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의 패자, 진문공-4 結
32. 진문공, 중원 진출
진문공이 군을 정비하고 서서히 강대국으로 들어설 무렵, 주나라 왕실에서는 막장 사건이 일어난다. 주나라 양왕은 동생 대가 일으킨 반란에
목숨만 건진채 정나라로 도망갔다. 이에 대는 주왕실 전권을 잡고 양왕을 죽이기 위해 적인들과 호응하여 정나라를 침공해 이참에 멸망시키려
했던 것이다.
양왕은 급박하게 가까이 있는 국가들에게 원군을 요청했고 천자가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노나라와 진목공의 귀에도 들어갔다. (마치 삼국지
헌제의 장안탈출과 비슷한 느낌) 이에 진목공과 노나라는 군대 파병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문공 또한 천자를 엎고 천하를 호령해야 한다 라는
호언의 조언에 따라 급히 군을 파견했다.
삼강대국이 모두 군을 파견했으나 천자를 구하고 대의 군대를 격파한 영광은 진문공에게 돌아갔다. 당시 세개의 국가들은 정나라로 가려면
난관을 지나야 했다. 초원에 사는 융족과 여나라 라는 소국을 세운 일부 적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들로써는 군대통과를 자국 영토를 지나
시켜줄리 만무했고 역시나 먼저 도착한 진秦나리와 노나라는 그들의 저항에 발이 묶여있었다.
이에 호언과 조최는 사람을 써 막대한 양의 곡물과 뇌물을 주어 융족과 여나라의 적인들을 상대로 동맹을 맺어 군대통과 권리를 얻는다.
(이민족들이 고비사막 등지로 물러간 것은 진시황제의 통일과정과 한나라대에 이르러서 완성 되었다. 이전까진 촉땅과 중원, 요서등지와
오월 지방[삼국지 손권지배 남부지역정도] 에서는 이민족들과 춘추국가들의 생존투쟁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북방의 건조화로 농경과 목축에
타격을 입자 생존을 위해 그들은 남하했던 것이다)
문공은 온땅에 주둔하고 있던 대를 기습 포위하여 생포하고 습땅에서 처형한다. 양왕의 동생 대는 이민족들의 땅에 시간을 허비할것이라 생각해
군대를 방비하지 않다가 그만 기습에 당한 것이다. 곧바로 진문공은 천자를 주나라 궁으로 모셔와 상을 얻는다. 여기서 문공의 계산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주황실로 부터 받아 낸 중원 노른자들, 이로써 주왕실은 더욱 약화되었고 훗날 전국시대의 기반이 된 사건이다)
문공은 천자와 같은 연호와 장례, 혼례를 진나라 왕실에 허용해 달라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죽어도 존심으로 먹고사는 주왕실이 허락 할리가 없었고
문공도 알고 있었다. 양왕은 놀란 마음에 거부했지만 그에 비견가는 엄청난 선물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란걸 알았다. 양왕은 태행산맥 근처 일대의
광산물이 풍부한 토지와 남양의 비옥한 곡창지대 8곳을 수여했다. 이것은 진나라의 염원인 중원 진출과 더불어 상당 땅 등지의 산악지방에서
항상 아끼고 아끼며 군을 만들고 그 와중에 국방을 해야했던 진나라에게는 드디어 경제 자립과 강대국으로 올라설 발판을 마련된 일이였다.
문공은 영토확장의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남양땅에 뇌물을 먹고 길을 빌려준 적족들은 진나라 군대가 주둔하자 점차 땅을 잃어버렸고 결국
토벌 공격을 받아 영토를 뻬앗겼다. 이에 남양 이북과 낙양 주변의 중원 노른자 땅은 모두 진나라의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주나라의 성 2곳이
진나라 편입을 거부하며 항전의 의지를 보였다.
33. 약속을 지켜 성문을 열다
가장 풍족한 산물과 군사 요충지였던 양번성과 완성에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였다. 이에 잔인성이 있던 진문공은 다된 밥에 재떨어뜨린 이들에
분노해 양번성을 공격하며 성안에 노약자와 어린아이 모두 산채로 매장시켜 주겠다며 경고했다. 이에 양번 성주 창갈은 이를 일갈하며
"우리는 모두 천자의 신하다. 주왕실이 양인들을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도와줘 우리는 불만없이 살았는데 진문공은 덕을 보여주지도 않고
백성들의 생업종사를 위한 설득보다는 도륙을 시킨다니 이게 무슨 망측한 일인가!"
