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은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고,
미국은 일본이 하와이 퍼얼하버(진주만)를 기습공격한 1941년 12월7일 다음 날 참전했다.
미군은 태평양에서는 일본군과 싸우고 북부 아프리카에서는 영국군과 함께 독일군을 상대로 싸웠다.
그러나 독일군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유럽대륙엔 아직 발을 들여놓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1944년 프랑스 해안 상륙작전이 기획되었다.
영국과 가장 가까운 유럽 땅은 프랑스의 칼레(Calais) 항이다.
영국 도버(Dover)에서 프랑스 칼레까지 거리는 겨우 33km.
오늘날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해저 터널도 바로 이곳에 건설되어 있다.
독일은 당연히 칼레가 미·영 연합군의 상륙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과 영국 만트가머리(몽고메리는 정확한 발음 아님)장군은 칼레보다 130km나 더 먼 노르만디(Normandy)를 상륙지점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독일군을 속이기 위해 칼레 맞은편 영국 땅에 가짜 비행장을 만들고 고무로 만든 비행기 모형과 탱크 모형을 진짜처럼 배치했다.
물론 적의 공중 촬영과 영국 내에 있을지도 모르는 독일 간첩들에 대비한 것이었다.
그리고 2중간첩 가르보를 통해 칼레가 상륙 목표지점이며
지휘관은 탱크부대로 유명한 미군 제3군사령관 조오지 패튼이라고 허위정보를 보냈다.
이를 믿었던 독일군 최고사령관 요들장군은 히틀러의 재가를 받아 탱크부대를 포함한 독일군 제15군단을 칼레로 집중시켰다.
1944년 6월6일 이른 아침 아이젠하워 장군은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연합군이 칼레가 아니라 훨씬 남쪽에서 상륙을 시도하자
노르만디 해안포대 소속 독일군은 요들장군에게 탱크부대를 포함한 제15군단을 즉각 노르만디로 이동시켜 달라고 긴급히 전화를 때렸고,
요들은 히틀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보좌관은 히틀러가 자고 있다며 통화를 거절했다.
히틀러는 이미 독일 첩보기관으로부터 가르보의 거짓정보를 받고 적의 칼레 상륙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상태였다.
이 때문에 히틀러는 요들장군에게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은 시선 돌리기 꼼수작전이며
본격적인 상륙은 칼레에서 곧 시작될 것이므로 병력 이동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다.
덕분에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은 비교적 쉽게 성공한다.
나흘이 지나도 연합군이 칼레 상륙 기미를 보이지 않자 독일첩보부는 가르보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따졌다.
그러나 가르보는 “알아보니 노르만디 꼼수작전이 예상 외의 효과를 내자 적이 칼레 상륙의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 취소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고했다.
어리석게도 독일은 진짜 배우 가르보를 뺨치는 2중간첩 가르보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 1944년 6월 6일 새벽 프랑스 노르만디 해변에 상륙한 영국군이 진지 구축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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