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ㅁ변화·관찰ㅁㅁ

세상에 위험하고 불안한 모든 것을 제거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그 즉시 다른 위험 요인이 나타난다 => 유치증(성인이 인지·정서적으로 어린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증상)과 절대적 무용성

modest-i 2021. 2. 7. 19:47

< 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

(12가지 인생법칙/책요약/ 조던피터슨)

(2020.11.21. 독서모임)

왜 처방받은 약을 먹지 않는가?

자신보다 애완동물을 더 아끼는 이유는?

경험의 세계에 3가지 원초적 구성요소 : 혼돈, 질서, 혼돈과 질서를 중재하는 과정(의식)

혼돈은 지독한 배신을 당했을 때 느끼는 절망과 공포... 혼돈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만난다...

혼돈은 지하세계... 혼돈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과 모든 상황

혼돈은 형태가 없는 잠재적 가능성...

질서는 탐험을 한 땅. 사회구조... 질서 속에서는 모든 것이 확실하다

질서의 세계에는 진실한 친구와 신뢰하는 동료가 있다

질서는 나의 가치관대로 경험과 행동이 체계화되고 모든 것이 생각한대로 진행되는 공간과 시간

혼돈이 나타나면 뇌가 즉각적으로 반응...

혼돈과 질서는 삶의 경험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 존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 부분

혼돈과 질서는 인격체로 인식되고 경험되며 이해됨...

과민성 행위자 탐지장치... 직관적으로 알아채는 능력...

질서는 하나님 아버지로 상징됨...

도는 완전한 존재의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

우리는 질서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질서의 세계는 혼돈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이미 알려진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그 영역은 미지의 영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혼돈과 질서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은 혼돈과 질서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한발은 이미 잘 아는,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땅을 디디고, 다른 발은 잘 모르는, 탐험을 통해 알아가야 할 땅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그곳은 우리가 완벽히 익혀야 할 새로운 것과 더 나은 자신을 만나게 해 줄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적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고 그 적이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뱀은 우리 모두의 영혼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밀턴은 ‘에덴동산의 뱀은 사탄이자 악령 그 자체’

최악의 뱀은 심리적이고 영적이며,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악... 적은 곧바로 내부에서 생겨난다... 솔제니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모든 인간의 마음을 관통하고 있다.

과잉보호? 우리 품 안의 존재는 보호하는 것보다 강하게 키우는 편이 훨씬 낫다. 유치증과 절대적 무용성... 시련과 위험 없이 모든 잠재력을 끌어낼 방법이 있을까?

자식을 안전하게 키우고 싶은가? 아니면 강하게 키우고 싶은가?

하와는 더 많은 것을 알고싶은 욕심에 금지된 열매 선악과를 따 먹는다... 남의 눈을 의식... 자의식이 생김... 태초부터 남성의 자의식은 여성이 만들어준 것(?)

발가벗었다는 것은 나약하고 상처 입기 쉬운 상태 의미... 몸의 생김새와 건강 상태를 남들의 시선 속에 내맡기는 무방비 상태... 수치심... 눈을 뜨자 결함이 두드러져 보이고 약점이 눈이 띔... 유약함을 깨닫고 숨음....

포기는 수치심을 더 키우고 자괴감까지 안겨 준다.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악행을 지지를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나쁜 짓을 저지른다

창세기 1장... 진리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존재는 선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때를 기억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어린아이의 순수함, 신성하고 숭고한 것 순진무구한 동물들, 장엄한 자연 경관, 훼손되지 않은 오래된 숲 등을 동경하고 이런 것들에게 위안을 얻는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니 혼돈으로부터 좋은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의식적으로 자유선택으로...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려면 먼저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스스로 타락한 피조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실하게 살고 진실을 말한다면,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고 우리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자신을 대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인간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항상 자신만을 위한다고 생각한다. 냉소주의...