진문공의 장점은 윰흉한 실리주의와 바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수정하는 결단성에 있다. 그는 이 보고를 받자마자 곧 바로 양번성에게 사과
편지를 보냈고 포위를 풀어 떠날 백성은 떠나고 남은 백성은 진나라 왕실의 보호로 생업에 종사 할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약속을 했다.
이에 양번성은 성문을 열고 항복을 했다.
완성을 공격할때 양번성의 교훈을 얻은 진문공은 재미있는 계책을 펼친다. 완성을 포위한 뒤 3일치의 식량만 병사들에게 휴대시키고 공격을 했다.
(굳이 공격을 해야하나 싶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급격히 귀속된 성들이 여기저기 난을 일으킬 요량이 컷다)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3일째 되자 문공은 후퇴를 명한다. 이에 조최가 말하길
"첩자 보고에 의하면 성안에 식량은 떨어졌고 유행병도 돌아 이틀 이내에 함락이 가능합니다. 철군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자 진문공은
"내가 3일치 식량만 휴대하라 하지 않았나. 이는 병사들에게 3일만 공격한다는 약조와 같은데 성을 얻기위해 밥을 굶겨가며 병사들과 신의를 져버리면
어찌 내가 패자가 될 자격이 있겠나"
문공은 정말 쿨하게 병사를 물린다. 이에 진나라 땅으로 회군중인 군사들 뒤에서 허연 먼지가 일어났다. 모두 추격군인줄 알고 경계를 강화했지만
알고보니 완성의 병사들이였다. 그들이 일전을 치루기 전 완성의 군대는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투항을 청했다. 문공의 저 일화를 듣고 감동하여
완성 병사들과 주민들이 스스로 문을 열었던 것이다.
남양과 중원 일부를 평정한 진, 그러나 문공은 이정도로 끝내기 싫었다.
34. 진秦나라, 초를 공격하다
초나라의 방어는 삼각 트레이 앵글 형태로 되있다. 최전방 군사요충지이자 철과 돌소금, 그리고 남양 하북의 곡창지대를 가진 양양성, 평원이지만
진秦나라의 남하와 양양성을 말로 달리면 1시간 거리에 있어 언제든 지원 할 수 있는 약성, 그리고 초나라의 당시 수도 강릉성 이였다. 이 세곳 중
양양성은 초나라 북방 최요충지이자 경제권을 지닌 곳이라 성벽을 매년 높게 올렸고 최정예병들을 배치해 북방을 견제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양양, 강릉성 그곳이 맞다)
진문공은 남양일부를 평정한 뒤 곧 바로 남양 이남인 초나라 땅까지 탐을 내 군대를 점차 남하시키기 시작했다. 초나라는 위기를 느껴 약성에
신공, 식공, 투극, 굴어구 등의 굴짉한 장수들을 보냈다. 이때 진문공이 아닌 진秦목공이 움직였다. 비교적 비옥함과 거리가 멀었던 관중땅의
진秦나라는 남양과 초나라의 비옥한 토지를 항상 탐냈는데 문공의 중원 점령 소식을 듣고
아! 우리도 먹어야 겠다! 라며 남하 하기 시작한다. 약성에 다다른 진나라 군은 계책을 써 손쉽게 양성을 점령한다. 그들은 포위한 뒤 양성에
첩자를 풀어 초나라에서 막 구원온 장수들과 기존 수비장수들을 이간질 시켰고 어느날 밤 두 초나라 군대는 적을 앞에두고 성안에서 전투를
벌이는 촌극을 벌였다. (단순한 이간질 보단 양쪽 진영에 진秦과 내통한다는 이간계, 그것이 성공해 양측은 성을 지키기 위해 충돌)
결국 진秦군은 혼란중에 무혈 입성하여 막대한 철강과 곡식들을 약탈하고 수많은 포로를 잡았다. 그 중에는 수비를 하던 투극과 굴어구도
포함되었다.
놀란 초나라 성왕은 정예병을 양성에 보냈지만 이미 진秦은 군을 회군한 상태였다. 주위가 평야라 성을 지키기 어려웠던지라 쿨하게 회군했던 것이다.
35. 초, 북벌을 시행
한편 노나라와 위나라가 연합해 제나라에 시비를 걸었다. 내분으로 인해 약해졌지만 아직 강대국인 진나라 로써는 자존심이 상했다.
