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족의 잔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 덕분에 군사적 또는 정치적 목표는 늘 이루어낼 수 있었다.
군사작전술에 관한 전문 지식은 항상 .
그 군사작전을 포함하는 더 큰 단위의 정치적 전략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이처럼 몽골에서 군사적 목표가 정치적 목표의 일부가 되는 일은 군사활동에 앞선 철저한 준비 과정에서 뚜렷이 관찰되었다.
때로는 이런 준비과정이 1년 넘게 지속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친위대에는 정치적, 전략적 정보를 다루는 광범위하고 영속적인 정보부서가 있었다.
이 부서는 주요 국가들에 대한 최신 기록을 관리하고
군사 지휘관들에게 서면 기록을 제공하거나 전황 설명을 했다.
몽골족은 정치적 정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으며,
특히 적 지도자들 간의 개인적인 대립관계에 관심을 갖고 이를 전투에 활용했다.
예컨대 몽골이 헝가리를 공격한 일은 독일 황제와 교황이 극심한 대립관계에 있으므로
몽골이 침공을 해도 결코 힘을 합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몽골은 러시아와 폴란드가 대공들의 사소한 대립 때문에
몽골군에 대한 어떤 군사적인 노력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다.
몽골의 전쟁 준비는 연합군을 이루고 지속시키는 능력, 전투 사기를 유지하는 능력 등
언제나 적에 대한 전략적 평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몽골 정부 무관들은 단순히 '화살 개수나 세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몽골은 출정에 앞서 여러 부류의 대중을 대상으로 각기 다른 주제를 정해 광범위한 심리전을 준비했다.
몽골군은 추격에 능했다.
그들의 전술 교범에서 승리의 정의는 다름 아닌 적군 섬멸이었다.
적이 전장에서 달아나면 몽골족은 거의 모든 적병이 죽거나 생포될 때까지 몇 주씩 추격하기도 했다.
부족 간 전쟁에서 생긴 관습에 따라 몽골 지휘관들은 싸움에서 패배한 적은 끝까지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흐와리즘이나 유럽과의 전투에서는 특수 기동부대를 투입해 적군 지휘관을 찾아 생포하게 했다.
대개는 적의 긴 보급로를 끝까지 쫓아가
남아 있는 적군이 군대를 재정비하고 다시 전투를 일으켜 보급로를 위협할 만한 불씨가 남지 않도록 했다.
몽골족은 무자비한 추격전을 벌이면서 주변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한 예로 1299년에 이들은 살라미예트에서 맘루크를 굴복시켰는데
이때 적의 패잔병을 쫓느라 몽골부대가 가자지구까지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장에서 무려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었다.
몽골군의 최고 전투 능력은 단연 이동 속도였다.
몽골 萬戶에게는 며칠 만에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 적 뒤에 갑자기 나타나거나
적의 후방 깊숙한 요새의 관문에 나타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제베와 수부타이 같은 몽골군 지휘관들이 군대를 운영하면서
그토록 커다란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속도 덕분이었다.
유럽군이나 중국군은 최적의 상황에서도 매복이나 기습으로 몽골 만호를 공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몽골군이 고전하고 있을 때는 거의 매번 적의 추격 속도보다 더 빨리 후퇴할 수 있었다.
생포된 중국 무관이 칭기즈칸에게 말하기를, 몽골은 말을 타고 제국을 정복했지만 제국을 말 위에서 통치할 수는 없다고 했다.
칭기즈칸은 제국을 자신의 아들인 오고타이에게 물려주어 통치하게 했다.
그토록 광대한 몽골 제국을 안정된 연락수단 없이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기 1234년 오고타이칸은 얌이라는 제국 연락체제 수립을 공식화 했다.
이 체제는 제국 전체에 걸쳐 종횡으로 약 40 킬로미터 지점마다 역참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야간 이동 시 기수는 안장에 몸을 묶어 말이 다음 역참에 도착할 때까지 말 등에서 잠을 잤다.
전령은 때때로 말을 갈아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몸에 종을 달아
역원들에게 자신의 도착을 알리고 새 말을 대기시키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얌의 인사 및 운영 책임이 군에 주어지면서 군의 활동 경로를 따라 파발이 항상 설치되었다.
얌은 또한 전술적, 전략적으로 능률적인 연락체제 역할도 했다
칭기즈칸의 위대한 장군 수부타이......리처드 A 가브리엘 지음
허당 허당 허당 블로그에서 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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