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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에 읽은 책의 제목을 번호대로 나열하고 내 나름대로 감동의 결과를 표시한다. 예를 들어 보통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때문에, 정말 가지고 싶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에는 번호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둔다. 내용이 좋은 책에는 책 제목에, 작가가 맘에 든 경우는 작가 이름에 각각 빨간 밑줄을 긋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별 5개를 최고점으로 하여 별의 수로 표시한다.
이 책은 당연히 소장하고 싶은 책 목록에 들어가 있고 별 다섯개다.
그동안 그렇게 헤매던 삶의 의미와 목적, 이유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그리고 나는 왜 그렇게 그 답을 알고 싶어 했는지, 그것은 나 개인의 질문이 아니라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시대적인 질문이었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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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 공허는 20세기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중략) 근래에 들어 인간은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 동안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전통이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본능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전통도 없다. 어떤 때는 그 자신조차도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동조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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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한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증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실존적 공허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낼 수 있다.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란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오히려 죽는 것은 간단하다. 오히려 사는 것이 재주라고. 죽음은 불변의 사실이다. 어떻게 사는가, 살아내는가가 더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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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란 질문을 가슴에 안고 있다, 늘. 어떤 책들은 그런 것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으니 묻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는 알고 싶다는 욕망이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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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주된 관심이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데에 있다는 것은 로고테라피의 기본 신조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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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테라피는 저자가 만들어낸 이론이다. 그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 중 한 사람이자 정신과 의사로, 의사로서가 아닌 수감자의 한 사람으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이론을 찾아냈다.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를 치료에 접목한 이론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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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 때 살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이 더 커진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알고 싶다. 너무나 알고 싶다. 삶의 의미 따위 몰라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목적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의 자세와 모습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다.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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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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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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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삶의 십자가가 있다. 이를 저자는 자신이 수행해야 할 ‘과제’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그게 그 사람의 삶의 과제이며,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그의 과제일 것이다. 그 과제는 그 사람 한 사람의 독자성을 띤다. 어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한 삶의 과제를 수행해야 할 사명이 우리 누구에게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는가? 사색을 통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자신만이 짊어진 그 과제를 ‘책임을 짊으로써’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정신분석학 이론이 과거에 초점을 맞추어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쩌지 저쩌지 한다면, 이 저자의 이론, 로고테라피는 현재와 미래에 초점이 놓여 있다. 살아가야 할 이유,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책임을 져야 할 일을 발견하여 살아가야 의지를 갖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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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쯤해서 떠오르는 게 있다. 삶의 의지를 갖기 위해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데 내 삶 위에는 나의 의지를 방해하는 많은 방해물들이 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학업을 포기해야 한다던가, 일을 하고 싶어도 취직하지 못한다던가, 번번이 실패만 안겨다 주는 삶의 지독한 장애물들이 있다.
화나는 시련, 고통에 대해서는 굴복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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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중략) 수면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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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삶의 의미에 대한 다른 어떤 책보다도 더 가치 있게 여겨진 이유는 이 부분 때문이다. 당장 죽을 수 있는 아니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은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조차 그 사람이 그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 마음만큼은 빼앗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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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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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자주 보던 문장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만큼 가슴에 와 닿았던 적은 없다.
다른 책 속에서 이 책을 인용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읽고 싶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바로 읽지는 못했다. 조금 두려웠다. 지나치게 잔인한 살해 장면이 들어간 영화나 지나치게 슬픈 영화나 책 등을 보면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하게 된다. 이 책도 그런 책일 거라 생각해서 조금 두려웠다. 나치 강제수용소란 곳에서의 생활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겁이 났다. 읽으면서도 그곳에서의 생활이나 살아나왔다 할지라도 치유되지 못하는 상처를 안은 사람들의 모습 등을 통해 여전히 가슴이 쓰리다.
그럼에도,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졌다고 저자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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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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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수용소에도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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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시련이 주는 삶의 의미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몇 번이나 강조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시련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 운명이 준 시련과 고통 앞에 무감각해지고 불안해하고 좌절하며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의 의미를 알아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삶이 준 과제들을 책임을 짊으로써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자고 말한다.
온갖 학대와 추위와 배고픔, 시시각각 몰려오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삶의 가치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던 그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 인간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의 의미에 대한 나의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 내 삶에 놓여 있던 운명의 장난,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한 나의 투덜거림들이 저자 앞에서는 그저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다.
며칠 동안 이 책은 계속 내 머릿속에 방 한칸을 차지하고 있다. 당분간은 내보내고 싶지 않다.
유정만두 블로그 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