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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술: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2중스파이 가르보 3

modest-i 2014. 11. 13. 10:51

1944년 6월6일 이른 아침 아이젠하워 장군은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연합군이 칼레가 아니라 훨씬 남쪽에서 상륙을 시도하자

노르만디 해안포대 소속 독일군은 요들장군에게 탱크부대를 포함한 제15군단을 즉각 노르만디로 이동시켜 달라고 긴급히 전화를 때렸고,

요들은 히틀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보좌관은 히틀러가 자고 있다며 통화를 거절했다.

 

히틀러는 이미 독일 첩보기관으로부터 가르보의 거짓정보를 받고 적의 칼레 상륙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상태였다.

이 때문에 히틀러는 요들장군에게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은 시선 돌리기 꼼수작전이며

본격적인 상륙은 칼레에서 곧 시작될 것이므로 병력 이동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다.

덕분에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은 비교적 쉽게 성공한다.

나흘이 지나도 연합군이 칼레 상륙 기미를 보이지 않자 독일첩보부는 가르보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따졌다.

그러나 가르보는 “알아보니 노르만디 꼼수작전이 예상 외의 효과를 내자 적이 칼레 상륙의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 취소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고했다.

어리석게도 독일은 진짜 배우 가르보를 뺨치는 2중간첩 가르보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1944년 6월 6일 새벽 프랑스 노르만디 해변에 상륙한 영국군이 진지 구축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1944년 6월 6일 새벽 프랑스 노르만디 해변에 상륙한 영국군이 진지 구축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한편, 노르만디를 통해 유럽대륙에 발을 올려놓은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프랑스를 4년간의 독일점령통치로부터 해방시키고 계속 북동쪽으로 베를린을 향해 진격한다. 벨기에의 발지(Bulge)전투 등을 거치면서 독일군 저항은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다.

 

 

나치독일의 운명이 다 되었다고 판단한 일부 독일군 장교들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1944년 7월20일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으나 폭탄이 히틀러로부터 조금 멀리서 터지는 바람에 실패한다.

이 암살 기도를 묵시적으로 지지한 “사막전의 영웅” 로멜장군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히틀러가 요구한대로 음독자살을 택한다.

 

히틀러의 무모한 소련 원정도 러시아의 극심한 추위 때문에 실패, 나치 독일의 패색은 더 짙어진다.

 1945년 봄, 연합군이 동과 서 양쪽에서 조여 오자 히틀러는 4월 30일 권총으로 자살하고, 그의 동거녀였다가 자살 직전 결혼한 에바 브라운은 독약을 마시고 죽는다.

그리고 독일군 최고사령관 요들 장군은 5월7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난 뒤 가르보는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고국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로 돌아가 그와 무전을 교환했던 독일대사관 첩보요원과 만났다. 독일 첩보요원은 그때까지도 가르보가 2중간첩인 줄도 모르고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히틀러가 준 철십자무공훈장까지 건네주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가르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

몇년 후 스페인의 한 방송사가 2차 세계대전 특집에서 후안 푸졸 가르시아(Juan Pujol Garcia)란 스페인 사람이 영국과 독일을 위한 2중간첩이었는데, 종전 후 아프리카 앙골라로 가서 살다가 병이 들어 죽었다고 방송했다. 이 방송을 마침 가르보의 아들이 듣고 깜짝 놀랐다. 후안 푸졸 가르시아는 바로 자기 아버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 비보를 전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가르보는 자기가 죽었다는 소문을 스스로 퍼뜨렸다.

한편 영국에서는 국회의원 출신 첩보물 전문작가 루퍼트 앨러슨(Rupert Allason)이 2중간첩 가르보의 정체를 밝히기로 결심하고 수소문 끝에 그의 본명이 Juan Pujol Garcia 임을 알아내고 그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마드리드 시민 한명을 고용하여 마드리드의 전화번호를 죄다 뒤진 결과 J. P. Garcia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자기 이름이 Joaquim Pujol Garcia이며 Juan Pujol Garcia의 조카라고 말했다. 그리고 1982년 후안 아저씨가 베네주엘라에서 보낸 엽서를 받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작가 앨러슨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살고 있는 가르보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 “후안 푸졸 가르시아씨입니까?”라고 묻자 전화를 받은 남자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더니 마침내 그렇다고 대답했다. 앨러슨은 영국정부가 전쟁 중에 가르보(후안)에게 수여한 무공훈장을 직접 본인에게 주려 한다며 런던으로 그를 초청했다. 후안은 1984년 노르만디 상륙작전 40주년 기념일에 맞추어 런던에 도착해서 뒤늦게 훈장도 받고 영국군 참전 노병들과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르보는 베네수엘라에서도 결혼해 2남1녀를 두었다. 그의 본처와 아들도 만났다. 두 가족이 함께 만나기도 했다.

작가 앨러슨은 Nigel West라는 필명으로 가르보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했다. 제목은 GARBO: The Story of the Most Successful Double Agent Ever.(가르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2중간첩 이야기)

이 책을 바탕으로 2009년 기록영화 GARBO: The Spy가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고 미국에선 2010년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후안 푸졸 가르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빨리 끝나도록 도와줌으로써 자신은 총 한방 쏘지 않고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건졌다”는 요지의 글로 끝난다.

노르만디 상륙작전 70주년에
워싱턴에서
조화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