제효공은 숙적 노나라를 이참에 공격하기 위해 전쟁을 선포했고 노나라와 위나라는 연합하여 제나라를 막으며 초나라에 동맹과 원병을 요청했다.
약성을 공격당해 언제든 남침의 위기를 느꼈던 초는 앉아서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북벌을 감행한다.
제환공의 자식들은 권력 다툼에 밀린 후 여럿이 초나라로 망명했는데 이들이 길잡이와 군을 이끌기를 청해 직접 모국인 제나라 땅을 공격,
수도를 포위하고 요충지인 곡땅을 점령해 버린다. 주변 제후국들은 제환공 자식들의 환국위한 것이 아닌 초나라의 개가 되어 모국을 치는것에 충격을
받았으며 남방의 촌놈이라 봤던 초나라가 제나라 심장부를 점령하자 크게 두려워 했다.
이에 황화 이남 소국들은 모두 초나라 속국과 동맹이 되길 청해 왔으며 점차 남방에서 초나라의 힘은 대단해졌다. 그러나 홍수 싸움(송양공의 멍청한
선비기질로 대패해 송나라를 한순간에 소국위치로 만든)에서 패해 초나라에 감정이 안좋았던 송나라는 남양을 진晉나라가 점령하자 곧 바로
초나라의 속국을 파기하고 진晉과 동맹을 선언한다.
가뜩이나 위기감에 힘을 길러야 하는데 남방의 송나라의 배신은 초나라 로써는 두고보면 안돼는 일이였다.
이에 초성왕은 초나라 호족출신의 자옥을 총대장으로 임명해 송나라를 공격, 순식간에 수도를 포위를 한다. 총대장 자옥은 진문공이 가장 두려워
하던 맹장이였다. 훗날 자옥은 진문공과 성북대전에서 중국 최초의 대륙간 국제전을 치루게 된다.
36. 대전의 서막
자옥의 맹공에 송나라는 풍전등화 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송나라는 진문공에게 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秦진목공에게도 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목공은 송에 원군을 보내지 않고 문공이 출병할것이라 예상, 주력병은 다른 소국으로 보내 관중지방 지배를 확고히 하고자 했다.
진문공도 선뜻 초나라와 붙기는 꺼려졌다. 이때 호언 조최등의 중신들이 다른 방법을 제안한다. 후방의 위협이 되는 위나라와 전방에 있는
조나라는 초나라의 우방이니 이쪽을 공격하자는 것, 그 후 초와 제 진秦에 선물을 주어 물러가게 제안한다. 그러면 초나라는 우방국이 당했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을 것이니 주황실 제후국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격문을 띄우면 제나라와 진秦나라를 비롯한 강국과 소국들이 문공의
휘화에 들어와 초의 정벌을 요구할것, 뇌물을 받고 초가 물러간다면 제후국을 돕는 명분이 서고 아니면 초를 쳐서 남양땅을 정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조언한다.(상당히 복잡하지만 최대한 축약;)
문공은 이에 위와 조를 친다. 망명시절 자신을 무시했던 위나라와 조나라를 친 후 무릎을 꿇리게 한뒤 자신을 무시했던 이전일을 들추며
통쾌한 복수를 한다. 그러나 조나라 망명 시절 자신을 대접해줬던 회부기의 집은 약탈을 금했는데 조나라 망명시절 원한을 가지고 있던 위주와
전힐이 회부기의 집을 약탈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문공은 군자가 할일이 아니라며 전힐을 죽였지만 재주가 많은 위주는 살려둔다.
초성왕은 이에 두 맹우국을 위해 제나라를 공격하던 병력을 후퇴시키고 송나라를 공격하던 자옥를 명한다. 하지만 자옥은 송 멸망이 눈앞인데
후퇴할 수 없다며 거부. 성왕은 말을 안들어 쳐먹는 자옥을 맹 비난하면서 다시한번 사자를 보내지만 이번에도 거절한다. 성왕은 이에
"송나라 공격하면 진문공이 올텐대 지원은 없을테니 어디 맘대로 해보라" 라며 내버려 둔다. 이때 진문공의 잔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초성왕
에게는
"지난날 의리 생각해 송나라 공격 멈추면 조와 위공들을 풀어줘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 라며 말한다. 성왕은 이에 아오 자옥이 이 ㅅㅂㄻ
하면서 들끓고 있었고 남양땅을 완전히 먹기 위해 자옥을 도발하기 시작하는데 사신으로 왔던 자옥의 심복 완춘을 두드려 팬 뒤 옥에
가둬버렸던 것이다. 호전적인 자옥은 분노하여 송나라 공격을 멈추고 진문공이 머물고 있는 남양땅으로 진격하기 시작한다.
