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보는 자기가 영국에 가서 직접 현지상황을 보고 정보를 수집해서 무전(당시는 모올스 신호)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페인 사람이 영국에 가기는 어렵지 않았으므로 독일 첩보원은 가르보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는 영국에 가지 않고 이웃나라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도서관, 신문, 잡지 등에서 영국에 관한 기본 자료들을 모아 마치 자기가 영국 런던에서 수집한 정보인 것처럼 마드리드의 독일대사관으로 타전했다. 1940년대만 해도 무전 발신지 추적이 어려웠던 때라 그런 거짓말이 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는 영국 내에 독일첩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르보가 보낸 작은 정보들, 특히 군부대와 관공서 위치 등을 이용해 독일 공군 폭격기들이 런던을 공습할 때 유용하게 써먹을수 있었다. 그래서 독일은 가르보를 믿기 시작했다. 그는 영국 안에 22명의 정보제공자가 있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자질구레한 정보를 독일로 보냈다.
이런 식으로 독일첩보부의 신임을 얻은 그는 다시 영국 정보부와 접촉, 2중첩자가 되겠다고 제안한다. 그제서야 영국은 가르보를 이용하여 독일 쪽으로 허위정보를 흘려 보내기 시작한다. 가르보는 영국 정보부가 그에게 준 암호명인데, 당시 세계 최고의 미녀 배우 그레타 가르보보다 더 훌륭한 연기를 하라는 뜻이었다 한다.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고,
미국은 일본이 하와이 퍼얼하버(진주만)를 기습공격한 1941년 12월7일 다음 날 참전했다.
미군은 태평양에서는 일본군과 싸우고 북부 아프리카에서는 영국군과 함께 독일군을 상대로 싸웠다.
그러나 독일군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유럽대륙엔 아직 발을 들여놓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1944년 프랑스 해안 상륙작전이 기획되었다.
영국과 가장 가까운 유럽 땅은 프랑스의 칼레(Calais) 항이다.
영국 도버(Dover)에서 프랑스 칼레까지 거리는 겨우 33km.
오늘날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해저 터널도 바로 이곳에 건설되어 있다.
독일은 당연히 칼레가 미·영 연합군의 상륙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과 영국 만트가머리(몽고메리는 정확한 발음 아님)장군은 칼레보다 130km나 더 먼 노르만디(Normandy)를 상륙지점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독일군을 속이기 위해 칼레 맞은편 영국 땅에 가짜 비행장을 만들고 고무로 만든 비행기 모형과 탱크 모형을 진짜처럼 배치했다.
물론 적의 공중 촬영과 영국 내에 있을지도 모르는 독일 간첩들에 대비한 것이었다.
그리고 2중간첩 가르보를 통해 칼레가 상륙 목표지점이며
지휘관은 탱크부대로 유명한 미군 제3군사령관 조오지 패튼이라고 허위정보를 보냈다.
이를 믿었던 독일군 최고사령관 요들장군은 히틀러의 재가를 받아 탱크부대를 포함한 독일군 제15군단을 칼레로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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