負債 많고, 혁신 더디고, 생산 인구마저 줄어…
* 수면 밑에선 '빈부격차 확대·고용없는 성장
* 빚 많은 경제 주체들, 소비 지출 자제
* 日이 90년대에 그랬고
이젠 美·유럽이… 低성장의 고착화가 곧 '장기 불황' 의미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고령화로 생산저하…
빚 갚는데 돈 쓰고
취업마저 안 되는 '잃어버린 세대' 등장
재정정책 통한 공공부문 투자 확대돼야
"장기 침체가 세계경제에 '뉴 노멀(새로운 정상 상태)'이 될 수 있다.
경제 회복 시점이 가까워졌다는 전망이 몇 년 전부터 대두했지만
1990년대 일본에서 봤듯 여러 번 '거짓 새벽'을 봤음을 상기해야 한다."(서머스)
"아니다. 장기 침체론은 주식시장의 에볼라 바이러스일 뿐이며,
막연한 불안감이 증시에 패닉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실러)
일전에 미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간에 벌어진 논쟁이다.
최근 세계경제계는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 논란으로 뜨겁다.
래리 서머스 교수와 폴 크루그먼 프리스턴대 교수를 비롯한 장기 침체론자들은
현재의 세계경제 침체가 단순히 경기 순환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하며,
장기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반대 진영에서는
앞으로 공격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펴나가면 충분히 극복된다고 주장한다. 실러 교수 등이 그 중심에 있다.
위클리비즈는 세계적 경제 석학 20명을 대상으로 장기 침체론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밥 베첵 베인앤드컴퍼니 CEO 등 6명과는 직접 전화나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 14명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와 블룸버그에 실은 관련 칼럼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명 중 16명이 '장기 침체론'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0%가 찬성한 것이다.
로치 교수는 "장기 침체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거품이 꺼지면서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고프 교수 역시 "서머스가 말하는 장기 침체가 정황상 맞다"면서
"과잉 부채 때문에 생긴 일인데, 해소할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데어 터너 전 영국 금융청(FSA) 청장은 "장기 침체를 막으려면 레버리지(차입)를 늘릴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거품이 더 커져 위험이 증대되는 딜레마에 빠질 상황"이라며
"재정 완화 정책은 계속 펴가면서 거품이 생기지 않고 빈부 격차가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묘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프리 프랜켈 하버드대 교수는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의 저성장은 금융 위기 여파일 뿐 구조적 문제는 아니다"면서
"금융 위기 이후 보여온 정책 실패 때문에 걱정스러운 상황이 온 것은 맞지만 좋은 정책이 이어지면 희망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빌렘 뷔터 시티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장기 침체라고들 주장하는데
이는 유럽과 일본 정도에나 해당하는 문제"라면서 "금리를 제로에 맞추고,
한결같은 통화 공급 확대 정책을 펴나가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벡웍스 웨스턴 켄터키대 교수는 "생산성이 계속 하락한다는 장기 침체론의 논거는 잘못된 것"이라며
"공짜 앱 같은 것을 GDP 산정에 포함하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 때문에 생산성이 낮아 보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위클리비즈가 장기 침체론에 대해 글로벌 경제 석학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장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장기 침체론자들의 문제 인식은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6년 반이 지났는데 왜 아직 경제가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
"이토록 회복이 힘든 것은 이번 침체가 경기 순환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기 때문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확대됐다.
장기 침체론 반대론자들조차 향후 적극적인 재정확대 정책 등 특단의 대책을 전제로 경제 회복을 전망했다.
그러나 전문가 대부분은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복원력을 해칠 정도의 위기는 아니다"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① 지금이 장기 침체인가?
래리 서머스 교수가 주장한 장기 침체론에 대해 20명 중 15명은 "동의한다"고 밝혔고,
4명은 "아니다"고 했다.