정반대의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이 더 많다... 자기혐오, 자기경멸, 수치심과 자의식으로 괴로워한다. 자기도취에 빠져 존재 가치를 과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깍아내리고 방치한다. 그들은 보살핌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점과 부족함을 필요이상으로 과장하고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고 부끄러워한다...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 자신과 남을 의식하게 된 비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 있음을 보여줌...

칼융...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두 가르침이 미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두 가르침 모두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라 ‘남과 나’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 --> 그들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챙겨야 한다... --> 서툴고 부족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도와주는 것처럼 나약한 당신을 포용하고 사랑하라는 뜻...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내가 보복하리라 (롬12:19)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에게 자신을 고문하고 학대할 권리가 없다.

우리 존재는 타인의 존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우리 자신에 대한 학대가 다른 사람에게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 남은 사람들은 상실감에 빠지고 정신적 외상에 시달린다... 신의 불꽃이 당신의 내면에 불타고 있으므로 당신의 주인은 당신이 아니고 하나님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인간은 저해상도로 창조된 하나님이고, 신성이 없는 하나님이다. 인간도 말로써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질서에서 혼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인간이 하나님과 온전히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찮은 존재는 결코 아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믿으라... 그래야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섬세하게 배려할 수 있다...

기계를 점검하고 관리하듯 사람도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돌보고 보살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원한과 증오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만 대부분은 고난과 실망, 상실과 부족함 속에서도 망가지지 않는다. 이것 역시 기적...

자의식 때문에 생기는 자기 경멸에는 위로와 연민 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당신은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한 존재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보살펴야 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세심하게 배려하듯... 당신이라는 존재를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습관... 인간은 누구나 결점이 있다. 그렇다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한다는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는 뜻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행복은 결코 좋은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미래를 상상하며 이렇게 생각해보자

‘나 자신을 제대로 보살핀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 어떤 일을 해야 과감하게 도전하고, 신나게 일하며, 세상에 도움을 주고, 기꺼이 책임을 지며,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시간을 어떻게 써야 더 건강해지고 더 많이 배울 수 있을까?“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지금의 당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또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삶에서 혼돈을 줄이고 질서를 재정립하며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또 당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당시 자신을 다스릴 수 있고 결국에는 원망과 앙심과 잔혹성을 떨쳐낼 수 있다.

천국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용기...)(그러나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안된다) // (예수님의 보혈은혜... 은혜속에서 강해진다... 죄는 인간을 약하게 한다... 반드시 은혜로 죄사함을 받아야 하고 삶을 살아갈 원동력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 성령의 내주하심)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어떻게? )

당신 자신부터 시작하라... 당신을 보살펴라... 당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라. 목표를 정하고 그곳으로 향한 길을 걸어라...

당신의 삶을 바칠 수 있는 다른 길을 선택하라. 그러면 삶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존재이유... 죄악으로 가득한 본성의 구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다시 배운 사람답게 부끄러운 자의식을 떨쳐 내고 자연스러운 자긍심과 당당한 자신감을 찾게 될 것이다...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는 것..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독서모임>

- 처절함...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전하고자 하는 마음느껴짐...

- 성경읽기에 관심 갖게됨... 로마서와 비슷... 율법으로는 죄를 씻을 수 없다... 죄를 없애주는 것은 사랑과 믿음 뿐... 우리 마음 속이 시궁창...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

- 복음은 초자연적... 계시로 깨닫게 됨...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고자 함...

- 학문적... 인생은 드라마나 소설 성격이 도움이 됨...기하학의 기원... 어떤 주장을 안다고 해서 깨달음은 아님... 학문의 명제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학문의 적용... 경험적인 면이 많음... 나 자신을 객관화해서 생각하기 전 인간의 본성? 인간은 사람이란 존재 자체... 유전적 본성... 남성성여성성... 개인의 성격... 학문도 응용이 되어야 함... (적용)철학과 과학의 혼용... 모든 철학은 과학이 아니다... 초끈이론... 수학적 의미...

- 고통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1장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마음가짐... 몸가짐...

2장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질서와 혼돈... 선악과 인간의 타락...

