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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가드너는 리더의 덕목으로 그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가 / 이야기는 바로 통찰 / 통찰력이 세상을 리드한다

modest-i 2015. 2. 4. 13:33

하워드 가드너는 ‘통찰과 포용’이라는 책에서 리더의 덕목으로 이야기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리더와 리더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중요한 차이는 그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리더는 핵심적인 이야기나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바로 통찰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통찰을 말하는 것이다.

 

 

차별도 없고 핵심도 없는 이야기는 시시한 이야기일 뿐이다.

시시한 이야기로는 세상은커녕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조차 설득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시시한 이야기로 리드하려는 사람이 득실거린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아들의 출세를 적극 저지하고 나선 조괄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재삼 곱씹어 볼일이다.

[정보철 : (주)이니야 대표, '고전경영' '한 끗 차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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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의 운명을 바꾸는 선택]통찰이 세상을 리드한다
- 하워드 가드너의 통찰과 포용

기사입력 2014.07.31 14:10:22 | 최종수정 2014.07.31 17: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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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능력을 우리는 통찰력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큰 그림을 보는 방법이고 그것이 리더가 되는 조건이라고 한다.

 혹은 이미 리더가 된 이들이 키워야 할 조건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통찰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기는 것이며,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통찰! 그것은 무엇일까? 먼저 역사에 나오는 조괄의 어머니 얘기를 들어보자..

아들을 전장의 장수로 삼자 뜻밖에 어머니가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도 왕이 고집을 피우자 어머니는 약조를 부탁했다.
“대왕께서 끝내 그를 보내시겠다면 그 얘가 자기소임을 감당하지 못한다하더라도 소첩을 자식의 죄에 연루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왕은 이를 승낙했다. 전쟁은 어머니의 예상대로 아들의 실책으로 패하고 말았다. 왕은 앞서 약조한 것이 있어 그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다.

이 일화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다. 조괄은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장수이다. 그의 부친 조사는 큰 나라인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명장이었다. 임금이 조괄에게 진나라와의 전쟁을 맡긴 데는 조괄의 부친인 조사의 공을 염두에 둔 까닭이다.

이 일화에서 두 가지 의문점이 나온다.

                          하나는 어머니는 왜 아들의 장수 임명을 기뻐하기는커녕 우려했는가.

                         또 다른 하나는 조괄의 전쟁패배를 어찌 미뤄 짐작할 수 있었을까. 조괄의 어머니 얘기를 들어보자.

“조괄의 행실은 부하들이 존경한 조괄의 아버지인 조사와는 徨� 다릅니다. 조괄이 장군이 되자 군관들은 그를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임금님께서 상으로 하사하신 물건이 있으면 모두 집으로 가져 왔습니다. 아비와 자식이 마음 씀이 이렇게 다르니 청컨대 대왕께서는 그를 장군으로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어머니의 혜안이 번뜩이는 말이다. 아들의 출세를 장려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로막고 나섰다. 아들, 가족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넓은 시야와 전체를 파악하는 통찰이 돋보인다.

조괄의 어머니는 몇 가지 사안만 가지고도 아들의 작은 그릇을 단번에 관찰했다. 교만하고,

욕심 많은 아들의 작은 그릇으로서는 전쟁의 장수가 될 수 없다고 파악한 것이다.

사태를 이해하는 힘도 부족하고, 부하들을 통솔할 능력도 부족한 아들이 장수가 된 전쟁은 기필코 패하고 말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필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다.

 

                    이를 신명(神明)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신명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 일을 풀어가는 힘이 탁월하다.

 

신명을 어원대로 풀이하면 신의 경지에 이른 밝은 이치를 말한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서 신의 경지에서 바라보는 세상사는 모든 것이 자명할 것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이 모든 사태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 제약이 많은 존재의 불합리도 없을 것이고, 알지 못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 그들에게만 탁월한 재능을 주워졌는지, 새삼 부러울 뿐이다.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된 다음에야 사태를 짐작할 수 있는 필자로서는 일과 사물의 핵심을 단번에 꿰뚫어보는 그들의 안목이 부럽기만 하다.

신명이라는 단어에는 귀신신자가 들어 있어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통찰이다. 통찰은 명백한 인식이다.

