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사 피습사건 계기로 본 경호
최우선 목표는 要人대피
위험이 발생한 쪽으로
두 팔 벌려 몸 날려야
무술실력에 못지않게
관찰·시각능력이 중요
경호는 머리싸움·과학
테러범 공격준비 어렵게
수시로 이동 패턴 바꿔
하루 일당 15만~30만원
비서·운전사 역할 겸임도
지난 10일 경기 용인대 경호무도실습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학과 학생들이 실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경호 연습을 하고 있었다. 경호원들과 함께 군중 쪽으로 다가가던 요인 앞에 칼을 든 남자가 나타나자
맨 앞에 있던 경호원이 짧고 강하게 위험 상황을 알리고 남자 쪽으로 몸을 던졌다.
이 사이 나머지 경호원 4명이 요인에게 다가가 인간 방호벽을 만들고
몸을 최대한 낮춰 지금까지 오던 방향과는 반대로 긴급 대피했다
. 이 모든 것이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났다.
경호 1원칙은 자신 희생해 요인 살리는 것
지난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 사건으로 요인 경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경호의 원칙은 무엇이고,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까.
이날 선보인 '5인 마름모' 경호 형태〈그림〉는 경호원들이 전후좌우에서 경계를 할 수 있어 군중이 밀집해 있는 통로나 혼잡한 복도 등 근접경호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자주 쓰인다.
박준석 용인대 경호학과장(한국경호경비학회 명예회장)은
"칼을 든 사람을 본 경호원은 위기의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대신
두 팔과 상체를 최대한 크게 벌려 자신의 몸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려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며
"자신을 희생해 요인을 살리는 건 경호원의 임무이자 존재 이유로,
반복 훈련을 통해
인체기억으로 반사적인 동작이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목숨을 건 위험에 맞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경호원들은 확고한 사생관과 가치관 정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총성이 나자 주변 사람들은 일제히 자세를 낮췄으나
티머시 매카시 경호원은 총소리가 나는 쪽으로 사지를 활짝 펼쳐 레이건 대통령을 향하던 총탄을 몸으로 막아냈다.
당시 복부에 총을 맞아 부상한 매카시는 이후 경호팀에 복귀했다.
경호원들은 사격 훈련을 할 때도 몸을 숙이지 않고 꼿꼿이 서서 하는데,
이는 테러범들의 총탄을 피하지 않고 몸으로 막아내겠다는 자세다.
경호는 행사장 특성에 따라 요인 앞에 한 사람, 뒤에 두 사람을 배치하는 삼각 대형(경호원 3명),
도로 양편에 군중이 밀집한 경우 구성하는 박스형(4명),
군중에 둘러싸여 있을 경우 적용하는 원형 등이 많이 적용된다.
경호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상황은 대통령이나 총리 등이 대중과 만나 악수하는 경우다.
대통령이 사람들과 악수를 할 때 경호원들이 주시하는 것은 사람들의 손이다.
모든 공격은 손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바짝 긴장한다.
사람들의 눈과 표정도 주시한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증거다.
유난히 소란을 피우거나 군중 속에서 앞으로 무리하게 헤집고 나오려는 사람도 눈여겨봐야 한다.
요인을 공격하려는 사람은 대개 대열의 첫째 줄보다 둘째 줄이나 셋째 줄에 서있던 경우가 많았다.
마음속으로 정한 공격 목표를 주시하는 이들의 몸과 얼굴은 굳어 있기 마련이다.
김호근 용인대 강사는 "경호원들은 빠르게 눈을 움직여 많은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각 능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인파가 많은 거리를 걸으며 2초 이내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훈련을 반복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경호는 공격 개념이 아니라 방어 개념"이라며,
"경호의 최우선 목표는 상대방을 공격해 제압하는 게 아니라 요인을 보호하고 신속히 대피시키는 데 있다"고 했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25년 근무한 이두석 우송정보대 경호보안과 교수는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발생한 문세광 사건은 요인 보호라는 경호의 제1원칙에 실패한 경호"라고 했다.
그는 "문세광이 두 번째 총탄을 발사한 이후 박종규 경호실장은 문세광을 제압하기 위해 앞으로 뛰어나왔는데,
문을 제압하는 동안 단상은 무방비 상태였다.
육영수 여사를 먼저 신속히 대피시켰어야 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경호 현장에서는 경호원이 총을 뽑을 시간에 재빨리 몸을 날려 요인을 보호하는 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다.
그래서 경호원들은 사격술 연마에 매달리기보다 무술 훈련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도식적인 무술 훈련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몸을 날릴 수 있는 태클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레이건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 때도 범인은 2초간 실탄 6발을 발사했지만,
경호원들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대통령을 대피시키고 범인을 제압했다.
경호원은 군중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게 좋을까. 2m 정도다.
인간이 외부 자극에 위협을 느끼고 신체 반응을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0.3초.
