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를 만들면 위험하다 : 흉노의 묵돌이 혁명에 성공한 이유
“묵돌은 명적으로 자기 애마를 쏘았다. 좌우에서 감히 쏘지 못하는 자가 있자 묵돌은 자기 애마를 쏘지 않은 자를 그 자리에서 베어 죽였다. 조금 뒤 애첩을 향해 명적을 날렸는데 좌우 군사들 중에 감히 쏘지 못하는 자가 있자 그들도 목을 베어 죽였다. 얼마 뒤 사냥하러 나가 선우(왕)의 명마를 쏘았는데 곁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그 말을 쏘았다. 묵돌은 그의 좌우에 있는 자들이 모두 쓸만하게 된 것을 알고 그 아버지 두만 선우를 따라 사냥하러 나갔을 때 명적으로 두만을 쏘았다. 그러자 그 부하들도 명적이 맞힌 곳을 따라 두만 선우를 쏘아 죽였다. 묵돌은 그의 계모와 아우 및 자기를 따르지 않는 대신을 모조리 죽이고 스스로 서서 선우가 되었다.” -『흉노열전』
인용한 부분은 입이 떡 벌어지는 가공할 만한 왕위 찬탈의 한 장면이다. 묵돌은 누구이고 그에게 죽임을 당한 두만 선우는 또 누구인가.
진나라 후기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켜 중국 본토가 혼란에 빠졌을 때 이 틈을 타서 흉노가 강성해졌다. 진나라가 국경 방비를 위해 보냈던 병사들이 속속 돌아가고 북방으로 쫒겨났던 흉노는 숨을 돌리며 차츰차츰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와 중국과 경계를 맞대게 되었다. 두만 선우는 이때 흉노의 왕이었다.
그에게는 묵돌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그런데 두만 선우는 뒤에 애첩에게서 작은아들을 얻게 되자 묵돌을 폐위시키고 작은아들을 태자로 세울 목적으로
묵돌을 월지국에 볼모로 보냈다.
묵돌이 월지국에 볼모로 있을 때 두만 선우는 갑자기 월지국을 공격했다
월지국에서 묵돌을 죽이려 하자 그는 그 나라의 가장 좋은 말을 훔쳐 타고 도망쳐 돌아왔다.
두만 선우는 그 용기를 장하게 여겨 기병 1만 명을 거느리는 대장으로 삼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볼모에서 장군으로 회복된 신분을 유지하며 삶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묵돌은 야망 있는 사람이었다.
이미 자신은 왕에게 버림받은 몸이라 다시 태자로 복귀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인 왕을 제거하면 태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냉철하게 쿠데타를 준비했다.
명적은 쏘면 소리를 내는 화살이다. 흉노를 중앙아시아의 강자로 만들어준 무기다. “내가 명적으로 쏘아 맞히는 곳을 일제히 쏘라.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베어 죽이겠다.” 묵돌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묵돌은 처음에는 사냥에 나가서 짐승이나 나무를 쏘아서 부하들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따르지 않거나 늦는 자들은 가차 없이 베었다.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지자 이번엔 자신의 애마를 쏘더니, 애첩을 쐈고, 결국 왕의 말까지 쏘았다. 따르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였다. 묵돌이 요구한 것은 무조건적인 복종이었고, 즉각적인 신체 반응이었다.
왕을 죽이는 일은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해치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묵돌은 판단했다.
그래서 명적을 선택한 것이다.
화살이 쉬익 소리를 내며 날아가면 좌우의 병사들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듯 자동적으로 활시위를 당기게 되었다.
머뭇거리는 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한 것은
혁명이라는 신성한 작업에 약한 인간의 마음이 배어들어오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독하게 반정을 준비해서 묵돌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왕을 죽이고 왕비를 죽이고 태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밀어냈던 배다른 동생도 죽이고 그들을 따르는 신하까지 모조리 죽였다.
사마천이 바라본 흉노의 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순성’이라는 가치다.
문인이 다스리는 한나라가 복잡 다양한 제도의 얽힘 속에서 운영된다면
흉노 사회는 쳐다보는 이의 눈이 베일 것만 같은 극단적인 단순명료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흉노의 진정한 단순성은 형벌제도에서 빛을 발한다.
이들의 법에 죄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가벼운 죄’와 ‘무거운 죄’가 그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가볍고 무거운지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단 몇 가지에 불과했다.
평상시 칼을 칼집에서 한 자 이상 뽑는 자는 사형에 처했고, 도둑질한 자는 그 가족과 재산을 다 빼앗았으며,
가벼운 죄가 있는 자는 알형을 가했다. 알형은 칼로 얼굴을 가르거나 수레바퀴 밑으로 몸을 넣어 뼈를 부수는 형벌이다.
싸우는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다 죽였다.
상식적으로 볼 때 결코 가벼운 벌이 아닌 것이다. 왜 이렇게 벌이 가혹했을까.
사마천은 그 이유를 유목민족의 떠도는 삶에서 찾았다.
흉노는 목축을 하며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감옥을 크게 지을 수 없었다.
즉, 신체를 구금하는 일수를 조정해서 지은 죄를 감한다는 관념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사마천은 “옥에 가두는 것은 길어도 열흘을 넘지 않았으며
죄수는 온 나라를 통틀어 몇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죄를 짓는 즉시 칼로 얼굴을 가르거나 수레바퀴 밑에 밀어넣거나 죽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왕권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흉노의 왕이 죽으면 금은과 갖옷으로 시체를 치장해 관에 넣어 땅에 묻었는데,
이때 함께 순장되는 가까운 신하나 애첩이 많을 때는 수천 명이 넘었다.
쿠데타는 이런 무참한 형벌제도를 움켜쥔 왕권에 대한 도전이었으니
세력을 규합해서 음모를 무르익히고 행동하는 수순을 밟을 수 없었다.
일단 욕망이 굳혀지면 곧바로 행동해야 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것,
이것이 흉노의 역사를 수놓는 수많은 왕위 쟁탈 쿠데타를 꿰뚫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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