도발에 완벽히 걸려든 자옥과 한판하면 되지만 진문공은 다시 계책을 낸다. 지난날 성왕에게 약속한 30리씩 3번 총 90리를 후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군을 서둘렀다. 허나 점차 군량미는 떨어져 갔고 송나라 공격으로 지쳐있던 병사들이 하루 30리 이상을
걸어야 해 피로도는 누적되었으며 대체 왜 송을 공격하다 말고 진문공을 치는지 명분도 몰랐다. 더군다나 진문공이 이전에 있던 약속을 지키자
"아 왠지 우리가 악역같지 않음? 그냥 초로 돌아가면 안돼나" 하며 사기도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문공은 또 여우같이 성왕에게
"약속을 지켰삼, 근데 자옥이 계속 공세를 할 모양임 이전에 말한대로 난 90리 물러난 뒤 공격해오면 싸운다 했음" 이라고 선포했고 성왕은
아오 자옥이 저 ㅁㅊ 또라이 맘대로 해라 맘대로 하고 맘을 비우기 시작한다.
연이은 추격으로 사기가 하락한 것은 자옥도 눈치를 챘다. 주력병은 제나라를 침공했고 자옥이 이끈 부대는 주변 소국 연합군들이 주력이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불만이 터지면 봇물처럼 터져 홍수를 이룰 수 있는것을 알았다. 이에 자옥은 문공에게 사자를 보내 선전포고를 알리며
한판 붙자고 전언한다. 이에 목공도 자옥의 요청에 응해 양군은 성복이라는 지역에서 대치한다.
37. 갈택이어 [ 竭澤而漁 ]
갈택이어 -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함.
진문공은 대군을 이끌고 대전을 치루어 본적이 없다. 더군다나 이번 연합군의 진용은 화려했다. 秦나라, 제나라, 송나라와 문공의 정예병들과
주나라 황실이 내려준 성에서 항복한 병사들까지 총 병력 2만이 넘었다. (춘추시대는 전국시대처럼 농민들의 징집이 이루어 지지 않을때라 수가
적다. 단 동시대인 유럽은 이보다 더 적은 병사들로 전쟁을 치루었으니 당시 동시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연합군이였다)
초나라는 속국인 채나라 정나라 허나라의 주력 부대들과 자옥의 사병들을 위주로 하였다. 하지만 제나라, 진秦나라등 강대국들이 병력을 많이
보내진 않았기에 초나라의 군세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역사학자들은 대략 4만 내외로 추정하며 자세한 기록은 나와있지 않아 당시 국가들의
호수를 계산했다.
그래서일까 문공은 압박감이 심해 잠도 잘 이루지 못했고 꿈에서는 초성왕에게 두드려 맞는 꿈을 연달아 꾸기도 했다. 어느날 문공은 꿈에서
성왕과 주먹다짐 후 그가 쓰러지자 등짝의 피를 빨다 골수를 뻬먹는 꿈을 꾸었다. 그러자 호언은
"골수란 몸을 이루는 근본 중 하나입니다. 초성왕의 골수를 먹었다니 그것은 길조입니다" 라며 점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였고 슬그머니
"대충 화해할까? 역사적으로 이렇게 큰 전투는 없었잖아 내 나이먹고 이게 무슨 도박질이냐" 라며 걱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럴만도 한것이 초나라를 지휘하는 것은 맹장 자옥이였으며 문공이 가장 두려워 하는 장군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군세도 더욱 많고
초나라 우방국들은 뛰어난 제철기술의 초나라 제품들로 무장해 있으니 무기또한 압도적 열세였다.
이에 호언은
"예를 중시하는 자들은 번거로움을 두려워 하지않고 싸움에 능한자는 속임수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계략을 써보시지요" 라며 조언했다.
이에 이옹은 반문했다.
