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FRB)이 또다시 아주 위험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2008~2009년 금융위기 이전처럼 점진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떠올려보라.
기준금리 인상 여부가 관심사였던 이 회의에선 명쾌한 조치 대신 형용사만 넘쳐났다.
위원회는 앞으로 금리를 올릴 적절한 여건이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릴 여유가 있다고 공언했고,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향후 금리를 인상하려면 앞으로 최소 두 차례 이상 위원회가 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준은 정책을 정상화하기 위한 여정(旅程)을 질질 끌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태도는 지난 2004~2006년 상황과 기분 나쁠 정도로 닮았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버블 붕괴 후 기준 금리를 1%대로 내렸던 연준이 마침내 기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 그 속도는 너무 느렸다.
2004년 6월부터 2년간 1%에서 5.25%로 17번에 걸쳐 0.25%포인트씩 올렸다.
그 사이 주택과 신용시장 거품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가계 소비는 급증했다.
개인 저축은 줄고 경상수지는 기록적으로 늘어 곧 다가올 위기의 뇌관이 됐다.
연준은 지금 이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를 태세다.
위기 이후 취약성과 디플레이션 위험에 대한 우려 속에
연준은 기존의 점진적 정상화 정책을 연장하기 위해 어떤 구실이라도 찾아내려는 듯하다.
지금 연준은 10년 전보다 더 느린 속도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더 중요한 건, 10년 전에 비해 연준의 자산이 5배 이상 증가했다는 점이다.
추가적인 자산 매입은 중단했지만, 지나치게 커진 자산 규모를 줄일 생각은 없어 보인다.
또 일본과 유럽 중앙은행이 연준의 바통을 이어받아 기록적인 저금리 속에 엄청난 유동성을 창출하고 있다.
유동성이 넘치는 금융 시스템 속에서 이례적인 확장적 통화 정책을 지속하는 건 거대한 위험 요소다.
최근 주식, 외환시장의 급등락과 유가 급락을 보라.
중앙은행은 길을 잃었다.
응급 상황이 오래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나 통화정책은 여전히 응급 상황에 맞춰져 있다.
이런 접근법은 금융시장을 부양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상처투성이인 선진국 경제를 치유하는 데는 실패했다.
중앙은행들이 금융시장 거품 조장 정책을 더 오래 끌고 갈수록, 경제는 더욱더 위태로운 시장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또 정치권과 재정 당국이 재정수지를 개선하고 구조 개혁에 나설 인센티브도 약화된다.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중앙은행들은 위기로 인해 생겨난 정책들을 가급적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물론 금융시장은 거세게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 맞서 책임감 있게 경제를 관리하기 위해 요구되는 어려운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독립적인 중앙은행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난 6년간 중앙은행들이 취해온 전례 없는 금융 정책은 전 세계 주요 시장의 자산 가격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제는 연준과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이를 중단하고 다음 위기에 대처할 수단들을 정비하기 시작할 때다.
조선일보 위클리 비즈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