통찰은 부분적인 인식이 아니라 전체를 한꺼번에 바라 볼 수 있는 포괄적인 인식이다.

전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아우르는 말이다.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은 강력한 힘이다.

세상사를 움직이는 것은 대부분 이 통찰력에서 나온다.

통찰력을 갖춘 자가 세상을 리드하는 것이고,

갖추지 못한 자가 이를 따라가는 구조가 세상이다.

 

리더의 조건은 단 하나이다. 당연히 그것은 통찰이다.

통찰력을 갖춘 자가 세상을 리드하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널드 이야기기는 이의 반면교사이다.

맥도널드 형제가 개업한 식당은 겨우 10곳에 불과하다. 허나 1955년 맥도널드형제로부터 브랜드를 사들인 레이 크록은 1959년까지 불과 4,5년 만에 100여개의 식당을 열었다. 이후 맥도널드는 미국의 체인브랜드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나 2014년 현재 2만 여 개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리더십 수준의 차이다.

맥도널드형제는 식당을 어떻게 운영하고 비용을 절감하고 이익을 많이 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즉 유능한 관리자였다.

 

허나 전체를 보는 눈, 통찰이 부족한 빈곤한 리더이기도 했다.

 

반면 당시 52세의 나이로 영업사원에 불과했던 레이 크록에게는 전체를 보는 눈이 있었다.

맥도널드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맥도널드 형제를 설득해 브랜드를 사들인 후 맥도널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킨 것이다.

 

 

유능한 관리자와 탁월한 리더의 차이,

통찰력의 차이 동네 식당주인과 세계적인 체인 회장의 건널 수 없는 간격을 만든 것이다.

 

관리자는 결론이나 이미지를 반복하는데 익숙한 사람이고,

 

                                                     리더는 새롭고 올바른 방향설정에 탁월한 사람이다. 리더와 관리자의 구분은 중요하다.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순간 대처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올해 세상을 뒤흔든 세월호 사건의 원인중 하나로 순간대처능력 부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리더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전체적으로 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부분으로 사는 길이다.

전체적이란 말은 어원상 건강하고 온전함을 의미한다.

몸이 분리되어 있다면 고통을 느낄 것이다.

조직이 분리되어 있다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사람의 처지와 마찬가지이다.

 

 

전체를 보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명백해 보이고 그것으로 끝이다.

대낮처럼 환한데 무엇을 더 찾을 것인가.

따라서 싸울 필요도 없고 그에 따른 에너지 낭비도 없다.

전체를 보고 사는 길은 통찰을 갖고 산다는 말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삶이 고단하다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혹 부분만 보고 살고 있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부분은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전체와의 화합이 어려워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이들은 부분에 사로잡혀 전체를 보지 못한다.

사물의 한 면 만을 고수하고 나머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부분이 옳고 전체가 그른 것이다.

좁은 시야와 고집스런 편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지혜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단칼이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은 어리석다.

어느 세월에 풀어낼 것인가.

단칼에 잘라야 한다.

그게 바로 지혜이다.

지혜는 논리와 지식의 세계 넘어서 있다.

 

 

 

통찰 또한 마찬가지이다. 통찰은 단숨에 전체를 보는 능력이다. +

통찰은 논리를 넘어서 있다.

논리의 세계에서는 통찰이 보이지 않는다.

논리를 넘어서고 경험도 넘어선 상태에서 통찰이 나온다.

통찰이 바로 지혜이다.

통찰력이 강한 자가 지혜롭게 세상을 리드하는 법이다.

 

 

 

리더와 통찰의 함수관계는 정밀하다.

통찰력이 부족한 리더는 오래가지 못하고 조직 또한 성장하지 못한다.

리더가 일이 절정이 다다른 다음에야 사태를 파악하는 정도의 인식능력이라면 한조직의 흥망성쇠를 책임질 수는 없다

 

 

.

불행히도 주변에는 통찰력이 부족한 리더와 그가 리드하는 조직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더욱더 치열한 논리와 이치로 세상을 대하려 한다.

그럴수록 논리의 늪에 빠진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으로만 부분으로만 치닫는 그들의 고집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에서 볼 수 없는 것이 통찰력이다.

모든 것을 갖추었어도 통찰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통찰은 중요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앞서 얘기한 지혜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실천과 행동이다.