일상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라... 평범함 속에서 기적을 발견... 존중받아야 할 존재... 위대한 일은 무엇인가? 젊은 청년들에게 인기... 창조성은 혼돈에서 나옴...고통은 나쁜게 아님... 성장의 이유... 나들이..

[출처] 12가지 인생법칙(책요약/조던피터슨)|작성자 기도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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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logy] 창세기로 알아보는 인간 자의식의 발달 -자신을 알고 스스로를 구원하라

2019. 1. 21. 13:43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복함 14장 6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4절)

 

[연극 : 옛 관점 / 개인의 주관적 경험]

과학적 세계관이 등장하기 전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

- '존재'를 사물의 공간이 아니라 행위의 공간으로 생각했다.

- 인생을 이야기나 연극의 유사한 것으로 생각했다.

- 모든 사람들이 늘 그것을 의식하며 살았기에 그런 이야기와 연극은 살아있는 것이고 주관적인 경험이었다.

- 옛 연극 관점에서 삶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 요소는 개인적 경험이다.

 

[인생 경험의 3요소]

혼돈 / 질서 / 의식 (consciousness : 혼돈 질서의 중재 과정)

1) 혼돈 :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과 모든 상황

- 혼돈은 형태가 없는 잠재적 가능성이자 무시무시한 자유

- 인간 역시 혼돈 속에서 삶을 끊임없이 변하는 새로운 순간으로 만들어 낸다.

- 혼돈이 나타나면 뇌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반응이 빠를 수록 원초적 본능에 가깝다.

- 즉각적 몸의 반사 반응 이후 다소 복잡하고 느릿한 감정적 반응이 따른다.

- 감정적 반응 이후 생각하는 행위가 따른다. 생각은 앞의 두 반응에 비해 차원이 높다.

 

2) 질서 : 모든 것이 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사회구조

- 인간은 혼돈과 질서에 영원히 예속 되어 정당성에 의혹을 품고, 절망에 빠져 스스로 돌보지 못한다.

- 혼돈과 질서는 삶의 경험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이자 존재를 구성하는 기본적 부분이다.

- 혼돈 질서 중재 과정 이해 : 예속 탈출하는 유일한 길

- 혼돈과 질서는 사무과 대상이 아니고, 그런 것으로 경험되지도 않는다.

사물과 대상은 객관적 세계의 일부이며, 생명도 없고 영혼도 없다. (죽은 것이다.)

혼돈과 질서는 인격체 (personality)로 인식되고 경험되며 이해되는 것이다.

 

※ 과민성 행위자 탐지 장치 (hyperactive agency detector) : 대상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위협적인지 아닌지 감정상태가 어떤지 직관적으로 알아내는 능력

- 생명이 없는 객관적 세계를 목적과 의도를 지닌 생명의 세계로 여기는 이유

- 장치가 민감해지면 사물을 생명체로 여기거나 우연적 패턴에서 구체적 형상을 찾아낸다.

- 우리가 살아온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물이나 대상, 혹은 환경이 아니라 인격체였다.

 

[인격체 : 남성과 여성]

인식과 정서, 동기 부여에 깊이 내재한 자연적인 범주 (natural category)

인격체는 10억년 동안 '수컷'과 '암컷'이었으며, '부모'와 '자식'이라는 범주화가 된 것은 2억년 전 생겨났다.

구분된 단위가 인간이 적응해 온 환경에서 중요한 역할로 자리잡기에 충분한 시간.

수년동안 뇌 용량이 증가하며, 바깥 세계를 객관적 세계로 개념화 했다.

 

[남성: 질서는 '하나님 아버지'로 상징 된다.]

인간 사회에서 기본적 계급 구조는 남성 중심적이다.

남성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을과 도시의 건설자이고, 기술자이며, 석공이고, 벽돌공이며, 중장비 운전자다.

질서는 '하나님 아버지'로 상징된다.

 

[혼돈은 상징적으로 여성성과 관련이 있다.]

