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전쟁:알아야

경계에 실패한 장수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 / 남보람

modest-i 2022. 5. 30. 22:01
 



[월간노동법률]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1.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

군대에서 경계 관련 교육훈련을 하거나 경계 근무 투입 전 정신교육을 할 때 꼭 하는 말이 있다.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 (또는 이것을 응용해서 우스갯소리로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고도 한다.)

왜 그런 것이냐고 물으면 대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작전에서 실패하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군대에 늘상 있는 일)이지만 경계에 실패하면 아예 작전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들으면 맞는 말인 것 같은데, 군사적으로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2. 작전에 실패한 장수를 용서할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하자면, 군대에서는 작전에 실패한 장수를 용서할 수 없다. 군사적 관점에서 '작전'이란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 조직이 수행하는 제반 활동, 공격, 방어, 부대 운용' 등을 일컫는다. 작전은 여러 차례의 교전과 전투로 구성되며, 군사 전략과 전쟁 국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작전이 실패하면 부하의 목숨, 국민의 재산과 안녕, 국가의 안위에 위험이 온다. 이러하니 작전에 실패한 장수(지휘관)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법적으로 작전 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4조에 "군인은 자신이 내린 명령의 이행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돼 있다. 전쟁, 전투가 끝나고 나면 군인은 명령의 이행여부에 대해 상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작전 실패는 누가 용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3. '경계에 실패한 장수'의 유래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격언의 유래는 불분명하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했던 말이라고 도는데 출처는 알 수 없다. 다만 두고두고 방송과 언론에 회자될 뿐이다.

그러나 '경계에 실패한 장수'만 놓고 본다면, 이 문장의 출발점이 어딘지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남북전쟁(1861-1865) 시기에 활약한 남부 동맹군 장군 대니얼 하비 힐(Daniel Harvey Hill)이 남긴 말에서 비롯됐다. 그는 가혹하고 공격적인 지휘관으로 정평이 났는데 경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적에게 기습을 당하는 모든 장병은 죽어 마땅하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에게는 먹을 것을 줄 필요조차 없다."
 

4. 작전에 실패한 장수 vs 경계에 실패한 장수
 
작전에 실패한 장수와 경계에 실패한 장수를 같은 수준에 놓고 대비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작전은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반 활동으로, 다양한 부대 운용을 포괄한다. 경계는 이 '다양한 부대 운용' 중의 하나이다. 그러니까 작전이 경계보다 훨씬 상위 수준의 개념, 활동이다. 이렇게 본다면 경계에 실패보다 작전 실패가 훨씬 심각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대니얼 하비 힐 장군처럼 경계 실패가 작전 실패에 맞먹는 과오라고 주장한다. 어째서일까?
 

5. 경계가 다른 전장 활동에 비해 차별적으로 중요한 이유
 
첫째, 경계는 다른 활동과 달리 작전 전체에 걸친 지속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경계를 하는 명확한 이유는 적에게 기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기습을 당하면 피해가 배가되며, 자칫 지휘관(혹은 핵심 참모)이 사망하거나 중요한 무기, 물자가 파괴돼 작전 중지가 불가피해진다.

또한 기습을 당한 부대는 심리적으로 마비되고 사기가 떨어진다. 때문에 미 야전교범 '특수부대 작전(Special Forces Operations)'에는 "결코 적에게 기습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중략) 경계는 작전의 계획 단계에서 임무 완수까지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둘째, 경계는 '행동의 자유'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군사적으로 '행동의 자유'는 정신력, 물리력, 의지와 함께 전투력이 발휘되는 원천이다. 행동의 자유가 확보돼야 내 의지대로 결정적 시기와 장소를 선택해 싸울 수 있고 작전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 따라서 지휘관과 참모는 작전 기간 내내 부대가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행동의 자유 확보에 매우 중요한 활동이 경계이다. 미 야전교범 '작전(Operation)'에는 "경계는 작전 환경, 적의 위협, 기습에 대한 아군의 취약성을 줄여 행동의 자유를 증대시킨다"고 명시돼 있다.
 

6. 에필로그
 
몇 해 전 한 장교가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격언의 유래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군사 문헌 등을 찾아본 후에 이렇게 답을 주었다.

"경계 실패에 관한 이 격언은 출처가 불분명한데 진중에 떠돌던 말이 그대로 굳은 것 같다. 그런데 경계 실패보다 작전 실패가 더 큰 과오이므로 해당 격언은 오류가 있다. 경계 실패에 대해 남북전쟁기 미군 장군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는데 그 처사가 너무 가혹해 인용할 바가 못 된다. 그러므로 경계에 실패한 장수 운운 하는 격언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문의 했던 장교는 경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할 때 써먹으려고 격언의 유래를 물어봤던 것 같은데 나는 그 격언이 잘못됐으니 쓰지 말라고 답한 것이다.

그 후로도 수년간 몇 차례 그는 군사와 관련된 조언을 요청했는데 별도의 자료조사와 정리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매번 그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질문이 없다. 만약 원하는 답을 얻었다면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그는 두고두고 어려운 질문을 했을 것이다.
 
 

남보람 정치학박사 /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각색 2022.5.30 모디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