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머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기에 사례를 검토해보았다
처칠은 1차대전 때 독일 해군을 격파했는데
전쟁이 끝나고 독일의 암호를 해독했다고 이야기 했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낀 처칠은
2차대전 때는 철저히 암호해독을 비밀로 하며
이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승리로 이끈다.
그가 만약 장교 출신이 아니었다면
정보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을까?
전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처칠이 수상이 되었던 것은 영국으로서는 복이다
일머리는 일은 알아야 한다
일을 알지 못하고는 일머리가 나오지 않는다
처칠은 어학에는 둔했지만 역사 공부를 즐겼다
역사와 육군사관하교에서 공부가 시대를 만나 위인이 나왔다
아래 글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뫃은 것의 일부를 실었다
2015.3.17 모디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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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작전
에니그마가 해독되면서
주인공들은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독일의 통신에 대응하면 독일은 통신체계를 바꿔 버릴것이고
그리하여 영국정부는 처칠의 주도하에
'더블크로스작전'을 시행합니다.
이는 독일의 통신을 해독하여 얻은 정보를 토대로
영국에 침입하는 스파이를 역포섭하여 거짓정보를 흘리는 작전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작전으로 인해 나치독일은 패망하게 됩니다.
에니그마에 관련된 기술자들은 종전후까지도
에니그마가 해독된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정도로
작전은 치밀하게 수행되었다합니다.
울트라 작전은 이후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영국으로 폭격기와 전투기 부대를 출격시키라는 독일군의 명령을 읽은 영국은
숫적으로 열세인 자국 전투기를 주요 지역에 집중 배치해 효과를 극대화하는가 하면,
독일이 U보트 부대를 집결하고 선단에 대한 공격을 조율하는 에니그마 메시지를 해독하기도 했으며,
또한 보급선과 탱크 부족을 호소하는 독일 육군 원수 에르빈 롬멜의 불평을 해독한 영국군은
엘알라메인 전투에서 롬멜의 허를 찔러 공격을 개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울트라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벌지 전투로 알려진 1944년의 독일군의 공격은 연합군의 허를 찌른 공격이었는데,
당시 독일의 공격 명령은 지상통신 수단을 통해서만 전달되어 연합군이 눈치채지 못했다.
울트라 작전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독일군 고위 장교들 간의 교신 내용은 독일의 적국에게 낱낱이 노출되었다.
독일의 다른 모든 정보 관련 통신 역시 마찬가지여서,
연합군은 히틀러의 정보조직 내부를 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울트라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아
연합군의 기만작전과
이중간첩작전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진행되는지도 점검할 수 있었다.
독일 정보기관은 스파이 작전에 대한 평가와 대응책 역시 에니그마를 통해 교신했다.
울트라의 놀라운 성공을 보면 독일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속아넘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영국이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까지도 삼엄한 보안체계를 유지했다. 중요한 암호를 해독했을 때는 독일군에게 에니그마가 도청되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모든 행동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예상되는 독일군의 움직임에 대응해 군사행동을 감행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 울트라 소속 특별 밀사로 구성된 SLU(Special Liaison Unit)라고 알려진 특수연락부대는 암호해독 결과를 꼭 필요한 주요 사령관에게만 직접 전달했다. 울트라와 관련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행여 귓속말이라도 한번 잘못했다가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비밀을 철저히 지켰다.(이들은 1974년 영국이 마침내 울트라의 존재를 공식 인정할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두 번째 이유는 에니그마와 에니그마의 보안을 책임진 독일국방군 사령부의 코드해독부서(OKW/chi) 사람들이 이처럼 우수한 기계가 도청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니그마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애초의 개발자들도 기계가 점점 개량되면서 에니그마의 안전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불가능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리고 자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발명한 기계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들 머릿속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에니그마를 수호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암호체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독일이 항복하는 날까지 OKW/chi 소속 전문가들은 에니그마만큼은 안전하다고 굳게 믿었다. U보트를 통솔하던 카를 되니츠(Karl Dönitz) 제독은 걱정스레 물었다. 1943년 불과 한 달 만에 43척의 잠수함을 잃었는데 이는 자신이 잠수함 함대에게 보낸 에니그마 전송 내용을 적이 탐지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하지만 OKW/chi는 이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상대를 안심시키면서 U보트 통신만을 위해 특별히 6개의 회전판을 장착한 특수 에니그마를 별도로 제작했고, 이 특수 에니그마가 만들어내는 키 조합의 가짓수는 무려 10의 21제곱 개이며, 이처럼 복잡한 기계는 기존에 알려진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에니그마 (엔하위키 미러 발췌)
1 그리스어
'수수께끼' 또는 '어둡게 말하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원래 그리스어 발음은 '아이니그마'였으나, 라틴어 역어인 '애니그마'라는 단어를 차용해서 쓰였기 때문에 지금은 그 비슷한 단어인 '에니그마'를 쓴다.
아래의 항목들은 바로 그 단어를 빌려쓴 것이다.
