥아더 장군(오른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