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에 몰입하면서 삽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살림과 자녀에, 학생은 공부에, 직장인은 실적이나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운동선수는 자신의 주 종목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몰입하면서 삽니다. 몰입은 ‘좁고 깊게’ 파고드는 것입니다. 마니아(mania)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을 말합니다. ‘마니아’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광기’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미친다’는 뜻입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미치도록 몰입했던 사람들입니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입니다. “나는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99번은 틀리고 100번째 되서야 비로소 답을 얻어 내곤합니다.” 뉴턴은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인생의 3분의 2를 물체를 금으로 만드는 일에 몰입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떤 것에 몰입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위대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23번의 해전을 전승(全勝)으로 이끈 이순신 장군 역시 오직 나라와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一念) 하나에 몰입한 사람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애국지사들은 이미 망해버린 나라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독립된 나라를 위해 부모, 가정, 자녀, 목숨까지 내놓고 독립운동에 몰입했습니다. 이처럼 몰입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해야 할 사명을 알고 이를 잘 감당하기 위한 것들이기에 아름답고 바람직합니다. 그러므로 몰입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몰입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는 게으름으로 지탄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몰입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독일 나치정권의 철권통치자 히틀러는 유대인 말살 정책에 몰입해서 유대인들을 혹독하게 괴롭혔고 처참하게 학살을 감행했습니다. 홀로코스트는 지금도 아픈 상처로 지금까지 가슴을 써늘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 오래 전에 일어난 일로 지금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미국에서는 심심치 않게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흑인들을 괴롭히고 살인과 테러를 서슴지 않고 있고, 이슬람과격 신자들이 벌이는 테러는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곤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도 신흥종교와 사이비 종교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비도덕적인 교리와 행태로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잘못된 신념과 확신으로 몰입한 결과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에 엄청난 물의를 일으키는 일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몰입이면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몰입 이전에 옳고 그름을 분명히 따져봐야 합니다. 종교생활을 오래했다는데 오히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부를 오래했다는데 오히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바르지 않은 길에서 열심을 품은 몰입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르게 방향잡고, 잘 하는 게 중요합니다. 즉 속도(速度)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도(正道)가 중요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숙고(熟考)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는 깊이 생각하는 삶, 즉 끊임없이 자기반성과 다짐을 하면서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참된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몰입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분명히 달라집니다. 선의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악의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빛을 비출 수도 있고 어둠으로 치닫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에, 어디에, 어떻게 몰입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요즘 이런 말들이 들려옵니다. “무한경쟁사회이니 죽기 살기로 노력, 노력, 노력해서 최고가 되어야한다.”, “2등은 없고, 오직 1등만이 기억될 뿐이다.” 제가 놀라는 것은 이런 말들을 부모들이 자녀에게,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합니다. 심지어 종교지도자들이 신자들에게 합니다. 이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종교경전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그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따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이는 마치 히틀러가 독일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유대인 학살과 세계전쟁을 촉구함에 한 마디 반대도 없이, 추종한 당시 독일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들 중에는 교육자도, 지성인도 심지어 종교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숙고하지 않으면 누구도 정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을 영혼을 좀먹는 사상들과 집단주의에 현혹(眩惑)될 수 있습니다. 늘 긴장하면서 깨어있는 정신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합니다. 저는 주위에서 잘못된 사상이나 신념이나 집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이를 확신해서 자신과 가정에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까지 이를 확산시키려고 몰입한 이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한번 오도(汚道)에 깊이 빠져든 사람은 아무리 조언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확신과 집단최면에 귀멀고 눈멀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오히려 제가 깨닫지 못한 무지몽매하다고 여깁니다. 저를 설득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그러면서 저를 어둠 속에서 진리를 참된 가치를 깨닫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라고 규정짓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확고한 체계에서 볼 때, 저는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제가 옳다고 믿는 종교나 신념이나 삶의 자세를 숙고하곤 합니다. 정말로 제가 옳은 것인지, 제 경험세계가 일천하고 앎과 삶의 역량이 적어 잘못 아는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또한 제가 믿고 따르는 종교와 삶의 자리에서도 정말 바른 자세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저 발만 담그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이런 숙고는 과거완료가 아니라 끊임없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또한 참된 가치가 아닌 천박한 자본주의에 몰입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숙고합니다. 물질만능주의를 경계하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다짐하는 데 어느 순간 돈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닌가 숙고합니다. 권력과 명예를 탐하지 않고 맑은 영혼으로 살려고 숙고하면서 제 자리를 지키려고 발버둥치기도 합니다. 최근엔 어느 정도 익숙하다보니 주어진 환경에서 적당히 지위를 누리고 적당히 봉급 받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숙고합니다. 몰입하지 않으면 전진이 없습니다. 우리 삶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대충, 안일, 나태, 타성을 끊어버리면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습니다. 안일하게 대충대충 때우다시피 하면 우리는 쉽게 힘을 잃고, 의미를 잃고, 가치를 잃고, 보람을 잃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주어진 사명을 잃고,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바른 길에서 바른 자세로 몰입할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가능케 됩니다.
또한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바른 몰입은 유혹에서 자유롭게 해줍니다. 바른 몰입은 어수선한 것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질서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바른 몰입은 바른 눈으로 바르게 보고 삶으로 확인해서 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해줍니다. 바른 몰입은 썩어 없어질 이 땅의 것들에서 자유롭게 되어 참된 가치에 몰입하게 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