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수부타이>는 칭기즈칸 시대를 주름잡은 수부타이 바투르 장군의 일대기라고 보긴 어렵다. 위대한 장군만의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제목 낚시'라고 평할 수도 있겠다. 책은 수부타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고려부터 헝가리까지 짓밟았던 몽골군의 전투사를 잔뜩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기록된 역사가 매우 적은 탓이 크다. 있어도 과장이나 축소가 빈번했다. 저자인 캐나다왕립사관학교 역사학과 교수 리처드 가브리엘이 다양한 문헌을 수집해 조각을 맞추는 시도를 택한 이유다. 아라비아, 페르시아, 중국, 프랑스 등에서 전해지는 자료에 의존해 정보를 모았다. 독자는 이를 통해 말달리는 몽골군을 상상할 수 있다. 그는"이 위대한 장군의 군사 전기 중 서양에서 출간된 최초의 도서"라고 자신했다.
저자는 "수부타이는 전술적 탁월함에서는 한니발과 스키피오에 버금간다"며 "책략가로서는 알렉산더, 카이사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평했다. 수부타이는 얼마 전 영국 BBC가 꼽은 세계사의 100대 명장 1위에 올랐다. 이런 인물이 서양은 물론 국내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니 전 세계가 몽골에 털렸던 이유 중 하나는 아닐는지.
▶ 전문성 : 이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지식은 역사와 지리다. 몽골군이 침략한 고려에서 헝가리까지 여행을 떠나야 하니까.
▶ 대중성 : 칭기즈칸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밑에서 32개 민족을 정복하고 65차례 대격전에서 승리를 이끈 용장 '수부타이'는? 읽는 맛이 있어서인지 우리와도 관련 있는 얘기여서인지 5시간 동안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었다.
▶ 참신성 : 글쓴이는 흩어진 역사의 조각을 모아 칭기즈칸 시대의 퍼즐을 맞추고 있다. 예컨대 "누구는 몽골군 규모가 15만명이라고 썼으나, 많아 보인다"면서 "다른 사람은 8만명이라고 썼는데 또다른 사람은 수레가 몇 개라고 기록했으므로 실제보다 적은 수치"라고 설명하며 근사치를 제시한다. 21세기의 뉴스들도 무엇이 정확한 것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판인 점을 고려하면 저자의 '당연한' 노력이 참신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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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밑줄 긋기
우리가 몽골군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대부분 적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서양에서는 몽골군에 패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몽골군의
규모를 부풀려서 기록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규모가 작더라도 체계적으로 잘 훈련된 군대는 크고 체계적이지 않은 군대를 이길 수 있다.
사자가 이끄는 당나귀 군대가 당나귀가 이끄는 사자 군대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지도자는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나폴레옹
군사 문제에서 희망은 방법이 아니다.
마지못해 참전한 병사는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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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아들이었던 수부타이는 초원에 사는 몽골인의 아이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키워졌다. 어려서부터 말 타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활 쏘는 법 또한 익히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초원의 아이들처럼 음식을 날로 먹은 적도, 쿠미스(말젖으로 만든 술)를 먹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훗날 몽골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수가 됐다. 7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32개의 민족을 정복했고 65회의 대격전에서 승리했다.
수부타이는 칸의 천막을 지키는 초라한 사병에서 출발해 가장 훌륭하고 믿음직한 장수가 돼 60년 동안 몽골 군인으로 살았다. 칭기즈칸 사후 수부타이는 고려와 금나라, 페르시아, 러시아 정벌을 계획하고 거의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헝가리를 정복하면서 몽골과 유럽 사이에 있는 주요 군대를 전멸시켰다. 수부타이가 없었다면 몽골의 세계 정복이라는 대사건은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삼림부족 출신인 그는 말도 타지 못하는 어린 소년 시절 칭기즈칸과 만났다. 뭐든 다하겠다는 투지는 강했으나 몽골 전사만큼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칭기즈칸의 절친한 동료인 친형 젤메가 있었다. 젤메를 비롯한 최고 지휘관들이 벌이는 토론을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은 수부타이가 위대한 장수로 커가는 자양분이 됐다. 실전 경험이 더해지면서 수부타이는 탁월한 기만전술과 기습 작전을 벌이는 전략가로 성장했다.