1명은 "단정하기엔 이르다"고 했다. 〈그래픽 참조〉
모건 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주요 선진국 경제에서 장기 침체의 가능성에 매우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 일본에서 시작해
1990년대 미국,
2000년대 유럽의 순서로 세 경제가 모두 자산과 신용 버블로 경제 성장을 밀어올렸다"며
"버블이 꺼지면서 과도한 부채에 의존했던 이런 경제들이 모두 심각하고 장기적인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져들었다"고 분석했다.
대차대조표 불황의 경우 과도한 빚을 진 경제주체들이 소비 지출을 자제하므로 수요 부진이 장기간에 걸쳐 이어진다.
1990년대엔 일본 기업들이 그랬고,
지난 6년 반 동안에는 미국과 유럽 주변부 국가의 소비자들이 그랬다.
이 같은 저성장의 고착화가 곧 장기 침체의 동의어가 아니겠느냐고 로치 교수는 말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교수는
"금융위기가 초래하는 경제 침체는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이것이 바로 1990년대의 닷컴 버블과 달리 이번 침체가 길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금융은 혈맥과도 같아서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경제적이고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주가 폭락으로 촉발된 1930년대의 대공황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미국의 GDP 수준은 직전의 정점에 비해 7% 높은 수준에 불과한데,
과거 같으면 경제 회복의 이 단계에서는 20% 정도는 높아야 정상이라고 손 교수는 밝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를 통해
"장기 침체가 맞다"면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국 경제는 이미 2008년 위기 이전부터 충분히 허약해져 있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수면 밑으로 빈부 격차 확대,
고용 없는 성장이 꾸준히 진행되고,
세계경제가 제조업 기반에서 서비스업 기반으로 옮아가면서 글로벌 비교 우위 구조가 달라졌는데도
정책 입안자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실책이 겹쳐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전 핌코 CEO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에서
"내가 2009년에 세계경제에 저성장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하며 이를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불렀는데,
최근 그 아이디어가 서머스에 의해 장기 침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면서
"고령화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소비 대신 빚을 갚는 데 돈을 쓰며,
취업이 안 되는 잃어버린 세대가 등장하는 게 모두 그 증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있었다.
밥 베첵 베인앤컴퍼니 CEO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지금의 장기 침체 조짐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향후 10년간 세계경제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본다"면서
"특히 나노기술,
인공지능,
유전학,
로봇공학,
유비쿼터스 등 끊임없이 등장하는 혁신 기술이 앞으로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킬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밝혀왔다.
제프리 프랜켈 하버드대 교수 역시 "최근 몇 년간의 저성장은 금융위기의 영향일 뿐 구조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 4년간 재정확대 정책이 성장에 뚜렷한 실효를 나타내고 있다는 희망적인 신호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② 장기 침체라고 본다면 원인은 무엇인가?
장기 침체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석학들은 과잉 부채,
혁신의 정체,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중산층 약화 등을 지적했다.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이번처럼 과잉 부채에 따른 위기는 20년 이상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는 2차대전 이후의 다른 위기와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지난 6월에 낸 논문에서 "그런 입장을 바꿀 만한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금융위기 이후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이 진행돼 왔지만, 여전히 많은 부채가 남아있어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장기 침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밝힌 유일한 인물인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만일 장기 침체가 맞다면 가장 설득력 있는 논거는 기술 진보가 둔화된다는 주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성원 교수 역시 이를 유력한 원인의 하나로 꼽았다.
IT 분야에서 인상적인 혁신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는데, 기술 진보가 둔화된다는 것은 생뚱맞게 들릴 것이라고 아이켄그린 교수는 인정한다.
그러나 로버트 고든 교수를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은
요즘 컴퓨터, 인터넷 분야의 혁신은 상업화의 잠재력이나 이윤 창출 면에서 과거의 대형 발명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증기기관이나 전기, 수돗물, 내연기관 같은 것).
한편 스티글리츠 교수는 인구를 주목한다.
"장기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 가능 인구 감소"라는 것이다.
로라 타이슨 전 미국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은 중산층을 주목한다.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의 실질소득이 정체 상태로 가면서 장기 침체가 발생하고 있다"며
"임금을 어느 수준만큼 보장해줘야 중산층 붕괴를 막을 수 있고 장기 침체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2013년 미국의 정규직 남성 근로자의 중위(median) 소득이 1973년과 거의 같다는 통계를 근거로 든다.