"천하 제후들이 다 보는 대격전 이옵니다. 못의 물을 퍼내 물고기를 잡으면 생선을 얻을 수 있지만 훗날 잡지를 못하며 산을 태우면 동물은
잡아도 훗날 나무와 산짐승을 잡기 힘듭니다. 지금 잠시 어렵다고 해서 비열한 계책을 써 승리한다면 패자가 된 후 제후들이 우리를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승리해도 임시 방편이지 해결책은 아닌줄 아뢰옵니다. "
이때 이용이 말한 사자성어가 바로 갈택이어다. 문공은 이후에도 여러번 불안감을 표시했지만 이옹의 조언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38. 성복대전
마음을 다잡고 결국 성북에서 문공은 결전을 결심한다. 양군은 탐색전 외에 본격적인 전투를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이때 성왕과
권력싸움에서 밀려나 일개 무장으로 참전했던 왕족 계 라는 인물이 투항한다. 투항한 계를 문공은 극진히 대접했고 이에 감복한 계는
초군의 허실을 알려주었다.
"초군의 군사는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연합군인지라 우두머리가 많고 명령체계가 일사천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공께서 한번 큰 전투를
일으키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문공은 크게 기뻐하며 호언, 조최, 이옹과 함께 계를 군사작전 지휘권을 주어 작전을 짜보게 했다. 계가 투항한 다음날
자옥은 전군에게 총 공격을 명할 기세를 보이며 진을 펼쳤다. 이에 문공도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공격진을 만든다.
먼저 공격한 것은 진晉나라였다. 진의 맹장 서신이 이끄는 전차대가 초의 우익을 공격하며 서서히 진을 붕괴시키고 있었다. 적은 수의 진이
선공을 해온것에 자옥은 살짝 당황했다. 이때 호언이 이끄는 전차부대는 좌익을 공격하다가 힘이 딸려 후퇴하고 만다. 자옥은 수상한
기미가 보여 추격을 멈추라 명했지만 계의 말대로 명령이 전달되지 않아 좌익 전체가 호언을 추격한다.
호언은 이때 전차 뒤에 나뭇가지를 걸어 먼지를 크게 일으켜 연막 효과를 내었다. 호언의 부대만 추격하고 있던 초의 좌익은 연막에 가려
어디쯤 자신들이 왔나 분간하지 못한 채 계속 진격을 했다. 얼마 뒤 연막이 걷히고 그들을 맞이한건 호언의 대 부대가 자신들을 포위한 것이였다.
이후 일방적인 살육이 시작되었다. 전차대는 멈춘 상태에서는 보병대에 무용지물이였기 때문에 초의 좌익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옥은 허탈했다. 이에 우익과 중군을 조금 띄어 좌익을 구원해오길 기대했지만 중군의 일부 병사들은 이미 탈영했고 우익은 명령체계가
우왕좌왕 하여 자기들끼리 혼란에 걸려 카오스 상태였다. 수는 적지만 잘 훈련된 진문공의 병사들은 일사천리 손을 맞추어 이런 초군을 살육했다.
제대로 명령한번 내리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있다 패배하자 자옥은 허무해 자신의 마차에 주저앉고 말았다. 결국 후퇴를 명했고 이에 전군이 맹 추격 하여 자옥은 목숨만 간신히 건진 채 패퇴하고 말았다.
39. 성복대전 이후
진문공은 곧 바로 주나라로 향해 천자를 알현했고 초나라 포로 1000명과 말 400필 전차 100대 이상을 진상했다. 이에 주천자는 크게
기뻐하며 문공에게 패자의 칭호를 내리며 증여품을 수여했다. 또한 제환공의 절차를 밞기위해 회맹을 주도했으며 진정한 패자로 우뚝 섰다.
또한 초의 북진을 막아 중원의 형님 노릇을 하였으며 주변 제후국들의 칭송 또한 자자했다.
반면 초로 돌아간 자옥은 명령 불복과 패전의 책임을 지고 목이 베어진다. 몇몇가신들은 자비를 배풀라 말하였지만 성품이 포악하고
명령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장수는 필요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형을 집행한다. 평으로는 성왕이 자옥과 호족들의 세력이
커가는것을 견제하고자 사형을 집행했다는 말도 있다.
이후 문공은 선정을 베풀어 진나라는 춘추시대 가장 강력한 국가로 떠오른다. 그후 그는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선정은
아들들에게도 이어졌으며 훗날 삼진(위,한,조)로 나뉘어 졌음에도 전국시대의 칠웅으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진 나라는 문공 이후에도 매우
강한 국가였다는 반증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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