혼돈은 모성(mater)이고, 기원이자 근본이며, 어머니이고, 모든 것을 만들어 낸 '물질이자 재료(materia)'다.

혼돈은 생각과 의사소통의 주제이며, 가능성이고, 모든 사상의 근원이며, 잉태와 탄생을 주관한다.

인간 여성은 세심하게 배우자를 고른다.

다른 어떤 진화적 요인보다 '너는 안돼!'라고 거부하는 여성의 성향이 인간의 진화를 이끌었다.

(창의, 근면, 경쟁심, 공격성, 지배욕)

뇌는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피질의 반구적 구조는 새로운 것과 습관화의 근본적 분할을 반영하는 것.

이원적 구조를 이미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원적 구조도 이원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면 금세 이해된다.

주변 세계를 의식적으로 바라보며 얻은 지식은 객관적 사실 설명을 넘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도 알려 준다.

'무엇'에 대해서 알게 되면 동시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혼돈과 질서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혼돈과 질서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에덴동산 - 자의식의 탄생] -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모든 인간의 마음을 관통한다.

파라다이스(에덴동산)가 삶의 질서라면 뱀은 혼돈의 역할을 맡았다.

제한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배타적인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물리쳐야 할 적은 늘 존재한다.

뱀을 악의 상징으로 해석한 발상은 매우 기발하고 탁월했다.

이런 비유와 상징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상상을 통해 추상적인 도덕 개념과 의미가 수천 년 동안 발전했다.

 

 

 

 

최악의 뱀은 사라지지 않을 인간의 악한 성향이며, 심리적이고 영적이며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악이다.

뱀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위험하고 불안한 모든 것을 제거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그 즉시 다른 위험 요인이 나타난다. 바로 유치증과 절대적 무용성(absolute uselesness)이다.

 

 

 

 

왜 뱀은 하와를 속였을까 ?

하와에게 뱀의 말을 들어야할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평등화된 현대 인간 사회에서도 하와의 딸들이 더 방어적이고 자의식이 강하며 조심스럽고 예민한 것은 아닐까.

태초부터 남성의 자의식은 여성이 만들어 준 것이다.

남성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여성은 남성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남성의 자의식을 깨운다.

자극을 통해 남성의 자의식을 일깨우는 여성의 능력은 원시적이고 강력한 자연의 힘이다.

색을 판단하는 능력은 일종의 적응이라는 점에서 열매는 시력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을 부끄럽게 하고, 강한 것은 약한 것을 부끄럽게 한다.

죽음은 삶을 무색하게 만들고, 이상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다.

우리는 그런 감정을 두려워하고 원망하며, 심지어 증오하기도 한다.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인 인간은 진실을 말하는데 두려움을 느낀다.

혼돈과 질서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데 겁을 먹는다.

인간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걸 두려워한다.

 

[선악과 이야기 - 여자와 남자]

최초의 여자 덕분에 최초의 남자는 자의식과 원망의 감정을 배웠다.

최초의 남자는 최초의 여자에게 책임을 돌렸고, 나아가 하나님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 주기에 먹었습니다."

오늘날 여성에게 퇴짜를 맞은 남성의 기분 변화도 비슷하다.

초창기에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주눅이 든다.

만약 그 여성이 자신의 유전자에 매력을 못 느낀다는 낌새를 느끼면 더더욱 그렇다.

하와는 최악의 악마 사탄에게 당했지만, 아담이 남을 탓한 것은 순전한 자유 의지였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뇌 용량이 엄청나게 늘었다.

늘어난 뇌 용량 덕분에 자의식도 생겼다.

어쩌면 천국은 우리가 지어야 하는 것이고,

영생은 우리가 땀 흘려 얻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나 고양이는 포식자지만, 그것은 녀석들의 본성일 뿐이다.

본성을 두고 녀석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녀석들에게는 사리 판단 능력도, 창의력도, 자의식도 없다.

분별력, 창의력, 자의식은 인간의 잔인함을 끌어내는 특성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한 생각이 없다.

