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 장군들의 장군, 2차대전 승리의 진정한 기획자《마셜(Marshall)》
[출처] [도서리뷰] 장군들의 장군, 2차대전 승리의 진정한 기획자《마셜(Marshall)》|작성자 욱이님
"대통령님,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있음을 상기드립니다. 그리고 아시는 것처럼 그것 때문에 종종 대통령님이 불쾌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셜의 물음에 루스벨트는 활짝 웃으며 "괜찮소!"라고 대답했다. "저는 불쾌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대통령님께 말씀드립니다." 루스벨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고 있소." - 본문 p.20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거대한 공업력은 독일이나 소련, 영국 등 여타 국가들을 완전히 압도하였습니다. 공장에서 무한대로 찍어내는 전차와 야포. 항구를 통째로 메운 군함들. 하늘을 뒤덮는 전투기와 폭격기 편대. 2차대전 매니아들 입장에서는 미국의 거대한 생산력이 너무나 인상적이다보니 그 모습에만 주목할 뿐 정작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망각하게 됩니다.
▲ 사막에 끝없이 늘어선 폭격기들. 미국의 물량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국가가 제아무리 많은 인구와 자원, 산업 설비를 갖추고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전쟁에 동원하는 것은 별개의 얘기입니다. 전장에 군대를 보내려면 우선 수백만명의 민간인을 소집하고 군복과 무기를 쥐어주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또한 이들을 지휘할 지휘관을 임명해야 하고 군수품을 생산 확보하여 필요한 곳에 적시에 투입해야 합니다. 각군이 요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수요를 취합하고 조정하여 정부 부처와 기업들에게 요청하여 최대한의 협력을 얻어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읽는 전쟁사에는 주로 야전에서 지휘하는 장군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며 그들의 화려한 승리를 스포트라이트합니다. 그게 훨씬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는 단순히 전투의 승리만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진짜 전쟁은 예산과 인력,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동원하여 배분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근세 이전의 거대한 제국들이 인구와 자원에서 훨씬 취약한 유목민족들에게 멸망당한 것은 이런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의 군사력이나 군사 문화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뒤쳐져 있었습니다. 또한 미국 사회는 독일이나 소련, 일본같은 전체주의 국가에 비해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는데 훨씬 불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신속하게 전시 체제로 개편한 다음 그 어느 나라보다도 전쟁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반면, 개전 초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독일이나 일본은 자원을 주먹구구식으로 마구 낭비하며 승리의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기본 체력에서도 차이가 있을 뿐더러, 있는 자원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니 전쟁에 패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 이 깐깐한 영감님이 없었다면 미국이 제아무리 거대한 공업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무용지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역할을 했던 사람이 미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조지 마셜 원수입니다. 그는 장군들의 장군이자, 전쟁의 기획자이며 미군 역사상 최고의 행정가임과 동시에 가장 뛰어난 전략가였습니다. 전세계에 걸친 거대한 전구를 조정하고 병력과 물자를 필요한 곳에 보내주고 각군의 알력을 조율했으며 군과 정부, 의회의 중간 역할을 적절하게 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나 패튼, 니미츠, 맥아더같은 이들을 배우라고 한다면 마셜은 이들을 총지휘하는 감독에 해당됩니다. 또한 RTS게임에 비유한다면 마셜의 역할은 바로 게이머 자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이나 소련에도 롬멜, 만슈타인, 쥬코프, 코네프 등 뛰어난 야전 지휘관은 얼마든지 있지만 마셜에 비견되는 전략가가 있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역할을 다름아닌 히틀러와 스탈린이 직접 맡았기 때문입니다. 행정 역량과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 독재자들은 단지 권력을 남들에게 내놓기 싫다는 이유로 독점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단기 승리에만 집착할 뿐 전략은 주먹구구식이었고 각 전구는 서로 따로 놀았으며 자원은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미국의 시스템은 루즈벨트를 정점으로 하면서 권한과 책임을 법과 제도로 체계적으로 분산시킴으로서 효율성을 극대하였습니다. 미국이 승리한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역시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에서는 마셜과 같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엄청난 자원만 낭비한 채 승리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물러나야 했습니다. 2차대전에서 마셜의 역할은 누구보다 중요했지만, 그럼에도 일선에 직접 나서지 않고 후방에 있었다는 이유로 롬멜이나 패튼과 같은 야전 지휘관들의 화려한 전공에 밀린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국내에 마셜의 보병전술, 마셜 리더쉽 등 마셜에 관련된 책이 몇권 있지만, 플래닛 미디어에서 나온 《마셜 - 전쟁 영웅들의 멘토, 천재 전략가(원제 : Marshall: lessons in leadership)》은 마셜의 일생 전반을 다룬 평전입니다.
어린 시절 천재성은 고사하고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던 마셜은 버지니아 군사학교에 들어가 자신의 천직을 발견합니다. 초급장교 시절 필리핀과 멕시코 국경, 제1차 세계대전에서 뛰어난 리더쉽과 조직력으로 남다른 역량을 발휘하였고 또한 자기보다 훨씬 높은 계급을 가진 상관에게도 직언을 하는 등 소신적인 모습으로 주변의 주목을 받습니다.
