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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비축분'이란 독서나 교육 같은 지적 활동으로 부터 비롯된다고 하는데요. 그것을 토대로 알츠하이머를 극복한 베르나데트 수녀 이야기

modest-i 2016. 5. 10. 22:06

치매에 걸려도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미국 시카고 러시 대학 연구팀은 치매가 있는 노인 50명과 치매가 없는 노인 91명을 대상으로 사망 당시 뇌 부검을 실시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88세였는데, 그중 20명만이 뇌 속에 아무런 병적 증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일부 뇌 기능의 손실이 발생했거나 치매에 걸린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수가 특별한 치매 증상 없이 건강한 노년을 보냈다는 것을 뜻한다.

 

치매에 걸렸는데도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과연 치매에 걸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의학적으로는 치매지만, 겉으로 봤을 때 혹은 본인 스스로 치매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가장 흔한 치매인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세포 찌꺼기인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어떤 이유로 인해 이 단백질이 더 많이 생성되거나 제대로 배출이 되지 않으면 치매에 더 잘 걸리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같은 양의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더라도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발병되는 시기가 다르고 증상의 정도도 다를 수 있다.

 

또한 치매로 진단될 경우, 해마의 용적이 20퍼센트 이상 감소되는 등 전반적으로 뇌의 위축이 나타난다. 그러나 뇌 기능이 잘 보존된 사람들의 해마의 영역은 평균치보다 10퍼센트가량 더 크며, 전체 뇌 용적도 더 큰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의학적으로는 분명 치매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그 정도가 경미하다.

 

전문가들은 이것은뇌 예비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지적 비축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뇌에 어느 정도 기능 상실이 일어난다고 해도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사람들의 인지적 비축분이 클까? 이에 대한 해답은 평소 뇌를 얼마나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운동과 지적 자극을 통해 지속적으로 뇌를 단련하는 훈련을 한 경우 인지적 비축분, 즉 뇌의 용적이 커진다. 두뇌단련이 대뇌피질을 두껍게 만들어 뇌의 용적을 늘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맨카토 수녀들의 뇌 연구 결과로도 증명되었다. 켄터키 대학교의 데이비드 스노던 교수 연구팀은 맨카토의 수녀 100여 명의 뇌를 기증받아 연구했다. 그중 85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베르나데트 수녀는 사망할 때까지 지능 검사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는데, 사후에 뇌를 열어보니 알츠하이머 등급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인 6단계였다. 그런데도 죽기 전까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암기 능력도 다른 수녀들에 비해 매우 뛰어났다.





알츠하이머를 극복한 베르나데트 수녀 이야기


글 김덕영 다큐스토리 미디어 대표

 
 
나이가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갈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억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젊었을 때 생생한 기억력을 자랑하던 사람들도 중년을 넘어갈수록 기억력의 감퇴를 경험한다. 사람의 이름이나 전화번호가 잘 기억 나지 않거나,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까먹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판단력이나 집중력 부문에서 젊은 시절과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년에 접어들면 뇌도 다른 신체 부위처럼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중년의 위기라는 말은 이런 근거 위에서 자리를 잡아나갔다.

 


사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두뇌에 관한 지식은 제한적이었다. 인간의 다른 세포들이 상처를 입었을 때 재생이 되는 것과 달리 두뇌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심지어 프로이트 같은 인물들도 두뇌는 결코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신체의 노화와 함께 두뇌도 노화가 이뤄지고, 결국은 쓸쓸하게 노년을 맞이할 것이라는 믿음이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은 중년의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뇌 스캐너와 유전자 분석과 같은 새로운 기술적 성과들 덕분에 중년의 뇌는 새로운 가능성이 계속 증명되고 있다.

 


두뇌의 노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치매라고 볼 수 있다. 치매는 노인이 되면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여겨져왔다. 하지만 여기에 소개하는 한 수녀의 이야기는 치매에 얽힌 가장 극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는 1986년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시작된다.

 


켄터키 대학교의 뇌신경학자 데이빗 스노든과 그의 동료들은 치매와 노화의 상관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갔다. 당시 노화 연구는 주로 양로원에서 나이가 들어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은 노인들을 상대로 이뤄져 왔다. 노화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자연적인 과정이었고,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양노원 노인들은 두뇌의 기능이 감퇴해가는 가장 좋은 표본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한정적인 제약 속에서 지금까지 인간의 노화와 노년기 두뇌 연구가 이뤄져 왔다는 점이다. 노화에 대한 편견 속에서 노화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왔던 것이다.

 


스노든 교수는 가톨릭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수녀들을 대상으로 두뇌가 어떻게 노화에 이르게 되는가를 오랜 시간 추적했다. 이 연구에 참가한 수녀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이 사망했을 때, 자신의 뇌를 연구팀에게 기증하기로 약속을 했다.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수녀들 중에는 베르나데트라는 이름의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그녀는 81세부터 84세까지 치른 인지시험에서 모두 최우수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85세 때 심장마비로 사망을 했다. 그녀가 사망하자 그녀의 뇌는 연구팀의 분석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연구진은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녀는 오래 전부터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있던 치매 환자였던 것이다.