칭기즈칸 군대의 활동은 수부타이의 전략 설계를 거쳐가는 경우가 많았다. 금나라, 이슬람 제국, 러시아 및 서방과의 전쟁에서 작전 수립은 그의 몫이었다.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칸의 시절에도 군사 기획과 감독 권한을 거머쥐고 있었다. 칭기즈칸 부자는 왕자들을 명목상 지휘관에 임명했지만 “수부타이의 재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콧대 높은 왕자들을 달래려고 그의 가치를 저버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책은 수부타이의 일대기는 물론 전술 및 지략, 근대 전쟁기술과의 관련성까지 다룬다. 저자는 수부타이에게서 비롯된 몽골의 전술이 중앙아시아, 소련, 독일로 흘러들어갔다고 분석한다.
강구열 기자
수부타이 바투르, 즉 용장 수부타이는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군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한 명이었다. 전술적 탁월함에 있어서는 한니발과 스키피오에 버금가며 책략가로는 알렉산더, 카이사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저자의 후한 평가와 달리 우리는 세상을 호령한 칭기즈칸(테무진)은 알지만 시베리아 타이가 출신 대장장이의 둘째아들 수부타이는 잘 모른다. 그가 처음부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 숲에서 와 말 타기, 활쏘기 등의 능력이 없던 이 어린 소년은 테무진 거처의 문지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몽골 통일을 위한 부족 간 10년 전쟁을 지켜보면서 몸으로 실용적인 군사 교육을 받는다.
1197년 테무진이 앙숙 메르키트족을 공격하면서 스물두 살 수부타이의 탁월한 지휘 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수부타이는 자기 쪽보다 규모가 큰 적군과 싸울 때가 많았지만 늘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전략을 짰고, 결정적 순간 수적 우세를 점했다.
“군사 전략가였던 수부타이가 칸에게 인정받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몽골군을 조직한 두뇌는 수부타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칭기즈칸 시절 몽골군은 가장 능률적이고 효과적이며 무서운 군대였다. 몽골군은 금나라 같은 적과 맞서기 위해 독립적인 기동부대가 필요했고, 그 결과 만호(1만 명) 단위로 군사를 조직, 운영했다.
몽골군이 가진 장점이 여럿 있지만, 특히 목표 달성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부대 지휘관에 맡긴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전반적인 작전 내용을 간략하게 전해 들은 야전 지휘관들은 각 만호에 구체적인 목표 달성 임무를 지시했다. 야전 지휘관들은 전장에서 상황에 맞는 독창성과 혁신성, 그리고 실행상 유연적인 전술을 마음껏 발휘해 각자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수부타이는 60년 동안 군인으로 살면서 칭기즈칸 사후까지 거의 모든 전쟁을 이끌며 몽골과 유럽 사이에 있는 주요 군대를 전멸했다. 오늘날 전장에서도 그가 고안한 속도와 기동력, 기습, 포위, 후방 전투, 섬멸전 등의 전술은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주간동아에서 펌함
수부타이가 남긴 유산은 현대 군사작전 이론과 실전에 지속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오늘날 강조하는 속도, 기동력, 기습, 포위공격, 후방전투, 화력 집중, 섬멸전 등은 모두 이 위대한 몽골 장수가 처음으로 실행한 전술들에서 탄생한 것이다.
수부타이는 68세에 오랜 전쟁을 치르고 돌아와 73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약점이 없는 군인’ ‘신의와 불변의 장수’ 등의 평가를 받으며 남은 생을 조용히 마쳤다.
이슬람 사람들은 그를 ‘조용하고 탐욕스러우며 무자비한’ 인물로 평가했던 반면, 러시아인들은 ‘극도로 훈련된’ 인물로 평가했다. 중국인들은 그를 대단히 존경했다. 이렇듯 적들마저도 높이 평가했던 수부타이의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 흥미진지하게 펼쳐진다.
리처드 A. 가브리엘 지음. 박리라 옮김. 글항아리. 정가 1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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