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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 독후감 /낙서하는 곳,작성자 구루뤼

modest-i 2021. 9. 7. 00:24

단순한 옛날 이야기 책은 아니다. '금융'이라는 경제의 핵심 제도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진화'했는지를 추적함으로써, 경제사 혹은 경제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퍼거슨의 목표이다.

 

확실히, 퍼거슨은 맑시스트는 아니다. 퍼거슨은 "자본은 점차 집중되기 마련이다"라는 힐퍼딩의 운명론적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창조적 파괴'를 추구하는 이들에 의해 계속 새로운 제도가 생겨나고,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사회에 안착한다, 라는 것이 퍼거슨이 경제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요소들은 있지만, 정해진 결말은 없는듯 보인다. 수백년간 세계사를 주도해 왔던 서양세계가 중국을 선두로 한 동양에 밀릴 수도 있다고 보는 저자니만큼, 운명론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금융처럼 인간이 만든 제도는 생물학의 진화 과정과 다르다. 목이 긴 기린과 짧은 기린은 신이 만든 세계에서 경쟁했지만, 미국 남북전쟁당시 그린백과 면화채권이 싸운 링은 인간이 만든 금융시장이었다. 퍼거슨도 말하듯, 금융의 발전 과정에서는 '인간의 지적 설계', 즉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기 마련이고, 어떤 제도가 승리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다소의 우연은 섞여 있을지라도, 권력과 대중의 반응이다.

 

금융의 역사를 생물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퍼거슨의 역사관이 다소 밋밋하게 보이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물론 퍼거슨의 역사관을 확인하려면 그의 전작들을 함께 살펴봐야 하겠지만, 최소한 '금융의 지배'라는 책에서 퍼거슨은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관점을 담아 경제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복잡한 수식으로 경제를 해석하는 주류경제학이 '사실은 비합리적인 인간'이 참여하고 판단하는 실제 세계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퍼거든 또한 '사실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경제의 역사를 경제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러한 아쉬움도 약간 있지만, 금융의 지배는 매우 훌륭한 책이다. 화폐, 은행, 채권, 주식, 보험, 부동산 등 금융 각 부문의 역사를 박식하고 언변 좋은 할아버지가 이야기 들려주시듯, 재밌게 풀어주고 있거니와, 역사학의 관점에서 '완전한 세상'을 가정하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이 어떻게 틀렸는지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진화'라는 틀을 기본 역사관으로 가져간다면, 경제를 주류경제학에서처럼 '합리적 인간의 모든 정보를 알고 의사결정을 내리며, 개인의 의사결정이 전체 시스템에 바로 반영되는 퍼펙트 월드'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진화'는 기본적으로 '불완전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뭔가 부족한 게 있어야 변화가 필요하니까.

 

퍼거슨이 보기에 화폐, 채권, 주식, 보험, 부동산 등 여러 금융제도는 무언가 아쉽고 부족한 것을 해결해 보려는 '창조적 파괴'에서 비롯되었고, '지적 설계가 포함된 자연적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쳐 자리잡았다. 물론 창조적 파괴가 시도된 과정은 매우 정치적이었다. 대다수의 금융제도들이 상업 목적으로 출발했지만, 전쟁을 수행하거나 왕권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널리 확산되었으니까. 결국 불완전한 인간 또는 사회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되었고,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 살아남았으니, 금융제도의 역사는 '합리성', '완전정보', '시장균형'과 같은 경제학의 원칙과는 매우 다른 궤도 위에서 발전해온 셈이다.

 

사실, 조지 소로스가 말하듯, '시장의 균형상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합리적이기보다는 습관적/감정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증거는 심리학쪽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고, 개인은 비합리적일지라도 집단적 판단은 합리적일 수 있다는 가정도 사실 그리 미덥지 않다.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재정거래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부의 원천에 대해 정당한 댓가인지 착취인지 논쟁이 지속되고 있으니까.

 

뭐, 그렇다고 주류경제학이 당장 메인스트림의 자리를 내어놓을거라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역사가의 눈에 비친 금융/경제사는,

퍼퍽트월드라기 보다는 한뼘한뼘 시야를 넓혀나가는 스타크래프트의 세계이다.

