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스승'
친구와 우정에 대한 이런 얘기에, 이탁오라면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라는 말을 빠뜨려선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
그저 친하게 지내고, 자주 만나 어울린다고 친구인 게 아니다.
한 번을 만나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하여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하는 이,
그리하여 좀더 좋은 삶으로 나아가게 하게 하는 이,
그게 진정 좋은 친구일 것이다.
그게 바로 스승과 제자의 역을 바꾸어가며 서로를 촉발하는 친구인 것이다.
- 이진경 <삶을 위한 철학수업> p.116
숭례문학당에서 여러 동기분들을 만나면서, '오래토록 친하게' 만나 친구가 아니라,
배움을 주고 나누는,
때론 스승과 같은 동기분들이
나이를 떠나서 결국 친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저자는 기특하다고 이렇게 저를 다독여 주고 있다니 기쁘지 아니한가.
mosinig 블로그에서 펌함
참된 벗으로 만나기
우리는 ‘나’와 연결된 무수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벗, 부부와 연인, 스승과 제자, 상사와 동료, 선배와 후배….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관계가 있고, 나를 둘러싼 주변에 무수한 이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살펴보면, 친구를 제외하고 모두 나이나 지위에 있어서 상하관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넓게 봤을 때 부부나 연인도 벗에 속하겠지요.
그런데 친구가 아닌 상하관계의 누군가를 소개할 때 ‘친구 같은 ◯◯’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이라면 싫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개 그 사람에 대한 찬사로 쓰는 말입니다. 친구란, 나와 같은 공감대를 지녔기에 가장 이해의 폭이 넓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관계로 맺어졌든, 친구와 같을 수 있다면 최고의 사이입니다.
명나라의 사상가 이탁오(李卓吾)는 “친구가 될 수 없는 자는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관계란 전통적으로 가장 엄격한 위계질서가 필요한 영역이라 생각하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스승과 제자라 하더라도 사제(師弟)보다는 사우(師友)가 될 때 참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고, 그 위에서 참된 교육 또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 같은 사이를 지향한다는 말은, 인간관계에서 ‘입장의 동일함’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부모자식 간에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말만 하고, 아들은 아들의 말만 합니다. 상사가 하는 말은 으레 정해져 있고, 부하의 대응 또한 그러합니다. ‘입장의 차이’가 소통의 부재를 가져오고, 서로 평행선을 달리다가 관계의 단절을 불러옵니다.
우리는 억울하거나 답답할 때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입장(立場)이란 말 그대로 ‘서 있는(立) 곳(場)’을 뜻합니다. 처해 있는 형편과 위치를 말하지요. 어떤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만약 내가 저 상황에 놓여 있다면” 하고 생각해보면, 마주볼 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변수들이 떠오르면서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은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동정(同情)이란 ‘정(情)이 같다(同)’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이 같지 않고 처지가 같지 않은 이의 동정은 참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물질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자신이 동정 받는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여 상심이 되기도 합니다.
도와주기보다 함께 고생하라는 뜻이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조차도 ‘입장의 동일함’이 가장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다가서면 그 상황에 맞는 방법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동(感動)은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손을 잡아본 적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글 때문에 감동을 받습니다.
아득한 과거 사람들로 인해 웃고 울기도 합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사진이든, 그 사람이 남긴 흔적에서 그와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서로의 감정을 가장 많이 느끼는 가까운 이들과는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바로 친구 같은 ‘입장의 동일함’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울수록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이해받으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친구를 도반(道伴)이라 부릅니다. ‘함께 수행하는 벗’이니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지요.
참된 도반이 그립습니까. 당신이 먼저 다가가서 그의 자리에 나란히 서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입장이 같아지고, 참된 벗 도반이 될 수 있습니다.
그가 당신의 남편이든, 자식이든, 친구이든 말입니다.
칠현산 칠장사 블로그에서 펌함 2016.6.6. 모디스티 각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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