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쓰인 독일의 암호기기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에도 독일군은 자신들의 암호체계가 뚫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쟁 종결 후 한참이 지난 후에 쓴 처칠의 1차대전 회고록을 읽고서야 암호가 깨진 것을 알아챘다. 당연히 독일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적에게 놀아난 것을 한참 후에나 알아챘으니…
에니그마는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한 반성으로서 등장했다. 처음에는 상업용으로 발매되었고 첫 등장도 1923년이라 상당히 이른 축에 속한다.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에니그마 암호기 자체는 특허에 의해 보호되었다. 당시로서는 강력했던 기계식 암호화기법을 사용했으며, 여기에 독일군이 추가로 복잡한 장치를 추가시킨 바람에 기존의 암호해독 기술을 완전히 무력화시켰고 상당 기간 동안 난공불락의 암호체계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폴란드 정보부에 의해 해독의 기초가 마련 되어 폴란드 침공 후 그 자료가 영국에 전해져, 앨런 튜링과 영국 블리츨리 파크에 모여있던 암호해독팀[1]의 손에 해독되었다. 여기서 컴퓨터의 조상뻘 되는 전자계산기인 콜로서스를 사용하여 해독했다는 루머가 웹에서 돌고 있으나, 실제로는 콜로서스에 의한 암호체계 무력화는 독일군의 최고사령부 레벨 보안통신기인 로렌츠 체계가 대상이었다. 로렌츠 체계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에니그마와 같지만, 에니그마의 경우 바퀴의 갯수가 3개에 반사바퀴 하나였지만, 이놈의 경우 바퀴의 갯수가 12개이고, 각각 바퀴의 캠수도 달라 암호화 강도가 훨씬 높았다. 다만 로렌츠 체계 역시 에니그마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콜로서스가 에니그마 파해에 도움이 되었다고 해도 딱히 반박할 만한 사실은 아니다.
다만 전쟁 중인 1942년에 독일군이 암호체계를 강화할 목적으로, 에니그마가 중간에 개량되자 한동안 연합군의 암호 해독률이 크게 떨어졌고, 이를 기회로 독일군 잠수함대는 그 어느때보다 풍성한 실적을 올렸다. 물론 독일군의 암호체계 강화는 에니그마가 해독된다는 것을 알고 한 것이 아니라 암호 해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연합국이 정보를 수집하는 것 같으니 예방차원에서 한 일이며, 정작 에니그마가 뚫렸다는 사실은 종전때까지 독일 정보부에서 전혀 눈치채지 못 한 것도 독일 패망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에니그마의 사용처는 독일만이 아니라 이탈리아군이 기존에 판매된 상대적으로 간단한 상업용 암호기를 사용하였고 일본군도 소수를 도입하여 독일과의 연락용으로 사용했다.
영화 U-571에서 이 물건을 탈취하려고 온갖 개고생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영화 상에서는 독일군 암호 해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묘사됐지만 실제로는 에니그마의 기계 자체는 해석이 끝났고, 회전자의 세팅이나 암호부호책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위의 것을 구하려고 해도 유보트를 털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므로 헛고생을 한 것은 아니다. 1944년 미국은 U보트를 털면서 배를 고쳐 미국까지 끌고오는데 성공하게 된다.
에니그마 자체는 1945년 독일 패전과 함께 사용이 중지됐지만, 그 변형은 1970년대까지 주로 상업적 보안통신용으로 사용되었다. 에니그마의 시조가 상업목적-기업 대외비-용으로 개발된 걸 생각한다면 복직이라고 해야 하나…에니그마를 원형으로 한 군용 보안통신기 역시 196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해독법이 뻔해진 상태임에도 사실 그 해독작업 자체가 여전히 수월찮은 것은 사실이었고, 암호기의 핵심인 회전자 개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해독작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비용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에니그마에 대한 암호해독 자체가 전후에도 오랫동안 기밀로 분류되었다. 일반에 그 존재가 제대로 밝혀진 것은 미국에서 1974년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이 제정된 이후 부터이다. 영국의 관련기밀문서 중에는 심지어 21세기 들어선 지금까지도 기밀분류된 것이 남아있다고 한다.
사실 2차대전 중에 세계 각국이 사용한 암호기 중에서는 가장 해독이 어렵고 해독하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시스템이기도 했다. 물론 가장 값비싼 물건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암호해독을 못하게 하려면 회전자를 늘리는 등 에니그마 본체에 손을 대는 조치가 필요하고, 그 후에 개선된 에니그마를 전체 군대에 대량으로 보급해서 기존 에니그마와 교환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돈이 없던 일본만 해도 에니그마가 좋은 줄 알면서도 전용 계산자와 난수표를 사용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패전때까지 사용했다.(물론 죄다 털렸다) 그나마 에니그마를 보고 에니그마의 개량형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꽤나 괜찮은 기계인 퍼플(purple)을 최고위 외교 메시지 전송을 위해 만들었는데, 미국에서 뚫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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