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 강스 감독이 만든 '나폴레옹'은 초기 무성영화 시대의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강스는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의 첫 승리를 매우 탁월하고 간결하게 묘사한다.
문제의 장면은 1793년 9월 툴롱 포위 공격 중에 일어난다. 툴롱은 프랑스 해군에게 가장 중요한 남부 해안의 항구였다.
그런데 영국군이 이 항구를 차지해 버렸다.프랑스 혁명군은 도시를 에워싸고 반격을 준비한다.
나폴레옹은 당시 24살이었다. 그는 툴롱에 도착하여 신고를 한다.
나폴레옹이 출입구를 통과해 널찍한 시골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오면서 장면이 시작된다.
그는 심플한 검정색 제복을 입고 뒤집힌 배처럼 생긴 그 유명한 모자를 쓰고 있고 한쪽 겨드랑이엔 두꺼운 책을 끼고 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한 프랑스 장군이 긴 테이블 중앙에 앉아있다.
나폴레옹은 장군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 경졔를 하고 장군에게 명령서를 건내준 다음 똑바론 선 채 장군을 주목한다.
나폴레옹의 명령서에는 그가 포위 공격 포병대의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고 적혀있다.
장군은 서류를 보더니 코웃음을 친다. 그들에게는 포병대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칼과 총검으로 툴롱을 탈환할걸세!"
나폴레옹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경례를 한 다음 돌아선다. 장군은 그의 팔을 붙잡으면 묻는다.
"자네가 내 입장이라면 말일세...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또 다른 군인이 지도를 가져다가 장군 앞의 탁자에 펼쳐 놓는다.
나폴레옹은 잠시 동안 지도를 내려다보더니
먼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잠시 후,
지도 위의 한 지점을 손가락을 짚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레귀예트 요새(지도의 빨간점)가 점령되면
영국군은 툴롱을 포기할 것입니다."
장군은
주위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폭소를 터뜨린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침착한 표정으로 꼼짝않고 가만히 서 있는다.
http://basart.artillerie.asso.fr/article.php3?id_article=913
장군은 자신의 생각대로 툴롱 요새를 습격했고,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파리는 그를 해고했다.
그 다음에 파견된 장군은 나폴레옹의 말대로 작은 요새 레귀예트를 점령했다.
나폴레옹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때부터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강스 영화의 장면은 감탄스러울만큼 정확하게 표현되었다.
단 한가지를 제외해야 하는데... 나폴레옹의 전략은 장군의 명령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나폴레옹은 며칠동안 전략을 종합했고 부하들과 열심히 토론을 했다.
이 성공적인 전략을 이끌어 낸 것은 등고선 지도와 경량포, 미국의 독립전쟁, 잔다르크의 4가지 요소에 의한 것이었다.
1. 등고선 지도
이것을 발명한 사람은 나폴레옹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략 100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폴레옹 이전에는 전투가 있을때마다 이 지도를 사용한 장교가 거의 없었다.
등고선 지도 덕분에 툴롱의 지도에서 레귀예트라는 작은 요새를 발견할 수 있었다.
2. 경량포
이것은 대략 10년 전에 만들어졌다. 기존의 무거운 대포와 달리 아무데서나 사용할 수 있을만큼 가벼웠다.
심지어 절벽 위에서도 문제없었다.
3. 미국 독립 전쟁
보스턴 포위 공격 때, 헨리 녹스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도체스터 하이츠 위에 대포를 끌고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내의 영국군들은 갑자기 자국 해군으로부터 고립될까봐 두려워졌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멀리 도망을 갔다. 그것이 1776년에 있었던 일이었다.
1781년 요크타운 전투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프랑스 해군은 시내의 영국군을 바다에 있는 영국 해군으로부터 고립시켰고, 영국군은 조지 워싱턴 장군에게 항복했다.
그것으로 종전되었고 그때부터 영국 육군은 해군과 고립되는 것을 무서워했다.
4. 잔다르크
1429년 오를레앙 포위 공격에서 잔다르크는 영국의 침공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했다.
그녀는 메인 요세 자체를 놓고 싸우는 대신에 도시 주위의 작은 요새들을 차지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오를레앙 요새를 구했다.
툴롱 전투 이후 나폴레옹은 빠른 속도로 승진했고, 1796년 그는 툴롱에서 그를 비웃었던 장군과 같은 계급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계속 이런 식으로 전략을 수립하면서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정복해 나갔다.
나폴레옹의 회고록에는 자신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 적혀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공적이 전해 내려오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이끌어준 것은 바로 전쟁의 원칙이다.
알렉산더, 한니발, 카이사르, 구스타프 아돌프, 투렌, 사부아의 외젠, 프리드리히 대제 같은 이들의 83가지 전투 작전들의 역사를 모아 놓으면 병법에 관한 완벽한 보고서가 완성될 것이다.
전쟁의 기술은 군대가 수적으로 열등할 때, 항상 적보다 전력이 강한 지점에서 공격하거나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을 정복한 코르시카인 108-113, 118P
[출처] 나폴레옹의 첫 승리...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작성자 진태기
'@ 역사 ㅡ 강대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적인 군사 전략에서의 혜안 - 유럽을 정복한 코르시카인/ 카르마로 인해 가능해진 궁극적인 목표를 선택했다 (0) | 2019.12.16 |
---|---|
윌리엄 더건 교수가 말하는 전략적 직관 / 번뜩이는 아이디어 원한다면 당장 브레인스토밍 때려쳐야 (0) | 2019.12.15 |
[안계환의 독서경영] 나폴레옹의 전략적 직관 / 클라우제비츠, 조미니 (0) | 2019.12.15 |
“나는 고집스럽게 상황을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상황에 복종하는 길을 택한다.” / 나폴레옹 (0) | 2019.12.15 |
나폴레옹의 직관 (0) | 2019.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