 

 

[출처]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 독후감|작성자 구루뤼

 

 

각색 모디스티 21.9.6

 

첨삭 :책명이 '돈의 부상' 또는 '화폐의 부상' 이 맞는 듯, 원제 The Ascent of Money임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 몇 가지 생각 

# 1  


'금융의 역사'는 금융산업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과정이 궁금한 이들에게 괜찮은 교과서이다. 채권, 은행, 주식, 보험, 모기지 등 다양한 금융상품과 제도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경제 및 사회활동의 윤활유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스냅사진이다. 저자의 역사관, 누가 혹은 무엇이 역사를 이끌어가는지에 대해 이 책은 별달리 들려주지 않는다. 현금의 역사(The Cash Nexus : Money and Power in the Modern World), 제국(Empire : The Rise and Demise of the British World Order and the Lessons for Global Power) 같은 전작들과 함께 읽어야 전체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 2
 
화폐(Money)의 본질은 '믿음'이다. 물물교환 시대에서 눈으로 상대방의 물건을 확인한 이후에야 거래가 이루어졌다. 화폐가 생겨나면서 그런 번거로움이 사라졌는데, 화폐로 비슷한 가치의 물건과 교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즉 누가 화폐의 교환성을 보장했는지가 화폐의 역사를 다룰 때 핵심 사안이다.
  
# 3
 
상인 --> 국가 --> (중앙)은행의 형태로 화폐의 신뢰 보장자가 변화해 왔다. 국가에서 공인한 화폐가 없었던 시기에는, '어음'처럼 상인이 보증하는 화폐가 유통되었을 것이다. 상인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또는 상인의 명성을 신회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어음이 소용 없을테니, 화폐의 유통지역은 넓지 않았을테고 형태도 통일되지 않았을 듯 싶다. 퍼거슨은 전쟁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어쨌든 국가에서 화폐를 발행하고 관리하면서 비로소 국가 단위로 화폐가 유통될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1668년 네덜란드 Riksbank를 시작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설립되면서 화폐의 관리자가 은행으로 바뀌었다.
 
# 4
 
금본위제에서는 '금의 양'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척도로 화폐의 유통규모가 결정된다. 하지만 금본위제가 해체되고, 중앙은행(또는 국가)이 화폐 발행량을 결정하는 현재 체제에서는, (중앙은행)의 신뢰도가 (화폐의) 신뢰를 보장하는 희한한 구조가 성립되었다. 태생적으로 불안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소비가 늘어나면서 화폐와 금융제도를 거의 최대치까지 활용하고 있다 보니, 돈의 움직임에 따라 경제가 이리저리 쏠리는 현상이 심해질 수 밖에 없다.
 
# 5
 
'중앙은행'이 화폐의 관리자로 적정한가의 문제도 있다. 중앙은행이 국가에 종속되는 경우도 많지만, 미국처럼 사실상 독립한 경우도 있다. 선출직인 국가 행정관료와 달리,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중앙은행의 의사결정권자가, 경제의 핵심도구인 화폐를 좌지우지하는 권한을 갖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은행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있고, 은행의 공정성을 확신할 수 없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특정 세력의 돈벌이 수단으로 중앙은행이 쓰이고 있다는 주장은 쑹홍빙의 '화폐전쟁'의 테마이기도 했다.
 
[출처]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 몇 가지 생각|작성자 구루뤼

 

 

니얼 퍼거슨의 금융의 지배는 BBC 다큐멘터리 '돈의 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매우 고품질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아래 링크로 우선 걸어둔다. (본인도 아직 보지는 못했다는...)

니얼 퍼거슨의 작품 중, 원래 이 책 '금융의 지배' (원제는 The Ascent of  Money: A Financial History of the World 이다.)를 읽으려고 했는데, 당시 책을 구매하려니 이상하게 배달 시간도 오래걸리고 하여 대안으로 '시빌라이제이션'을 읽었다. 이제서야 '금융의 지배'를 읽고 나니 마치 '시빌라이제이션'의 전초전 같은 느낌이 나고, 몇몇 단락에서는 해당 작과 유사한 역사적 이야기들이 언급되고 있다.

 

책은 2008년에 출판이 되었는데, 당시 금융위기를 고려하면 아마 꽤나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책의 내용은 

  1. 탐욕의 꿈 (화폐와 신용의 성장)
  2. 채권의 득세 (채권 시장)
  3. 거품 만들기 (주식 시장)
  4. 위험의 도래 (보험)
  5. 절대 안전 자산 (부동산 시장)
  6. 제국에서 차이메리카로 (국제 금융의 성장과 쇠퇴 그리고 부흥)

의 6개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내용은 ( )안의 아이템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시빌라이제이션도 그랬지만, 지은이의 역량인지 역자의 역량인지 모르겠지만 책이 내용에 비해 매우 가독성이 높아서 술술 읽힌다. 그러므로 일독을 권하며, 여기에서는 주요 내용들만 간단히 요약하면서 넘어가고자 한다.

