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어어로, 색을 매우 미묘하게 연속 변화시켜서 형태의 윤곽을 엷은 안개에 싸인 것처럼 차차 없어지게 하는 기법.
연기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 이태리어(스푸마레 sfumare)에서 나온 말이다.
이 기법은 키아로스쿠로의 명암법(light and dark) 개발로 시작되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즐겨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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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된 미술 용어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처음 시도한 회화기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화면 전체에 깊이와 오묘함을 더해 줄 뿐 아니라 원근감과 공간감을 느끼게 해준다.
신비한 미소로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명화 <모나리자>가 이 기법으로 그려진 대표적인 작품이다.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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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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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와 같이 색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색깔 사이의 윤곽을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도록 자연스럽게 옮아가도록 하는 명암법.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의 'sfumare'에서 유래했다.
회화·소묘에서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운 색의 변화를 표현할 때 쓰는 음영법이다.
물체의 윤곽선을 마치 안개에 싸인 것처럼 사라지게 하는 기법이다.
전체적인 정경은 독특한 분위기에 온화하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와 조르조네(Giorgione)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으며
플랑드르 미술(Flemish art)이나 베네치아파(Venetian school)에 의해 뚜렷한 효과를 보였다.
다 빈치는 기하학적 원근법의 견고성이 화면의 조화를 해친다고 보고,
윤곽을 분명히 하지 않고 오히려 없애거나 아주 연하게 하였다.
이 섬세한 명암법은 원거리감과 공간감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화면 전체에 심오한 깊이를 더해주는 효과를 낳았다.
즉 회화의 소재가 화면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작품으로는 다 빈치의 《The Virgin of The Rocks》(1483)와
18세기 프란시스코 고야의 《성 가족 La Sagrada Familia》(1780∼1785) 등의 작품에서 아기의 몸을 이 기법으로 표현했다.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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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같은’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의 형용사로 회화에서는 물체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리는 명암법에 의한 공기원근법.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명명한 기법으로 그는 물체와 공간과의 관계에서 공간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연구했다. 레오나르도파는 물론 프라 바르톨로메오, 안드레아 델 사르트, 코레지오 등에 인계되었다.
관련이미지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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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1998,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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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굴의 성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며, 1911년 이 작품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사라졌을 때 루브르 앞 광장에 사람들이 운집해 통곡할 정도로 이 그림은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그림은 인간을 그린 초상화이다. 그것도 막연한 인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리자(Lisa)라는 한 여인을 모델로 그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본격 초상화이다. 바로 그림의 주인공이 인간인 것이다. 이 그림을 위해 다 빈치는 연일 리자라는 여인을 앞에 세워놓고 관찰을 거듭하면서 꼼꼼하고 정밀하게 데생하고 채색하였을 것이다.
이 그림은 한 여인을 대상으로 그린 것이다. 그러나 다 빈치는 이 그림을 통해 여인의 겉모습이 아닌 본질을 묘사하고자 하였다. 그 본질이란 모든 인간이 자기 삶의 목표로 하고 있는 행복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행복감을 표현의 목표로 한 것이다.
리자는 가난한 농부의 맏딸로 태어나 지오콘도라는 약 20년 연상의 홀아비에게 시집을 간다. 결혼 생활에서 그녀는 여러 자식을 얻고 또한 남편의 사업도 번창하여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는 여인이었다. 남편 지오콘도는 자신의 홍복이 바로 부인 리자의 덕분이라 생각하여, 자신의 저택 현관에 그녀의 초상화를 걸고는 그 집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가정에 대한 그녀의 공덕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부인의 초상화를 의뢰한 것이다. 모델로 앞에 앉은 그녀의 모습에서 다 빈치가 발견한 것은 바로 행복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 잔잔한 미소 속에 깃든 행복의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화가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겠는가?
다시 말해 다 빈치는 리자를 앞에 세워놓고 그녀의 일면을 꼼꼼히 살피고 관찰하여 그 모습을 세밀하게 화폭에 담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가 리자에게서 발견한 것은 단순한 인간미가 아니라 그녀의 내면에서 소박하게 피어오르는 잔잔한 행복의 미소였다. 따라서 다 빈치가 이 그림 속에 표현하고자 한 것은 초상화로서의 생생한 모습보다는 대상의 내면과 본질로 바뀌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의 보편적 아름다움인 행복을 이 그림 속에 묘사한 것이다.
우리는 리자의 눈썹이 없다는 이유로 이 그림을 미완성이라 한다. 그러나 한편 잦은 복원 과정 속에서 눈썹이 지워졌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또한 우리는 이 그림의 미소가 신비롭고 모호하다고 한다. 어떤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미소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은 그 의미가 단일하고 획일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모호함이란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화됨을 말한다.
다 빈치는 리자의 입가에 솟은 미소가 일의적(一義的)이 아니라 다의적임을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트릭을 쓰게 된다. 바로 그 감정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포인트를 어둠 속에 감추어버린 것이다. 그 포인트가 바로 입가와 눈가이다. 우리 얼굴의 이 두 포인트는 한 사람이 지금 갖고 있는 감정 상태가 어떠한지를 즉각 간파하도록 한다. 그러나 다 빈치는 이 부분을 어둠 속에 슬쩍 넣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그림에서 어느 부분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의미를 모호하게 만드는 기법을 '스푸마토(sfumato : 어둠 혹은 안개 속에 가리기)'라 한다. 바로 이 기법이 이 그림의 키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즉, 다 빈치는 이 여인의 현재 감정을 모호하게 표현함으로써 희로애락이라는 인간 감정을 통합시킨 것이다. 이는 보편적 인간 감정의 묘사로, 다 빈치는 이런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이 그림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이로써 이 그림의 리자는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위상, 즉 인간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그림의 리자는 가냘프고 날씬한 모습이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미인을 그리고 있지 않다. 어깨도 넓고 손도 무척 크다. 어떻게 보면 남자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이 리자의 모습에서 다 빈치 자신의 모습을 찾기도 한다. 즉, 이 그림은 단순한 여자의 모습이 아니라 남성의 모습도 동시에 내포하는 형상으로 감정의 보편성뿐 아니라 성별의 차이를 초월한 인간 자체의 모습을 드러낸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대표 작품인 것이다.
이처럼 「모나리자」는 다 빈치가 그린 인간의 모습이지만 한 인간의 개성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이미지로서의 행복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관찰에 의한 사실적 이미지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그 사실성은 결국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바로 르네상스 전성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작품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인간의 행복한 모습에서 다 빈치는 일찍이 잃어버린 모성의 실체, 즉 인간의 영원한 그리움이자 행복의 근원인 어머니의 이미지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했기에 이 그림을 의뢰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평생을 가지고 다녔던 것은 아닐까?
미술에서의 사실적 이미지는 절대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 의한 것이다. 예술에서의 사실적 이미지란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아니라 그 현실을 이성에 의해 파악하고 판단하여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공하고자 하는 욕구인 것이다. 그 인간의 욕구가 인류 최초의 예술인 구석기의 벽화에서 출발하여 인류 역사상 최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르네상스로 이어지면서, 서구 예술의 실체는 절대미를 탐구한 여정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그 여정이 20세기에 들어와 르네상스에 반(反)하는 다른 길로 들어서면서 예술의 운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른바 시각성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관념성을 중시하는 예술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