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표 5/01 - 영국군 정보부의 민스미트 작전
1943 - 영국군 정보부의 민스미트(Mincemeat) 작전
히틀러를 속여 넘긴 시체 한 구
곰PD의전쟁이야기
1943년 5월 1일 이른 새벽, 스페인 우엘바(Huelva) 해변에서 한 어부가 파도에 밀려 온 영국 장교 시체를 발견 합니다. 구명조끼를 걸친 시신은 부패해 있었지만 주머니에는 신분증이 있어서 신원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영국 해병대 소속 윌리엄 마틴 소령.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는 수갑으로 연결된 서류 가방이 발견 되었습니다.
1943년 초,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롬멜 장군의 아프리카군단을 격파한 연합군에게 남은 과제는 유럽 본토로의 진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놓고 미국과 영국간에 이견이 생깁니다. 바로 침공의 발판을 어디서부터 만들까하는 문제였는데, 미국은 단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단숨에 프랑스에 상륙해 독일로 진격하자고 했고, 영국은 일단 이탈리아부터 공격해 독일을 압박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알제리 카사블랑카에서 회담한 루즈벨트와 처칠은 일종의 타협안에 합의합니다. 당시 연합군의 전력으로는 바로 프랑스를 침공하기는 힘드니 대신 시칠리아에 상륙해 이탈리아를 위협하고, 다음 단계로 프랑스에 발을 들여 놓겠다는 안이었습니다. 허스키 작전으로 명명된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작전은 1943년 7월에 실행될 계획이었습니다.
시칠리아 섬 상륙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독일군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아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데, 영국 정보부는 기발한 작전계획을 내놓습니다. 민스미트(Mincemeat, 곰PD 주: 다진 고기에 잘게 썬 사과, 건포도, 기름, 향료 등을 섞은 영국 전통 음식)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작전은 해군 정보 장교 유웬 몬태규 (Ewen Montagu) 중령의 머릿속에서 나왔는데, 가상의 장교를 하나 만든 다음, 그 장교로 위장시킨 시체에 독일군을 따돌릴 정보를 매달아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미끼를 놓을 장소는 스페인으로 정해졌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스페인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지만 독일과 이탈리아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추축국 정보기관의 영향력이 큰 나라였기 때문이었죠.
영국 정보부는 공동묘지에서 한 행려병자의 시신을 구해다가 윌리엄 마틴 소령이란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영국해군 지중해 사령관에게 연합군이 그리스를 침공한다는 거짓 명령이 담긴 기밀 서류가 든 서류가방을 묶어 놓고 폭풍우가 불던 날 밤, 이 시신이 스페인 해안으로 밀려가게 했던 것입니다. 영국 해군 잠수함 세라프(HMS Seraph)가 이 작전에 동원 되었습니다.
얼마 후, 스페인 정부는 영국군 소령 윌리엄 마틴의 시신이 스페인 해안에 떠밀려 왔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즉각 영국 정부는 시신과 서류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영국 정보부가 예상했던 대로, 스페인 당국은 이 시신과 서류를 독일 정보요원에게 넘겨준 뒤였습니다. 윌리엄 마틴 소령의 시신은 스페인에 매장되었고, 서류 가방은 일 주일 만에 영국 정부에 전달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서류봉투는 개봉된 흔적이 없었지만 영국 정보부는 이 봉투를 철저하게 검사했고, 마침내 이 봉투가 개봉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위장작전은 성공이었습니다.
정보기관으로부터 연합군이 그리스를 침공하려한다는 보고를 받은 히틀러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귀환한 롬멜 원수와 그의 기갑부대를 그리스 방어를 위해 남부 유럽으로 배치했고, 시칠리아의 독일군 방어선도 축소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1943년 7월 10일, 몽고메리와 패튼이 지휘하는 16 만 명의 연합군 병력이 시칠리아 상륙에 성공합니다. 독일군이 시칠리아 방어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연합군 상륙 이후 39일간 벌어진 시칠리아 전투는 2차 대전의 판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시체 한 구가 수많은 연합군 장병들의 생명을 구하고 승리의 발판까지 마련한 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페인 우엘바의 묘지에 묻힌 윌리엄 마틴 소령은 누구였을까요. 2차 세계대전의 숨겨진 영웅인 이 시신의 정체는 결핵으로 고통 받다가 쥐약을 먹고 자살한 34살의 행려병자 글린더 미첼이었습니다.
/곰PD의전쟁이야기 2007/08/30 00:00
http://blog.ohmynews.com/gompd/143084
출처 - http://cafe.daum.net/people.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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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의 시실리 섬 공격 계획>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이
가장 상책 중에서도 상책이라 하였다.
전쟁은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내는
한 마디로 'Total war'이기 때문에 이기던 지던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현대에 들어 심리전이 중요시 해지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민스미트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2차대전 당시 북부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을 몰아낸 연합군은
독일, 이탈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남부 유럽으로 상륙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남부 유럽으로 가는 루트에는
이탈리아의 시실리 섬을 통해 가는 것이 연합군으로서 최적의 루트였다.
그리하여 연합군은 그 중에서 시실리 섬으로 상륙 후, 점령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이탈리아와 독일을 서서히 압박할 생각이였다.
그러나 독일, 이탈리아로 이루어지 추축군 역시도
연합군의 루트를 파악하고 이미 23만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시실리 섬의 상륙은 매우 쉽지 않은 상황이여서 추축국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작전이 매우 시급했다.
이 때, 영국군 해군 정보장교 몬테규 중령이 내놓은 작전이
바로 '민스미트 작전'이다.
영국군은 쥐약 먹고 자살한 34살의 노숙자의 시체를 '윌리엄 마틴'이라는
이름의 가상의 영국군 소령으로 변장시켜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우연히 해안가에 떠밀려온 것 처럼 스페인 우엘바 해안가에
시체를 버렸다.
시체에는 기밀문서 가방이 손에 채워져있었고
가방 안에는 영국 막료로부터 튀니지 주재 영국군 알렉산더 장군으로 보내는
기밀문서가 있었다.
내용은 즉슨, 연합군이 샤르데나 섬과 그리스를 거쳐 공격을 한다는 내용이였는데
그 뿐만이 아니라, 위장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가방 안에는
은행의 채무변제 독촉장과, 연애편지 등이 같이 들어있었다.
이 당시 스페인은 겉으로는 중립국이였지만 사실은 독일과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에
당연히 이 기밀문서는 독일에게 흘러들어갔는데,
이 점 역시 연합군은 고려를 하여 그 장소를 스페인 해안가로 정한 것이였다.
얼마 후에, 영국은 스페인으로부터 시신과 문서를 돌려받았고
문서가 개봉된 흔적을 발견하자 영국은 작전이 성공함을 알아챘다.
실제로 독일은 시실리 섬의 방어를 축소하고 그리스로 병력을 보냈는데,
그리고 1943년 7월 10일 연합군은 시실리 섬을 공격, 최대한 피해를 줄이며
점령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는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이 무너지는데 크나큰 영향을 미쳤으며
몇 없는 동맹국을 잃은 독일에게 뼈아픈 피해가 되었다.
[출처] 독일을 완전히 속이다. - 민스미트 작전|작성자 creativit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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