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이 사람차이

카라얀: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지휘에만 집중-> 나머지는 차단

modest-i 2022. 11. 14. 20:07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본질이 담긴 노력

 

 

 카라얀처럼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단계까지 집중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신호의 차단을 근본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카라얀은 의미 있게 답한다.

 

 "혹시 들소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까? 어느 날 한 청년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부모님에 대해 명상을 하라고 그 청년을 자신의 오두막으로 보냈습니다. 그곳은 나뭇잎으로 덮인 작은 오두막이었는데 출입문이 상당히 좁았습니다. 그 청년은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도저히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스승은 그에게 장미에 대해 명상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그러자 청년은 자신이 농장에 있는 들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오두막에 다시 들어가 들소에 대해 명상해봐라'하고 스승이 말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청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스승은 걱정이 되었고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청년을 오두막에서 불러냈습니다. 청년이 말했지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좁은 문으로는 도저히 소뿔을 끌어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자 '이제 너는 제1단계에 도달했구나'하고 스승이 말했습니다. 작품과 제가 혼연일체가 된다는 것은 이와 같았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오두막의 들소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았다던 그때의 카라얀을 만나보자. 시간을 돌려서 오스트리아 빈의 한보판에는 뭐가 바빠도 한창 바쁜 학생 한 명이 있었다. 카라얀이 빈에서 사회 활동을 한 흔적은 거의 없다. 같은 학년의 학생들은 카라얀이 온종일 지휘대에 서 있던 것만 기억했다. 매점에서 급하게 샌드위치를 비우고 지휘대로 다시 복귀해야 하는 살인적인 연습량에도 정작 당사자인 카라얀은 만족스러워했다. 게다가 그 살인적인 연습은 카라얀 스스로가 부여한 것이다. 리처드 오스본은 이때 카라얀이 부모님에게 보냈던 편지를 꺼내 읽어준다.

 

 "연주회는 이제 매우 활발합니다. 오페라 극장에도 종종 갑니다. 최근에는 에른스트 폰 도흐나니의 피아노 연주회를 관람했습니다. 오늘은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베르디의 <레퀴엠>을 듣고 내일은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교향곡 연주회가 있습니다. 금요일에는 작은 아버지가 주신 티켓으로 모스크바 에술가 연합의 공연에 갈겁니다. 그 티켓을 구하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베버의 <오이리안테> 서곡의 첫 지휘를 맡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에 두 번째 지휘를 하고 싶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4번 <로맨틱>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하기엔 당혹스럽다. 그렇지 않은가? 편지는 마치 보고서처럼 읽힌다. 이제 막 대학 생활에 접어들어서, 친구가 어떻고 자취 생활은 어떻고 한창 바깥의 풍경에 빠져 있을 나이지만 그의 사회 활동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두막에서 부모님이 원하던 기술자의 길을 떠올리자 빨리 도망쳤던 아이는 가장 소중했던 지휘봉을 떠올리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편지를 다시 읽어보자. 편지에는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었다. 자신의 경력을 박살내려 한 푸르트벵글러의 연주회를 관람했다고? 더 인상적인 지점은 카라얀이 베를린 국립 가극장의 지휘자가 되고 푸르트벵글러가 본격적으로 경계를 하기 시작할 때도 푸르트벵글러의 음악회에 변장을 하고 찾아가 들었다는 사실이다.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는 카라얀의 인생을 망치려 들었다. 이 의문에 카라얀은 보통 사람들의 감정과는 동떨어진 답을 한다.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는 지휘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고, 그 둘의 장점을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저의 최종 목표였으니까요."

 

 푸르트벵글러 즉흥적으로 주관적인 영감을 자유로이 해석했다면, 토스카니니 '지휘자는 작곡가가 창조한 음악의 단순 전달자'라는 생각에 악보에 충실한 음악을 선사했다. 그 두 거장의 뒤를 조용히 밟았던 카라얀은 이들의 중간 접점을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잡았다.