 

인트로에서 언급되는 내용으로, 2006년 기준

  • 전 세계 경제 산출량(아마 GDP를 말하는듯)은 약 47조 달러이며,
  • 전 세계 주식 시장의 가치는 51조 달러 (GDP보다 10% 높음)
  • 전 세계 채권의 가치는 68조 달러 (GDP보다 50% 높음)
  • 전 세계 파생 상품 거래 잔액은 473조 달러 (GDP보다 10배 높음)

로 실물시장보다 금융시장이 훨씬 비대해졌다. 소위 말하는 Wag the dog 으로 이전 글 '브렉시트'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영국과의 실제 교역량은 얼마 안되지만 브렉시트 발표와 함께 금융시장이 출렁거린것이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은행의 탄생 역사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시발점으로 언급되는데, 메디치 가문이 환전상에서 업무를 시작하면서부터 은행의 업무를 다각화하여 확장하였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시기에 맹활약을 하였다고 한다.

 

채권의 기원 역시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를 주무대로 보고 있는데, 채권의 역사는 전쟁과 아주 밀접하게 발전해왔다고 한다. 전쟁의 승리는 곧 돈이기 때문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채권 개념을 고안하여 수많은 투자자에게 팔았다. 나폴레옹 시기에 전쟁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채권이 발행되었다고 하는데, 1793년~1815년까지 영국 국채는 3배 증가하여 영국 연간 산출액의 2배가 넘은 7억 4500만 파운드를 기록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과 유사하게 이러한 기회를 발판으로 떠오르는 가문이 있었으니 바로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재밌는 사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가 워털루 전투결과를 미리 습득하여 베팅한 결과 얻은 것으로 회자되고 있으나, 이는 나치 요제프 괴벨스가 선동한 내용이라고 한다. 실은, 웰링턴의 승리로 파산을 간신히 모면한 수준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이 영국 봉쇄령을 내렸을때, 영국의 재정확보를 위해 금밀수를 국가차원에서 시행하였는데 그 대행을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하였다. 이후, 전쟁이 장기화 될 것을 고려해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자체적으로도 엄청나게 금을 매집하였다고 하는데, 전쟁이 생각보다 빨리 종료되어 금 가격이 하락되면서 큰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이런 손실에서 탈피하고자 큰 베팅을 감행하게 되는데, 전쟁 종료로 영국 정부의 차입이 감소하여, 채권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여 끊임 없이 국채를 사고 1년 이상 홀딩하였다. 1817년 채권가격이 40% 이상 오르자 그때 처분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가치로 그가 번 이윤은 6억 파운드(한화 약 1조원)라고 한다. 이런 성취로 그를 금융계의 나폴레옹이라고 저자는 칭하고 있다.

 

채권의 역사를 보면, 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오늘날 그렇게 안정적으로 생각하는 채권역시 수많은 나라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휴지조각으로 귀결 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몰락도 모라토리엄 선언이후 그랬고, 러시아는 두번인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여 국제적으로도 아주 risky한 나라가 아닌가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 언급할 기회가 있으면 하도록 하겠다.

 

부동산 파트에서는 '나쁜 펀드매니저와 거래하라'에서 언급한것 처럼, 1987년 미국시장에 10만달러 부동산 투자시 2007년이 되면 27만달러~29만 9천달러로 약 3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 S&P에 투자시 77만 2천달러로 주택시장 수익의 2배 이상을 더 버는 것으로 통계가 나온다.

 

이전 글에는 고려를 못했던것 같은데, 주택 시장의 수익률과 주식시장을 비교시에는 주택 시장에서의 주거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본인이 전세 거주시 수반되는 집세, 임대를 주고 있다면 임대료 등) 부동산에서 임대료를 고려치 않고, 주식에서도 배당을 제외한다면 S&P는 7배-> 5배로 수익이 줄어든다고 한다. 임대료 수입을 포함하고 배당을 포함하면 격차가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S&P가 높다고 한다. 평균 임대 수익이 5%에서 부동산 붐 절정기에 3.5%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차이가 지속 유지된다고 한다. (서구에서 부동산 붐 절정기에 수익율이 약 3.5%였던 점을 기억하자)

차이메리카는 니얼퍼거슨이 제안한 개념으로 유명한데, 이 부분은 좀 더 내용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의 성장 및 저임금으로 인한 값싼 제품을 다량생산하여 전 세계로 수출하고, 미국에서는 해당 상품을 수입하여 인플레이션을 자연스럽게 억제한다. 미국의 국채는 중국에서 대부분 사들이며, 이는 국채를 사면서 상대적으로 중국 위완화의 환율을 자연스레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2008년 이전에도 상당히 익숙한 개념이었는데, 왜 이슈가 됬는지는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내역을 찾아보니 니얼퍼거슨이 2006년경 경제학 교수와 논쟁시 언급한 것이 시발점이라고 한다.

 

여하튼 금융의 역사를 아이템별로 돌아보며, 그 의미하는 바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출처] 금융의 지배 / 니얼 퍼거슨|작성자 gatt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