 


그녀의 뇌에서 표본을 분석한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녀의 뇌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가장 대표적인 증상 중의 하나인 플라크가 무수하게 엉켜 있음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알츠하이머를 진단하는 척도로 봐도 그녀의 상태는 가장 심각한 수준을 가리키는 마지막 6단계에 해당됐다. 그렇게 심한 알츠하이머 증상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나데트 수녀는 어떻게 678명의 수녀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것은 인간의 두뇌가 갖고 있는 신비한 복원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연구진은 베르나데트 수녀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그것을 ‘인지적 비축’이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두뇌가 마치 힘의 비축분을 보유하고 있다가 특별한 난관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능력을 꺼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마치 저축을 해뒀던 돈을 형편이 어려울 때 꺼내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인간의 두뇌가 갖고 있는 ‘인지적 비축분’이란 두뇌를 지속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과학자들은 이들의 사례를 통해서 어떤 이유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뇌 손상을 잘 견디는지, 뇌졸중을 입은 환자들 사이에도 왜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밝혀내려고 노력했다. 지적인 활동을 오래 해 온 사람들에게서는 마치 필요할 때 능력을 차출해 낼 수 있는 더 강하고 끈질긴 뇌의 연결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능력을 통해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이 생겨도 자동적으로 보호막을 형성해서 비상용 발전기를 돌리듯 뇌의 기능을 복구해내는 것이다.

 


이런 인지적 비축분에 관한 연구는 최근에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런 인지적 비축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독서나 교육과 같은 지적인 활동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언어학습을 하거나, 독서 등을 통해 뇌를 단련시키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인지적 비축분이 강한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결국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치매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낮아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베르나데트 수녀와 같은 사례는 특수한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유사한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나이든 체스 선수 역시 우리 두뇌가 갖고 있는 인지적 비축분의 활용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그 할아버지 역시 베르나데트 수녀처럼 알츠하이머의 증상이 이미 두뇌에서 심각하게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체스 선수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전에는 여섯 수를 내다보고 체스를 둔 것에 비해서, 죽기 전 에는 네 수 정도밖에 내다보지 못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인간은 성공을 위해서 비싼 값을 지불하고 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교육이 단지 성공이나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노년에 이르러서 치매와 같은 질병을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은 노년에 이른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심리학자인 윌리스 연구팀은 이른바 ‘시애틀 종단연구’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들은 1956년에 시작해서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6천 명 가량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시애틀에 있는 건강 관리 단체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실험 대상자들은 모두 건강한 성인들로 20세에서 90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을 갖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들을 7년 마다 검사해서 그들의 지능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살펴봤다.

 

 

그 결과, 그들은 두뇌의 기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가 20대가 아니라, 중년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가장 복잡한 인지 기술을 측정하는 검사에서 40대에서 60대에 속하는 중년들이 받은 성적은 20대나 30대가 받은 성적보다 월등히 높았다. 검사에 사용한 범주들은 어휘력, 언어 기억, 공간 감각 테스트, 귀납적 추리 등이었다. 윌리스는 이를 토대로 쓴 <중간의 삶>이란 자신의 저서에서 ‘남녀 모두 수행력이 절정에 도달하는 시기는 중년이다’라고 자신있게 밝히고 있다. 맨날 이름이나 까먹고, 늙어가는 것에 회환이나 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중년들이 오히려 뇌의 기능에 있어서는 20대들보다 훨등히 앞선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중년의 뇌가 이처럼 숨겨진 능력과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것은 뇌신경학계의 여러 연구팀들이 갖고 있던 중요한 문제의식이었다.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은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 왔고, 결국 그들은 몇 가지 공통점에 도달했다.

 


그것은 중년의 뇌에만 존재하는 ‘경험’이라는 가치와 관련이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혜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이다. 삶을 오래 산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지혜가 바로 비밀을 푸는 열쇠였던 것이다.

 

 

중년에 도달한 사람들에게서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이 지배적이다. 중년에 도달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차분하게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것은 뇌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기능들과도 관련이 있다. 그것은 ‘긍정성의 효과’라고 명명되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정적인 일보다는 긍정적인 일에 초점을 맞춘다.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들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부정적인 입장보다는 긍정적인 자세가 더 드러나게 된다. 결국 우리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세상은 펼쳐진다. 마음 먹기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두뇌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도구가 된다. 우리가 마음 먹은 것,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우리의 두뇌도 눈 앞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 자세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중년의 어느 시점에 이르러 두뇌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우리의 두뇌는 지금까지 한 쪽 두뇌만을 사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서 양쪽 두뇌를 동시에 사용하게 된 다. 이처럼 두 가지 뇌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사물을 편향된 자세에서 바라보지 않고 보다 중립적이고 관조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인 것에 쉽게 휩쓸리거나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태를 지켜보면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것은 마치 무거운 의자를 한 쪽 팔만 사용하지 않고 두 팔로 들어올리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결국 나이가 들었다고 배움을 포기하거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의 두뇌는 죽을 때 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두뇌가 퇴화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바라보던 이전의 낡은 사고방식은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은 삶 속에서 연륜을 지닌 지혜롭고 경험많은 연장자들을 지도자로 선택해 왔다. 위험을 피하고, 더 안전한 삶을 위해서 많은 경험을 지닌 사람들은 늘 존중 받아왔다. 그것은 부족의 안전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이런 중년과 노년의 지혜로운 삶이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기계문명 속에 밀려 잠시 뒷전으로 밀려나갔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그들을 뒷전으로 몰아세웠던 과학과 테크놀러지들을 통해서 노년의 삶은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헤겔이 말한 것처럼 ‘당신을 상처입힌 손이 바로 당신을 치유하는 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두뇌 과학과 연구는 인간이 오래 전부터 존중해왔던 ‘지혜로운 사람’들을 다시 사회의 전면에 복귀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