 

 카라얀의 이 음악적 세계관을 생각했을 때 무언가 무릎이 탁 쳐지는 것이 없는가? 1954년 푸르트벵글러가 주고, 1955년 그의 뒤를 카라얀이 이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푸르트벵글러의 다음 차세대 지휘자를 찾던 스카우터들에게 유일한 답안지는 카라얀이었다. 카라얀의 오두막에는 푸르트벵글러라는 들소가 있었던 것이다. 그 들소가 성난 표정으로 자신을 위협하려 들어도 가장 소중한 들소를 바라보던 카라얀의 표정에는 깊은 기다림이 있었다. 성공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개인의 재능에 맞는 때가 도래해야 한다. 그 들소가 더는 힘을 쓰지 못하자 카라얀은 조용히 오두막을 나왔다. 결국 그는 때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완벽한 환경 신호의 차단과 분명한 집중,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오두막의 힘은 강력하다. 누구나 모든 환경 신호를 차단할 수 있는 오두막을 지을 수 있다. 그리고 남들이 권하는 '장미' 대신에 자신만의 가장 소중한 '들소'를 떠올리는 것, 그것에는 이전과 다른 특별한 힘이 있다. 그것은 공과대학 하숙집 앞에서 허공을 휘젓던 아이도 특별하게 만든다.

 

 오두막에 들소를 품은 카라얀을 좀 더 자세히 만나보자. 대학에 갓 발을 들이고 학교 앞에서 수강 신청을 하던 카라얀은 지휘 과목을 신청했지만 불행히도 그 과목을 가르칠 지휘자는 없었다. 게다가 당황스럽게도 학교에서는 다양한 음아의 이론적인 부분이나 역사 등 지휘 이외의 것들에 대해 상당한 완벽을 요구했다. 카라얀이 눈을 감은 것은 바로 그때부터다. 음악사는 B학점으로 기록되었고 교수들이 만족할 수 있는 잡다한 지식들도 줍고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작곡도 해내라는 학교의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카라얀은 페드로이아의 큰 스윙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순간에 '지휘' 그 분야 자체에만 빠져 있었다.

 

 학교는 이런 카라얀을 거칠게 대했다. '작곡을 포함한 모든 규정 과목에 합격하지 못하면 지휘 과정을 이수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게다가 작곡 과목 시험의 경우 대학의 최고 권위자인 프란츠 슈미트 앞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왜 지휘자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작곡까지 요구하는가? 그것은 사회가 마음대로 고안한 재능의 판단과도 같다. 위대한 수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에게 과학과 기술, 언어, 역사 등을  필수 과목으로 요구하듯이 악보를 표현하려면 이왕이면 멜로디를 떠올려서 악보도 만들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세계적인 지질학자가 될 호너에게 지질학 이외의 필수 언어 과목 성적표를 수준 이상으로 요구했던 것과 같다. 하지만 정작 지휘자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위대한 지휘를 하면서 동시에 위대한 곡을 남긴 지휘자는 열 손가락에도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휘' 그 자체와는 동떨어진, 본질과 거리가 먼 분야에서도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아이들은 저마다 새로운 멜로디를 쥐어짰고, 음악사와 여러 음악적 교양들을 담벼락처럼 쌓아나갔다. 반대로 카라얀은 하숙집 허공에서 계속 지휘봉만 잡았다. 무엇이 중요한가에 답하는 카라얀의 본질적 노력은, 놀랍게도 작곡 시험에서 주장을 굽힌 쪽이 카라얀이 아니라 바로 학과장 슈미트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장면을 지켜본 카라얀의 동기들 중 이 일로 문제 제기를 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동기들이 카라얀의 편에 섰다.

 

 "그의 지휘 재능이 너무도 뛰어나서 그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겁니다."

 

 바로 이것이 재능의 설득이다. 수학자가 되려는 아이에게 언어적 사고력이 어떻고, 어휘력, 암기력 등을 점검할 때 수학 공식과 그 아름다움에 더 깊게 빠져든 아이들의 재능이 갈수록 반짝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슈미트도 완전히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이 젊은이가 작곡 작품을 제출할 수 없다면 최소한 관현악 편곡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슈미트는 주장했다. 카라얀은 다행히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3번 C장조 작품 2의 제1악장을 관현악용으로 편곡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최종 지휘 시험에서는 카라얀은 한 번 더 자기 방식대로 할 것을 고집했다. 다음 기록을 읽어보자.

