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괄
전국 시대 조(趙)나라 사람. 조사(趙奢)의 아들로, 마복자(馬服子)로도 불린다. 아버지가 전한 병법(兵法)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실전에 대한 경험은 없었다. 조나라 효성왕(孝成王) 6년 진(秦)나라의 반간계(反間計)가 적중해 염파(廉頗) 대신 장군에 기용되었다. 조괄의 어머니와 인상여(藺相如)가 그 부당함을 함께 아뢰었지만 왕이 듣지 않았다. 염파가 견지했던 수성(守城) 전략을 버리고 대거 공격에 나섰다가 진나라의 장수 백기(白起)에게 포위되자 탈출을 시도하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이때 조나라의 군사 40여 만 명도 포로가 되어 하룻밤에 다 묻혀 죽임을 당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괄 [趙括]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1.20, 이회문화사)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다
기원전 262년, 진나라 소양왕은 대장 백기(白起)를 보내어 한나라로 진격시켰으며 상당(上黨, 산서 장치현)과 한나라 도성 간의 연계를 차단했다. 정세가 위급해지자 상당의 장수는 사신을 조나라에 보내어 항복하겠다고 했다. 조나라 효성왕(孝成王, 혜문왕의 아들)은 군대를 파견하여 상당을 접수했다. 그러나 진나라에서는 이듬해에 대장군 왕흘(王齕)을 보내어 상당을 겹겹이 포위했다. 그 소식을 들은 효성왕은 급히 염파에게 명해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상당을 구원하게 했다.
그러나 조나라군이 장평(長平)에 이르렀을 때 상당이 이미 적의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진나라 왕흘의 군대는 승세를 타서 장평으로 진군했다. 염파는 급히 군대를 지휘해 성곽을 보수하고 장기적인 방어전을 준비했다. 이에 왕흘은 이렇다 할 방법이 없어서 사람을 보내 그 상황을 진나라 왕에게 알렸다. 소양왕이 범휴에게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방책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조나라를 패망시키려면 반드시 염파를 따돌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범휴는 한 가지 계책을 얘기했다. 얼마 후 조나라 효성왕은 좌우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염파가 아니고 조괄이야. 조괄은 젊고 병법에 통달한 사람이지만 염파 장군은 이제 너무 늙고 기력이 다했어. 두고 보라고. 염파 장군은 진나라에 항복할 테니!”
그들이 말하는 조괄이란 조나라의 명장 조사(趙奢)의 아들이었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병법을 배우는 걸 좋아했고, 군사를 쓰는 법을 말하라면 언제나 막힘없이 말했으며 모르는 것이 없었다. 자기를 천하무적의 위대한 병법가로 자처하는 조괄은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조나라 왕은 신하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조괄을 불러다 진나라군을 막을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괄은 이렇게 대답했다. “진나라 대장군 백기는 막아내기 좀 어렵겠지만 왕흘은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습니다. 왕흘은 염파 장군의 적수는 될 수 있겠지만 저하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왕흘을 대패시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왕은 매우 흡족해하며 그 즉시 조괄을 대장군으로 임명했다. 인상여가 반대했으나 왕은 그 충고를 듣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도 왕에게, 자기 아들이 염파를 대신해 장군이 되는 것에 반대하는 상주서를 올렸다. 왕이 그의 어머니를 불러 연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 애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제게 여러 번 당부했사옵니다. 조괄은 전쟁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는 상당히 위험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애를 대장군으로 삼았다가는 조나라를 망치기 십상이니 앞으로 임금님께서 그 애를 중용하지 않도록 잘 여쭈어 올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하오니 절대로 그 애를 대장군으로 세우지 말아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러나 조나라 왕은 그 말도 듣지 않았다. “과인이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더 말하지 마시오.”
조괄이 대장군이 되었다는 소식이 진나라에 전해지자 범휴는 자신의 간계가 성공했다고 기뻐했다. 그는 즉시 비밀리에 백기를 보내어 왕흘 대신 상장군이 되어 진나라군을 통솔하게 했다. 장평에 도착한 백기는 군대를 매복시켜 놓고 일부러 전투에서 여러 번 패했다. 조괄은 그것이 백기의 계책인 줄도 모르고 미련하게 진나라군을 필사적으로 추격했다. 백기는 매복권 안에 조괄의 군대가 들어서자 즉시 포위망을 좁혔다. 그제야 조괄은 후회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조괄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포위를 뚫고 나가려다가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40만이나 되는 조나라군은 이렇게 ‘입으로만 싸울 줄 아는’ 조괄 때문에 하루아침에 몰살을 당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다 [紙上談兵] (중국상하오천년사, 2008.4.25, (주)신원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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