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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작은 차이와 결정적 분기점 / 흑사병

modest-i 2021. 3. 18. 18:42

14세기 유럽의 봉건제도는

다수 소작농으로부터 극소수 영주로 부가 흘러가는 극도로 착취적인 체제였다.

 

흑사병으로 노동력이 급감하자 봉건질서의 기반이 흔들렸다.

 

흑사병은 대형사건이 기존 사회의 경제, 정치 균형을 흔들어놓는 '결정적 분기점'의 생생한 사례다.

 

 

하지만 동서유럽에서 흑사병으로 봉건질서가 흔들릴 때

일반 대중의 삶과 제도 발전의 운명을 완전히 갈라놓은 것은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잉글랜드에서는 착취적 제도라는 악순환 고리를 끊고 좀 더 포용적인 제도가 태동하는 계기가 된 반면,

 

동유럽에서는 재판농노제와 같이 착취적 제도가 다시 고개를 들어 공고하게 자리를 잡는 시발점이 되었다.

 

 

 

잉글랜드가 포용적 정치제도를 발달시킨 것은 두 가지 요인 덕분이다.

 

저, 명예혁명의 결과로 정치적 제도가 대단히 급진적이고 사실상 유례가 없는 단계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명예혁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이미 막강한 연합세력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배층은 어쩔 수 없이 이 연합세력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다원적 정치 제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688년경, 잉글랜드의 정치제도는 프랑스나 에스파냐 등에 비해 한층 더 다원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100년만 뒤로 돌아가 1588년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 차이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세 나라는 모두 시민의 모임에 대적하던 중이었다.

잉글랜드는 의회, 에스파냐는 코르테스, 프랑스는 삼부회가 판을 치고 있었다.

 

다만 에스파냐 왕실은 1492년 이후 광활한 아메리카 제국을 보유하고 막대한 금과 은을 챙기고 있었지만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해 세금을 더 거두게 해달라고 의회에 사정하다시키 했다.

 

군주와의 갈등에서 결국 승리한 것은 의회였다.

에스파냐는 유사한 분쟁에서 코르테스가 패하고 만다.

 

 

일단 결정적 분기점에 다다르면,

초기의 제도적 차이는 사뭇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언뜻 사소해 보였지만 알고 보니 의미가 큰 차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서유럽의 제도가 줄곧 동유럽과 크게 달랐던 것은 아니다.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1346년 흑사병이 상륙한 14세기부터였다.

흑사병과 1600년 이후 세계무역 확대는 유럽열강에 대단히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상이한 제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심각한 차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1600년 잉글랜드 왕실의 힘은 프랑스와 에스파냐에 비해 약했기 때문에,

대서양을 통한 무역은 잉글랜드에 더 폭넓은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는 길을 열어주었지만,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는 왕실의 힘만 강화되었을 뿐이다.

 

 

 

[출처] WHY NATIONS FAIL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작성자 에듀비욘

 

각색 모디스티 21.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