 

 "리허설은 전문가들 전원 앞에서 했다. 프란츠 슈미트가 심사위원장으로서 심사를 시작했다. 나보다 앞서 지휘한 동기들은 자신의 솜씨를 발휘했고 그 상황에서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기량을 보여주려고 했다. 내 차례가 왔고 나는 오케스트라를 상대로 일을 벌였다. 사람들은 우리가 단순히 그 서곡을 한달음에 지휘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무대에서 오히려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주문했다. "트럼펫, 한 사람씩 해주세요"라든가 "아니요, 그 부분에 리듬이 없잖아요"라든가. 이런 식으로 트럼펫의 첫 도입 부분에만 약 십 분을 썼다. 그러자 프란츠 슈미트가 일어나 시험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편곡 시험에서 카라얀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른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보는데, 오히려 카라얀은 진짜 지휘자처럼 군 것이다. 오히려 트럼펫을 지적하는가 하면 리듬이 빠졌다는 식으로 실제 리허설 현장처럼 말이다. 게다가 트럼펫의 첫 도입 부분에만 약 십여 분을 낭비했다고? 슈미트는 당황한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뒤로하고 선을 그었다.

 

 "여러분, 제가 보기엔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카라얀은 슈미트의 인정을 칭찬으로 간주했다. 카라얀의 성적표에는 예외적으로 '합격'이 붙었다. 당대 '가장 완벽한 음악가'라는 평을 받던 슈미트가 앳된 카라얀의 손을 들어준 것은 카라얀의 기가 더 쎄다거나 노력이 빛을 발했다 따위의 상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는 가장 완벽한 음악가로 불리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가장 완벽한 지휘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설득했다. 가장 완벽한 지휘자의 모습에는 어설픈 작곡 실력과 음악사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어설프게 오케스트라를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르르 몰고 가는 아마추어 학생들보다, 완벽한 지휘를 위해서는 꼼꼼히 트럼펫부터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는 것을 카라얀은 보여주려 했다. 슈미트는 지휘자의 본질을 찾으려는 이 아이의 손을 대학의 전통적인 규정을 깨고 인정해주었다.

 


 

 카라얀은 대학 문을 나서서, 어설프게 우르르 오케스트라를 몰고 다니지 않았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는 세 번의 리허설 이후에는 만족한 표정으로 무대장에 들어가지만, 카라얀의 오케스트라 팀들은 무려 60회 이상 독한 세션 연주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카라얀이 무대에 올려보낸다. 카라얀은 적당히 오케스트라 음을 빚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적당히 학교에서 졸업장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어설프게 연주하려 할 때 트럼펫을 다시 찾아가 리듬이 없음을 지적하는 행위에는 어떠한 타협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위대한 지휘자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본질에 노력을 더해보자. 카라얀은 울름에서 정확히 하루에 '18시간'을 지휘했다. 막노동자와 밑바닥이라고 부르는 오케스트라 시민 단원들이 하루에 '18시간'동안 의미 있는 독한 연습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찾아와서 그들의 혼을 흔들었다. 6주간의 격렬한 연습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단원들이 연주하자 별 기대 없이 앉았던 관객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기립 박수를 쳤다. 그리고 더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재능을 처음으로 확인한 카라얀의 연주자들이었다.

 

 "우리 몸이 송전탑에 닿아 4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마치 송전탑을 만지고도 살아남은 사람처럼* 한 연주자는 카라얀이 자신에게 다가온 순간을 회상했다. 오스본은 지적한다. 연주자들은 카라얀의 용의주도하고 기하학만큼이나 정확한 박자로 휘젓는 지휘에 감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휘봉의 거대한 일격에 활기를 찾은 자신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고. 카라얀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카라얀의 오두막 속 '들소'가 그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차단하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한 아이들은 그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본질적인 영역까지 두드린다. 그 오로라는 대단하다. 이쯤에서 우리가 만났던, 평범 이하의 학생에서 세계 최고의 하버드 스타로 바뀐 키신저Kissinger(전 미국 국무장관)의 오로라에 다시 한 번 끄덕이게 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 공부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그 질문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모두의 오두막을 짓고 들소를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키신저처럼 환경의 신호를 차단하는 오두막이 만들어지고, 카라얀의 경우처럼 적당한 과학자의 가운을 주변에서 입히려 할 때 들소처럼 지휘봉을 들어봐야 한다. 그것은 몇 점대의 학생인지, 어디 출신인지, 지금까지 얼마를 노력했는지 따위와 관련된 질문이 아니다. 지금 마음속에 가장 소중한 것이 없다면 평범의 신호가 우리를 평범하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평범하게 만들어나갈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것을 벗어나려면 우리도 스승을 찾아가서 그 오두막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 책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에서 발췌

 


 

우쿨렐레사랑모임에서 펌함

 

각색: 모디스티 2011.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