 

자의식이란 자신이 어떻게 어디에서 왜 다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

고통과 자괴감,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끼며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아는 것.

고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두려움과 괴로움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안다.

자의식이 정교하게 발달하며, 인간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오늘날 원죄라는 개념은 인기가 없다.

진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인간의 조상들은 짝짓기 상대를 자유 의지로 선택했다.

추악한 면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최초의 남자와 여자는 창조주와 함께 있었지만 눈이 열리지는 않은 상태였다.

주변에 대한 의식도 없고 자의식도 없었다.

그들의 선함은 타고난 것일 뿐 자유 의지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

가정)

자신의 존재 자치에 의심을 품고 괴로워하게 된 것은 자의식 때문이 아니다.

죽음과 추방에 대한 도덕적 깨달음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연약하고 사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려는 거부감이 주된 원인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인간의 시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니 혼돈으로부터 좋은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려면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진실하게 살고 진실을 말한다면,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고 우리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자신을 대할 수 있다.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세상을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

 

[결 론] -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하는 사람 처럼 대하는 것

과거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이기주의와 무한한 탐욕, 야만성 통제하는 것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인간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항상 자신만을 위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니며, 정반대의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이 더 많다.

자기혐오와 자기 경멸, 수치심과 자의식으로 괴로워한다.

결점과 부족함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고,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며 부끄러워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발 벗고 나선다. 하지만 자신은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서툴고 부족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도와주는 것처럼 나약한 당신을 포용하고 사랑하라.

인간이면 누구나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내며 힘겨워 한다.

도덕적으로 나약하기 그지없고 국가의 폭정과 대자연의 약탈을 견뎌야 하는 인간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당신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당신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 나 자신을 제대로 보살핀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 ? '

어떤 일을 해야 과감하게 도전하고, 신나게 일하며, 세상에 도움을 주고, 기꺼이 책임을 지며,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

시간을 어떻게 써야 더 건강해지고 더 많이 배울 수 있을까 ?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지금의 당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삶에서 혼돈을 줄이고, 질서를 재정립하며,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 니체

당신의 삶을 바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라. 그러면 삶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운 사람답게 부끄러운 자의식을 떨쳐 내고

자연스러운 자긍심과 당당한 자신감을 찾자.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할 사람 처럼 대하는 것.

 

 

 

Anne  ♥ Brian 블로그에서 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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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자신을 돌봐주어야 할 사람으로 대하라.

아담과 하와 이야기. 원죄 이야기가 얼마나 인간의 혼돈과 질서의 본질을 나타낸 이야기인가.

혼돈과 질서 속에서 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발가벗었고, 추하고, 방어적이고, 비판적이고, 무가치하고, 비열한 존재인데

후손인 우리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 존재를 애지중지 보살펴야 할까? 만약에 내 자신이라면?

모두가 똑같다. 그러나 내 몸과 마음의 결함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얼마나 부끄럽고 한심한 사람인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에게 좋은 것을 거부하면서 나를 벌 할 수 있다.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유치증과 절대적 무용성이 생긴다.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살겠다고? 도대체 얼마나 따분하고 못난 존재로 전락해야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될까?

 

 

 

 

여자는 자의식이 원래 강하다. 그리고 남자의 자의식을 깨워주는 것은 여자다. 여자는 남자가 무가치 할 때는 남성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망신을 주는 방식으로 자의식을 키운다. 원시적이고 강력한 힘이다.

아름다움은 추한 것을 부끄럽게 하고, 강한 것은 약한 것을 부끄럽게 하며, 죽음은 삶을 무색하게 한다. 이상을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다. 나는 그래서 그런 감정을 두려워하고 원망했으며, 증오하기도 했다. 아름다움, 건강, 강함, 탁월함을 포기해야 할까? 포기는 수치심을 더 키우고 자괴감을 안겨준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모두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다.