 

 ‘3세 아이도 알 수 있지만 80세 노인도 행하지 못하는 게 도이다.’라는 말은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 당나라 때 석학 백거이가 도림선사에게 한 방 얻어맞은 일화에서 나왔다.

소위 지이행난(知易行難)이다. 알아차리는 것은 쉬우나 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뜻이다.

실천과 행동이 없으면 그것은 통찰이 아니다.

 

 

통찰은 행동이다.

사람이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명백히 보이기에 그에 따른 행동도 완전하다.

통찰하는 순간 불만스런 상황이 있다면 그것을 전적으로 느끼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강력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불만스러운 상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불만스러운 상황을 불태우는 것이다.

거칠 것 없이 피상적인 것들을 불태우고 본질적인 것에 치중하는 것은 정열적인 행동이다.

그래서 통찰은 또한 정열이다. 강력한 통찰일수록 정열 또한 강력하다.

 

 

통찰이란 즉각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통찰이 먼저이고 행동이 나중이라는 말이 아니다.

통찰과 행동은 같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행동은 언제나 올바르다.

 

 



통찰에는 ‘다음에’라는 말이 없다.

‘다음에’ ‘다음에’는 의미 없는 지금을 반복하는 삶을 말이다.

일상에서 어떤 틀을 반복한다는 것은 기계적이라 할 수 있다. 결

론의 반복은 기계적인 삶이다.

통찰에는 이미 만들어진 결론과 이미지가 없다는 점에서 반복은 통찰과 거리가 멀다.

 

 

주변에 똑똑한 후배가 있다.

소위 스펙이 뛰어난 후배이다.

그는 항상 정연한 논리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치와 논리가 그가 가진 주무기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갈등과 위기상황에 빠져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더 치열한 논리로 재무장한다.

 

논리에는 당연히 함정이 숨어 있고,

그는 다시 함정에 빠진다.

‘다음에’라는 함정이다.

실천과 행동이 따르지 않는 후배의 인식은 병든 인식이다.

결코 통찰은 전혀 아니다.

 

후배는 정직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이를 ‘지성적 정직’,

잭 웰치는 이것을 ‘현실원칙’이라고 말했다.

후배에게는 변혁이 절실하다. 삶의 변혁은 통찰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통찰력을 기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대 중국 철학자 순자는 허일이정(虛壹而靜)을 주장했다.

허(虛)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욕망도 욕심도 버리는 것이다.

결론이나 고착화된 선입견이 사라진 상태이다.

 

일(壹)은 전체를 지켜보되 한 가지 일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집중이 아니다.

집중하는 순간 통찰력은 흐려지고 만다.

 

정(靜)은 마음이 고요한 상태이다.

거울 같은 호수의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허일이정의 마음가짐은 지식 욕심 욕망 허구 환상 시공간 선입관 자부심 습관 관습 등 진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하잘것없는 것,

허나 세간에서 중시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일시에 버린 상태이다.

텅 빈 공간에 채워지는 것은 사물의 핵심 전부가 들어찬다.

 

 

 

 

 

 

서두로 돌아가자 조괄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기원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21세기인 현재에도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올 봄 불거진 총리인선문제에 대입해보면 뚜렷이 부각된다.

옛 말에 천하에 세 가지 위험한 일이 있다고 했다.

덕이 없는데도 군주의 총애를 받는 것이 그 하나이고,

 재주가 적은데도 지위가 높은 것이 그 둘이고,

큰 공이 없는데도 후한 상을 받는 것이 그 셋이다.

 

 

세상에는 벌거숭이 임금님이 많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현실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환상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허영심과 자부심에 들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생각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사람들이다.

 

 

 

 

하워드 가드너는 ‘통찰과 포용’이라는 책에서 리더의 덕목으로 이야기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리더와 리더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중요한 차이는 그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리더는 핵심적인 이야기나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바로 통찰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통찰을 말하는 것이다.

 

차별도 없고 핵심도 없는 이야기는 시시한 이야기일 뿐이다.

시시한 이야기로는 세상은커녕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조차 설득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시시한 이야기로 리드하려는 사람이 득실거린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아들의 출세를 적극 저지하고 나선 조괄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재삼 곱씹어 볼일이다.

[정보철 : (주)이니야 대표, '고전경영' '한 끗 차이' 저자]  매경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