또 마크 레빈슨 전미(全美) 서비스 노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장기 침체의 원인은 지난 수십년간 자본주의 경제가 소득 재분배를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라며
"부유한 사람에게 소득이 몰려가면서 민간 부문의 수요가 줄고, 성장동력인 중산층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③ 언제쯤 회복될까?
타일러 코웬 교수는 이 질문에 "꿈도 꾸지 마라(Don't hold your breath).
최소한 2020년대는 돼야 할 것"이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중국은 제로 성장을 향해 추락 중이고,
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성장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다.
유로존은 이탈리아가 아마도 부도로 갈 수 있고,
프랑스는 구조 개혁에 관심이 없으며,
독일조차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미국은 선방하고 있지만, 인상적이진 않다.
인도는 유망하지만, 다른 수많은 나라를 혼자서 돕기엔 역부족이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재정적자가 많아 추가적인 진전이 어려울 것이다.
잘할 만한 곳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스티븐 로치 교수는 "세계 GDP 성장률이 장기 추세선인 3.6%를 안정적으로 웃돌기 전에는 회복이라 할 수 없는데,
2017~2018년까지는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성장률은 2012년과 2013년엔 각각 3.4%와 3.3%에 머물렀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나라마다 회복의 속도와 정도가 다르다"면서
"미국은 확실히 회복되고 있지만 과거의 회복에 비해 실망스러운 수준이며,
유럽이나 일본·중국·브라질 등 다른 나라는 호전되기보다는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회복될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일부 있었다.
밥 베첵 베인앤컴퍼니 CEO는 "대공황은 전 세계가 함께 공황을 겪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사건이며,
일반적으로 각 나라의 경제는 서로 다른 성장 수준과 주기를 보이는데 지금도 그렇다"면서
"중국의 성장 둔화는 마침내 회복기에 들어간 미국에 의해 상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유럽은 계속 고군분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④ 자본주의의 한계인가?
이처럼 장기 침체로 가는 경제 상황을 놓고,
"결국 자본주의의 복원력(resilience)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대부분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스티븐 로치 교수는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문제"라면서
"금융과 경제 안정성을 무시한 채 자산과 신용 거품, 글로벌 불균형, 과도한 부채에 의존해 유권자와 근로자가 거짓 번영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유혹한 결과"라고 말했다.
코웬 교수는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지난 2년간 자본주의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잘 작동해왔다"면서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 경제를 보라"고 말했다.
그는 "큰 그림, 장기 전망에 대해 너무 비관적일 필요가 없으며 나는 매우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의 경제적 잠재력은 이제야 발휘되기 시작했고,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은 더 많은 성과를 낳을 것이다.
무인 자동차와 드론은 교통 혁명을 낳을 것이며,
생명과학의 결실을 누리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대공황 때도 드러났듯 시장은 자기 조정 능력이 없다"면서
"지금처럼 정책 당국이 엘리트주의에 물들어 있는 한 장기 침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⑤ 대책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수요를 진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기 침체론자 대부분은 이를 위해 공격적인 재정확대 정책을 주장한다.
서머스 교수는 "예를 들어 JFK공항을 수리하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물론 기왕이면 돈을 생산적인 데 푸는 것이 좋지만,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이력 현상'을 막는 효과는 있다는 것이다.
아쇼카 모디 교수는 "공공부문의 투자가 장기 침체를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며,
미국·독일·영국·프랑스·중국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판 아베노믹스' '제2의 뉴딜'이라고 말한다.
서머스 교수는 아울러 수출증대 정책을 주장한다.
또한 폴 크루그먼 교수 등은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가인상을 통해 실질금리를 마이너스 2~3%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머스를 비롯한 많은 장기 침체론자는 양적완화 같은 통화정책에 대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버블을 다시 발생시키고, 부실기업의 퇴출을 막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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