여성이 나의 유전자에 매력을 못 느낀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마련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는 능력에 한해서는, 마치 신과 같다. 약점을 알고 있다면, 굴욕과 상처를 줄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생명 준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처럼 나를 대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학대하고 방치할 것인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사탕만을 줄 것인가? 행복한 것, 내가 원하는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나 자신을 제대로 보살핀다면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까? 어떤 일을 해야 과감하게 도전하고, 신나게 일하며, 세상에 도움을 주고, 기꺼이 책임을 지며,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시간을 어떻게 써야 더 건강해지고 더 많이 배울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지금의 나.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원망과 앙심, 잔혹성을 떨쳐낼 수 있다. 나만의 원칙을 세워 다른 사람에게서 나를 지키며, 심신을 단련하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면 보상을 주어야 한다. 천국을 앞당기려면 하나님이 에덴 동산 앞에 세워놓은 화염검과 죽은 천사들에게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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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와 방향의 힘은 얕볼 수 없다.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한계를 넘고 기회의 문을 열 것이다.

지옥. 사람에게는 은밀한 각자의 지옥이 있다. 철저히 파악해서 지옥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하라.

[출처]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법칙|작성자 woosson7

 

각색 모디스티 2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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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세상은 '혼돈'과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역사가 오랜시간에 걸쳐 그 '혼돈' 위에 쌓아 올린 '질서' 속에서 일상을 영위한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기를 의심하지 않는 것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의 시동을 걸어 출근하는 데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믿는 것도, 오늘 밤 잠자리에 들면 밤중에 도둑이나 강도의 침입없이 내일 아침이 맞으리라고 믿는 것도 질서 속에서 느끼는 안정이다. 그 중 하나라도 어긋나게 되면, 우리는 혼돈을 경험한다.

우리는 이러한 질서와 혼돈을 인식하는 데에 맞추어 뇌가 진화했다. 질서와 혼돈은 사물이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인격체로 인식되고, 경험되며 바라보게 된다. 질서라는 이미 알려진 영역을 혼돈이라는 미지의 영역이 둘러싸고 있으며, 우리는 질서에 발을 딛고 살고 있다. 삶이라는 항해 전체에서 우리는 이 두 영역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살게 된다.

 

“이 세상에 위험하고 불안한 모든 것,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모든 것을 영원히 제거할 수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그 즉시 또 다른 위험 요인이 나타난다. 바로 유치증(성인이 인지·정서적으로 어린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증상)과

절대적 무용성(absolute uselessness)이다.” 81p.

 

혼돈과 질서라는 이 세상의 필연적인 구조 속에서 또 한 가지 인간으로부터 비롯되는 필연은 선과 악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고통과 죽음에 예속된 존재라는 것을 알며, 따라서 어디에서, 어떻게, 왜 다칠 수 있는지를 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타인을 어디에서, 어떻게 다치게 할 수 있는지도 안다. 그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생명체는 이 지구 상에서 인간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앞서 말한 세상의 면들과 우리의 존재 가치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우리 내면 깊숙이 있는 선을 따라 나를 존중하며 더 나아가 타인, 세상을 존중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를 존중해야 그 이후의 존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혐오와 자기 경멸, 수치심과 자의식으로 괴로워한다. 자기도취에 빠져 존재 가치를 과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깎아내리고 방치한다. 결점과 부족함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고,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며 부끄러워한다.” 98p.

 

“우리 ‘존재’는 타인의 ‘존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우리 자신에 대한 학대가 다른 사람에게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100p.

 

우리는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며, 서로에게 혼돈 속의 질서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이는 예외적 경우들이 아닌 혼돈과 질서, 선과 악과 같이 필연적인 이 세상의 명제들과 같이 우리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지니게 되는 명제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혼란으로 가득한 세상에 질서를 세워나가야 하는데, 그 출발점은 나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한다는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는 뜻이다.” 102p.

 

나 자신을 돌아보며,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내게 진정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에 따라 내가 추구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나 또한 혼돈을 밝히는 질서의 빛을 손에 쥐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나의 존재 의의를 다시금 확인하고 확신하며 이 세상을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kuuunho 블로그에서 펌함 

 

각색 모디스티 2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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