1917년 6월 맥아더의 무지개 사단을 비롯해 프랑스에 처음 발을 디딘 퍼싱 소장이 지휘하는 미국 원정군에는 퍼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거의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훈련도 빈약했고 장비와 무기도 형편없었습니다. 부대 훈련을 참관한 퍼싱은 완전히 폭발하여 사단 전체 장병들이 보는 앞에서 사단장을 호되게 질책하였습니다.
그러나 퍼싱의 참모였던 마셜은 그 자리에서 잘못은 사단장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보급 부족, 전투화조차 없는 군인들, 불충분한 막사, 수송수단 부족, 다른 연합군과의 협조 결여 등 미군이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는 것이지만, 37살의 젊은 임시 소령이 자신보다 20살이나 나이가 더 많고 미 육군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장군에게 대든다는 것은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셜 스스로도 뒷날 "그 때 나는 완전히 미쳤었다"라고 회고하였고 주변 동료들은 마셜의 군 생활은 완전히 끝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퍼싱은 이 겁없는 장교에게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았고 마셜은 참모 장교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하였습니다.
마셜 자신은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야전 장교로서의 활약을 원했지만, 그의 역량은 오히려 행정과 병참 업무에서 발휘되었습니다. 수십만명이 투입되는 미군으로서는 전례없는 작전에서 그는 적병과 직접 싸우는 대신, 산더미같은 서류와 싸우며 복잡한 작전계획과 시간표를 짜고 적시에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였습니다. 미국 원정군의 병참 총책임자였던 모즐리 장군은 마셜에 대해 "그의 계획 아래 기동한 부대는 항상 승리했다"며 그의 참모로서의 능력을 극찬하며 전쟁이 단순히 총과 대검만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루즈벨트는 마셜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하였습니다. 루즈벨트는 자존심 강하고 독선적이며 그다지 소통을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마셜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셜은 루즈벨트와 군, 의회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면서 국가의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였습니다. 때로는 상관과 싸워야 하고 자존심 강하고 개성 넘치는 장군들을 콘트롤하면서 말 안 듣는 부하들을 가차없이 내쫓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의 위치는 단순한 군인이라기보다 정치가에 더 가까워야 했으며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자리기도 했습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육군과 해군의 알력 다툼은 유명하지만, 사실 군 내부의 질시와 경쟁은 외부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초월할 정도입니다. 더욱이 미국은 건국 이래 전례가 없는 거대한 규모의 육해군을 별다른 경험이나 노하우도 없이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 내어야 했고 유럽과 태평양이라는 양개 전선을 맡아야 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전황에 맞추어 인력과 자원을 배분하는 일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것이었으며 마셜의 전임자 중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초대 국방장관(이전까지는 미국은 육군부와 해군부가 있었고 국방부가 없었음)이 된 포레스털(J. V. Forrestal)만 해도 과중한 업무에 못 이겨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셜이 이를 무난하게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추축군을 통틀어 수많은 장군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마셜만큼 이 역할에 충실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가령 독일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할더가 마셜보다 무능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할더는 그럴 권한도 없었고 히틀러를 상대로 과감하게 직언할 위인도 되지 못했습니다.
2차대전에 승리한 후 트루먼 행정부에서 마셜은 국무장관이 되어 이른바 "마셜 플랜"을 입안하였습니다. 미국의 일각에서는 독일 경제를 아예 해체시켜 다시는 전쟁을 할 능력 자체를 말살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베르사유 조약이 히틀러의 집권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마셜은 오히려 독일의 부흥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폐허가 되었던 유럽은 마셜 플랜으로 전례없는 번영을 누립니다.
완벽에 가까운 그의 이력에서 유일한 오점은 중국 내전에 조정자로 개입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시아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었던 트루먼은 극동 정책에 명확한 비전도, 계획도 없이 애매모호한 자세를 고수하였습니다. 마셜은 장제스와 마오쩌둥에게 내전 중단과 화해를 종용했지만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짓이었습니다. 오히려 양쪽의 강력한 반발과 불신만 산 채 중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마셜이 떠나자 말자 국공내전은 전면전으로 확대되었고 장제스는 패배하여 타이완으로 도주합니다.
미군의 역사에서 수많은 위대한 명장들이 있지만, 마셜의 리더쉽에 비견될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걸프전을 지휘했고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맡았던 콜린 파월 정도가 비견되지 않을까 합니다.
리훙장, 드골 등을 번역하신 박희성님이 번역을 하셨는데 전체적으로 번역이 아주 매끄럽습니다. 플래닛 미디어에서 나온 만큼 편집 상태도 최고. 이 책을 읽은지는 꽤 되었는데 간만에 다시 읽어보면서 서평을 써 봅니다. 전쟁사 매니아라면 필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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