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어,생존)전략

웰링턴:손실병력 보충은 언제나 한계가 있는 데다 불필요한 사상자를 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사전에 주도면밀한 작전계획 세워 체계적으로 집행

modest-i 2015. 4. 8. 12:29

웰링턴은 포르투갈·스페인 전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다양한 전략·전술을 구사했다.

 

가장 성공적인 전술은 방어선과 공격선을 중심으로 공격·방어를 되풀이하면서 초토화작전을 하는 것이었다.

 

손실병력 보충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는 데다 불필요한 사상자를 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사전에 주도면밀한 작전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집행했다.

 

 

웰링턴의 전술은 사실 극히 단순했다.

그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화력을 집중적으로 퍼붓고

이어서 잘 훈련되고  전투동기가 강한 병력으로 적군을 압도함으로써 승리를 얻어낼수 있었다.

 

 

웰링턴의 전술은 적을 먼저 공격하지 않고 적이 아군을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전술을 썼다.

 

특히 적군을 식량보급을 할 수 없도록 이미 초토화된 농촌지역으로 유인해 무찌르곤 했다.

 

그는 안전한 항구에 통신부대를 배치하고 이 부대를 통해 효과적으로 병참과 신병을 보충받았다.

 

 

 

웰링턴은 유럽 정복자(나폴레옹)를 정복한 위대한 군인으로 칭송받으면서 나폴레옹의 유럽제국 영토를 재분배하기 위해 소집된 1815년 빈 회의에 영국을 대표해 참석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빈 회의가 끝나기 전 나폴레옹이 유배지 엘바 섬을 탈출, 2차 전투를 재개하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회의장을 초긴장으로 몰아넣었다. 영국과 연합국에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뉴스였다.

웰링턴이 회의 도중 연합군 지휘를 다시 맡으려고 출발준비를 하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황제가 그에게 말했다. “이 세계를 구출해야 할 임무가 웰링턴 공작에게 또다시 맡겨졌다.”

“나폴레옹이 어지럽혀 놓은 세상을 다시 구해내라”는 지상명령은 바로 웰링턴이 완수해야 할 중차대한 임무였다.

웰링턴은 2차 접전 때 병력 수에서 압도되고 나폴레옹의 진격로도 미처 몰라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평소처럼 근방에서 유일하게 높은 지대로 가장 방어하기 좋은 지형을 골랐다.

 

 

웰링턴은 1815년 6월18일 프러시아 야전군 원수 게프하르트 레베레흐트 폰 블뤼허 장군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얻어

중부 벨기에 평원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을 섬멸했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과 웰링턴 두 사람에게 최후의 전투였다.

이 전투 후 나폴레옹은 2차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보내졌고

웰링턴은 명성과 재부의 축복 아래 정계를 주름잡으면서 여생을 편안히 보냈다.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군과 영국군·프러시아군을 비롯한 연합군과의 용호상박의 혈전이었다.

한 번 패전의 공포가 눈깜짝할 사이 나폴레옹군을 감전된 듯 휩쓸자 공황심리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군은 영국군과 프러시아군의 맹렬한 추격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없었다.

워털루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웰링턴이 승리하지만

이 전투에서 쌍방 희생자도 많았다.

영국군은 1만5000명, 프러시아군은 7000명, 프랑스군은 3만2000명, 그리고 적어도 7000명이 포로가 됐다.

 

 

란보 블로그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