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미래대비<-관찰

고려말 충신 최영장군의 평가: 고려의 만고 불변의 충신 /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고집스런 사람,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

modest-i 2015. 3. 17. 13:57

그의 평가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엇갈린다.

 

첫째는, 고려의 만고 불변의 충신이다.

여러 난신적자들이 횡횡하는 가운데서도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왜구와 홍건적을 물리치고 왕에 충성하고자 했던 고려의 충신이다.

 

둘째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고집스런 사람이다.

고려는 권문세가의 전횡으로 인하여 이미 그 나라의 명운이 다 하고 있었다.

수술로는 더 이상 살릴 수 없는 환자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백성의 진정한 아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려 대신에 새로운 세상이 생겨나서 자신들의 고단함을 해결하여 줄 것을 기대하는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성계에게 불운하게 죽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의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크고 위대했으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라는 것이다

 

 

 

 

 

체포와 최후

 

 

5월 선봉대가 압록강 어귀의 작은 섬 위화도에 도착하였다.

최영은 압록강을 건너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2]

하지만 이성계는 이에 불복, 군대를 돌려 거꾸로 수도 개경으로 향했다.

쿠데타가 시작된 것이다.[2]

 

그러나 최영이 각별히 신임하여 자신의 가보인 보검까지 하사했던 좌군도통사 조민수

위화도에서 우군도통사 이성계의 설득으로 회군에 협력하기로 결정, 말머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왔다.

 

당시 개경에 있던 정도전, 조준, 정몽주는 이성계에 대한 반감, 반대 여론을 무마시켰다.

 

 

최영은 크게 노했지만 이성계의 편으로 돌아선 장수들에 의해 감금된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를 맞아 싸우다가 이성계 일파에 붙잡혀 이내 투옥, 경기도 고봉(高峰 : 고양)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개경으로 소환된 뒤 죽임을 당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향년 73세.

이때 자신에게 탐욕이 있었다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결백하다면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 유언하고 최후를 맞이하였다.

실제로 그의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아서, 이에 적분(赤墳)이라 하였으며, 최근에는 풀이 자라나고 있다.

 

 

 

 

이성계와의 비교

 

이성계는 당시 신흥 무인의 대표이자

신진사대부의 일원이었다.

 

이성계의 조상은 본래 전주에서 살다가 강원도를 거쳐 함경도 지방으로 옮겨가 그 지역의 유력자로 성장했다.

 

원이 그 자리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원나라의 다루가치를 지냈다.[7]

그러나 고려 공민왕쌍성총관부를 공격 할 때 이에 동조, 왕의 신임을 얻었다.[7]

그리고 아버지 이자춘과 함께 출정하여 여진족 토벌과 고려군을 지원함으로써 이성계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최영은 권문세족의 후예였다.

이성계와 비교되던 최영은 유서깊은 가문 출신으로 그 딸은 우왕의 왕비이다.

 

이성계가 신흥 무인세력의 대표라면 최영은 구세력의 대표라고 할 수 있었다.[7]

 

한편 요동정벌 실패 후 그의 최후가 너무도 당당해서

뭇 사람들이 감동한 나머지 그의 시체가 버려진 곳을 지나는 사람마다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또 최영의 의연한 죽음은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좋은 대조를 이루며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2]

 

 

하지만 당시에 조정의 신진사대부들은 충직한 최영을 선택하지 않고

신흥 무인세력인 이성계를 선택함으로써

이미 운명은 예고되어 있었다.

 

이인임 일파의 전횡에

백성과 신진사대부들은 치를 떨었고

정도전에 의한 정치개혁이 힘을 얻게 되었다.[7]

 

 

 

 

위키백과에서 펌함

 

 --------------------------------------------------------------------------------------------------------------

 

 

 

느낀점

 

*   큰 시대 흐름을 봐야

 

*   쿠데타가 시작되었으나 너무 안일하게 대처함(믿었던 조민수가 돌아옴: 상식으로 봐도 배반한 것임, 역사를 보면 전혀 대응책을 안 세움)

 

*   국가를 위하는 것도 좋지만 국민을 봐야(국민을 위한 국가: 당시로는 어렵겠지만, 역사를 보면 국민을 위한 국가가 계속 생김)

 

*   73세, 이성계보다 훨등이 좋은 여건에서 체포, 죽음을 당함 => 마지막까지 잘 유지해야

 

 

 

                                                           2015.3.17     모디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