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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의 '미래' / 새로운 교육혁명

modest-i 2014. 11. 14. 14:00

새로운 교육혁명

빠르고 유동적이며 자기 조정적인 내일의 기술체계에서

기계는 물리적 재료의 흐름을 처리해 나가고 사

람은 정보와 통찰력의 흐름을 처리해 나갈 것이다.

 

또 기계는 점점 더 일상적인 일들을 수행해 나갈 것이며

인간은 지적이고 창조적인 일들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기계와 인간이 모두 거대한 공장과 공업도시로 집중되지 않고

지구상의 여러곳으로 흩어져

매우 민감하고

거의 동시적인 통신망으로 연결될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공장과 지단적인 사무실로부터   -->  지역사회와 가정으로 옮겨질 것이다.
기계는 이미 이루에서 이룩한 것처럼 10억분의 1초 단위까지 동시화될 것이지만

인간은 오히려 탈동시화(do-synchronized)될 것이다.

 

공장의 싸이렌은 사라질 것이고

한 세대 전에 멈퍼드가 '현대 산업화시대의 핵심적인 기계' 라고 일컬었던 시계까지도

순수한 기술적 문제와는 성질이 다른 인간문제에 미치는 영형력의 일부를 상실할 것이다.

 

아울러 기술을 규제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조직체들도 관료제로부터 --> '애드호크러시'로,

영속성으로부터 -- > 일시성으로,

그리고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  미래에 대한 관심으로 이행해 갈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산업화시대의 가장 귀중한 속성이었던 것들이 장애물로 된다.

내일의 기술은 끝없이 반복작업에 한결같이 종사하는 교육정도가 낮은 수백만의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일의 기술은 빵의 대가는 권위에 대해 기계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일편단심 명령에 따르는 사람들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미래의 기술은 비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새로운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으며

급변하는 현실에서 새로운 관계를 제빨리 찾아낼 수 있는 사람들을 요구한다.

 

 

내일의 기술은 스노의 설득력이 강한 표현처럼 '뼈 속까지 미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끝으로 우리가 가속적 추진력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현재로서는 장악하리라는 징조가 별로 없다. ―

내일의 개인은 지금보다 더욱 격심한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여기서 교육의 과제는 분명하다.

교육의 일차적 목표는 개인의 '대응능력(cope-ability)' ―계속적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속도와 ―경제성을 증대시키는 데 두지 않으면 안된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미래의 사건 패턴을 판별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람이 과거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현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현 시점' 의 환경은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예상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

 

전문적으로 표현한다면 미래에 대한 반복적·개연적·장기적 가설들을 설정하도록 배워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초산업주의적 교육을 창출하려면

우리는 우선 미래에 관한 연속적이고 다양한 이미지들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앞으로 20년 내지 50년 안에 필요로하게 될 직업·전문직종·생업 등의 종류에 관한 가설,

앞으로 보급될 가족형태와

우리를 둘러싸게 될 기술의 종류,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조직구조 등을 말한다.

 

이같은 가설을 설정하여 그것을 규정하고 논의하면 체계화시키고

계속 갱신해 나가야만 미래형 인간이

가속적 추진력 속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인식적·감정적 기술의 성격을 연역해 낼 수가 있다.

 

어느 집단도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이 협의회들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 협의회에는 전문가들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미래협의회가

직업적인 교육가나 계획자 또는 대표성없는 엘리트들에 의해 장악된다면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출발에서부터 학생들도 참여해야 하지만

단순히 어른들의 견해에 덮어놓고 찬성하는 식이어서는 안된다.

 

 

젊은이들이 이 협의회를 사실상 발기하지 못했더라도

미래를 설계하고 여기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가상적 미래' 를 설정하고 토론하도록 협의회를 주도해나가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미래협의회 운동은 우리의 학교와 대학이 궁지에서 벗어날 방도를 제공해 준다.

교육제도가 학생들을 시대착오적 생활로 이끌어 가려고 함으로써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학생들이 사사건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격파 학생들은

19세기의 마르크스주의와 20세기 초 프로이드 학설을 혼합한 사회적 강령에 논거를 두려고 시도함으로써

그들 역시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에 전적으로 얽매여 있음을 드러냈다.

 

교육분야에 미래지향적이고 미래형성적인(future-shaping) 기동 대책반을 만든다면

젊은이들의 혁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제도의 파탄을 인식하면서도

다음번 조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교육자들에게

이 협의회 운동은 젊은이들과의 적대 아닌 협력을 통해 힘과 목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운동은 지역사회와 학부모의 참여,

즉 기업가나 노동조합원·과학자 등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교육분야의 초산업주의 혁명을 위한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를 구축할 수 있다.

 

 

현행 교육제도가 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현행 교육제도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의 대부분은

현존의 기구를 가다듬어 시대에 뒤떨어진 목표를 더욱 효율화하고자 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밖의 변화도 자기 말살적이고 일관성이 없으며

방향 감각도 없는 일종의 브라운 운동(브라운이 1827년에 발견한 유체 속의 미립자의 불규칙 운동) 같은 것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미흡했던 점은 일관된 방향과 논리적 출발점이었다.

협의회 운동은 이 두가지를 함께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방향은 초산업주의 그리고 출발점은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