20대 성인 남성의 50m 달리기 속도는 평균 7.55초(한국체육과학연구원 조사).
성인 남성이 0.3초에 달릴 수 있는 거리는 1.99 m 정도가 된다.
따라서 경호원은 2m 정도 군중과 떨어져 있어야 누군가 공격을 해오더라도 자신이 있는 위치에 도달하기 이전에 그를 제재할 수 있게 된다.
국내외 주요 위해사건은 행사장 다음으로 차량을 타고 가는 이동 중에 발생한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에서 알 수 있듯,
차량 이동 중 공격을 기도하는 사람은 운행이 예정된 코스 길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많은 경호 인력이 필요해 군중에 대한 통제는 어려워 경호가 허술해질 수 있다.
특히 교차로나 모퉁이 등에서 속도를 줄이거나 정차할 경우 경호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정태황 한서대 경호비서학과 교수는
"차량 경호의 기본 원칙은 교통신호 조작 등으로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무정차 운전을 해서 공격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퇴로가 차단된 일방통행로나
도로 폭이 좁아지는 지점,
언덕 너머가 보이지 않거나
코너같이 운전 중 주변을 잘 볼 수 없는 지점 등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경호차가 요인이 탄 차 앞뒤로 서는 기본 대형(총 3대)의 경우
앞 경호차는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량 공격에 대비해 요인이 탄 차보다 차폭의 절반만큼 왼쪽에서 주행한다(그림).
교차로 정차 시에는 옆 차량 운전자가 요인 탑승 차량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도록 앞 범퍼가 옆차 뒷문 정도에 오도록 정차하는 게 중요하다.
경호는 두뇌 싸움이자 과학이다.
경호 전문가들은 "테러범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격해 올지 예측해
그에 대한 경호 대책을 세우고
다양한 기만 전술로 그들을 따돌리는 게 중요하다"며
"요인이 행사장에 참여하는 경우 예비 테러범이 상황을 오판하도록
일상적인 패턴에 변화를 주고,
실제 상황을 감추거나
거짓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고 했다.
요인이 행사장에 도착하는 시간에 대한 허위 정보를 흘린 후
그 시간보다 도착 시간을 앞당기거나 늦춰 혼란을 주고,
승하차 지점을 통상적인 정문이 아니라 후문이나 지하주차장 등으로 예고 없이 바꾸기도 한다.
여러 차량이 같이 움직일 경우 요인의 차량 배치나
좌석 위치를 수시로 바꿔 테러 표적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200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참배하려 했을 때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현충원 정문에서 일행의 참배를 막으려고 했으나
전 전 대통령 일행이 예정보다 20분 먼저 도착해 피해 나갔다.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각종 행사에 대리 참석하게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 지난 10일 경기 용인대 경호무도 실습실에서 경호학과 학생들이 한 남자(맨 왼쪽)가 칼을 들고 나타난 상황을 가정해 경호 연습을 하고 있다. 맨 앞의 경호원(왼쪽에서 둘째)이 두 팔을 벌리며 남자를 저지하는 사이에 다른 경호원들이 경호 대상자를 둘러싸 보호하고 있다. / 박상훈 기자
대통령 등에 대한 경호와는 별도로 연예인, 스포츠 스타, 기업인, 일반인 등의 신변보호를 맡는 민간 경호도 증가 추세다.
작년 말 현재 경찰청에 등록된 경비업체 수는 모두 4287개.
이 중 개인에 대한 신변보호 경호를 하는 업체는 538곳이다.
민간 경호를 의뢰하는 사람은 연예인·스포츠 스타 등이 70%, 외국 기업인·일반인이 30% 정도다.
한국을 찾는 외국 기업인의 경우 공항 도착부터 출국까지 방한(訪韓) 일정 전체를 책임지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신변 경호는 물론, 길안내 및 식당 예약 등을 하는 수행비서 같은 경호원을 요청한다.
이럴 경우 영어 등 외국어 능력은 필수다. 연예인은 대개 영화제나 기자회견 등 행사 중심으로 경호가 이루어진다.
해외 톱스타의 경우 공항과 호텔, 행사장 등을 모두 커버하는 24시간 경호를 펼치기도 한다.
연예인·기업인 경호 비용은 경호원 한 명을 기준으로 12시간에 15만~30만원 정도. 유명도나 경호 난이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15년 동안 경호원으로 활동한 신승열씨는
"아이돌 공연 중 광팬들이 행사장 한쪽으로 한꺼번에 몰려 안전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술 먹은 관중들을 제지해야 할 때,
강제로 그들을 제압하지도 못하고 몸으로 막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연예·스포츠 행사 경호는 스타뿐 아니라 관중 안전과 행사의 원활한 진행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최태현 티에이치코리아 대표는
"일반인도 스토커나 집안문제 등으로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며
"신변 경호뿐 아니라 비서, 운전기사 등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만능 경호원'을 원하는 의뢰인이 많아지면서 경호원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