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들은 내심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자신이 폐암에 걸릴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며,
운전자 역시 자신이 교통사고가 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밖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사업에 실패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걸 가리켜 ‘낙관주의 편향(optimism bias)’이라고 한다.1)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 로스쿨 교수인 브라이언 타마나하(Brian Z. Tamanaha)는 『로스쿨은 끝났다』에서
로스쿨 지망생들의 ‘낙관주의 편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스쿨 학생들은 최고 연봉 변호사로 취직할 확률이 평균 10퍼센트나 5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 확률은 그보다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로스쿨에는 노력을 통해 좋은 성적을 받는 데 익숙한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
따라서 다른 동기생들도 자기만큼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한다는 사실을 (로스쿨에 들어와서 직접 보기 전까지) 정확히 모른 채 지금까지 해온 대로 열심히 하면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일단 로스쿨에 오면, 지금까지의 성공 확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2)
이런 낙관주의 편향이 낳을 수 있는 결과이자 사례로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는 게 있다.
이 패러독스에 이름을 빌려준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은 베트남전쟁 때 해군 폭격기 조종사로 하노이 힐턴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미군 중 최고위 장교였다. 1965년 9월 9일부터 1973년 2월 12일까지 7년 반, 그 가운데 4년은 90센티미터×275센티미터의 작은 독방에 갇혔던 그는 20여 차례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완강히 저항했다.
한 번은 자신이 ‘훌륭한 대우를 받는 포로’의 사례로 비디오테이프에 찍히는 걸 피하기 위해 의자로 자신을 내리치고 면도날로 자신을 베는 등 고의로 자해를 했으며, 부하 포로들의 고립감을 줄이기 위해 자기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는 정교한 내부 통신 체계를 만들기도 했다.3)
그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스톡데일은 잘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가운데 어려운 현실을 끝까지 직시하며 대비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던 반면, 다른 포로들 중 곧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낙관주의자들은 대부분 상심을 못 이겨 죽고 말았다.
이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이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고 말한 것과 통하는 점이 있다.4)
미국 경영 전문가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Why Some Companies Make the Leap and Others Don’t)』(2001)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회사들의 공통된 특징을 찾아내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 대응한 회사는 살아남은 반면,
조만간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낙관한 회사들은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희망의 역설’인 셈이다. 그런 상황을 이겨내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 콜린스가 묻자 스톡데일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불필요하게 상황을 낙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전에는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이 되기 전에는 석방될 거라고 믿음을 이어 나가고
부활절이 지나면 추수감사절 이전엔 나가게 될 거라고 또 믿지만
그렇게 다시 크리스마스를 맞고 반복되는 상실감에 결국 죽게 됩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얘기인데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무언가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것과
아무리 가혹한 현실이라도 그것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인 것입니다.”5)
스톡데일은 귀국 후 전쟁 영웅으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으면서 1979년 해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1992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제3의 후보 로스 페로(Ross Perot)는 스톡데일을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스톡데일은 페로를 지지하는 집단에 의해 플레이스홀더(placeholder) 부통령 후보, 즉 임시 부통령 후보가 되었는데,
페로가 대통령 선거 유세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바람에 스톡데일의 이름을 투표지에서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스톡데일은 엉겁결에 10월 13일 공화당 부통령 후보 댄 퀘일(Dan Quayle)과 민주당 부통령 후보 앨 고어(Al Gore)와 함께 부통령 후보들의 TV 토론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가 초두 연설에서 처음 한 말이 재미있다. “Who am I? Why am I Here?” 이 말은 그의 솔직담백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져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이후 토론이 진행되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그는 큰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부통령 후보라는 자리를 아주 쉽게, 낙관적으로 본 스톡데일 패러독스의 함정에 빠진 건지도 모르겠다.6)
2005년 6월 이기수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세간의 기대에 적용해 섣부른 희망과 낙관을 경계했다.
황우석의 연구가 미완성 상태이지만 큰 희망을 품게 된 난치병 환자들이 자칫하면 후속 연구 결과에 따라 크게 낙심하여 절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황 교수는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각종 난치병 환자들은 물론 국민들이 함부로 예단하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가급적 말을 아끼고 연구에만 전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7)
2006년 1월 이기수는 “황 교수의 여론 호도로 이미 피멍이 들 대로 든 난치병 환자들의 좌절감은 힐턴 포로수용소에서 죽어나간 미군 병사들의 상심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며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우리 국민이 새겨야 할 교훈이라고 했다.8)
자신에 대한 낙관주의를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는 일부 자기계발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언론플레이 차원에서 실제와는 달리 낙관주의 예찬론을 펴는 것 등이
순진한 사람들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로 몰고가 오히려 그들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9)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다(Optimism is the opium of the people)”는 독설을 퍼부었지만,
그렇다고 낙관 없이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랴.
라이어넬 타이거(Lionel Tiger)는 『낙관주의: 희망의 생물학(Optimism: The Biology of Hope)』(1979)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 가능한 까닭은 현실에 관한 낙관적 환상 때문이라고 했는데,10)
인간은 진화를 위해서도 앞으로 계속 낙관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낙관주의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으니,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의 다음과 같은 말로 절충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의 지식은 비관적이지만, 나의 의지와 희망은 낙관적이다(My knowledge is pessimistic, but my willing and hoping are optimistic).”
[네이버 지식백과] 왜 어떤 낙관주의는 죽음과 실패를 불러오는가? - 스톡데일 패러독스 (감정독재, 2014.01.09,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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