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별세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평소 검소한 생활을 했다.
9일 코오롱그룹에 따르면 이동찬 명예회장은 슬리퍼를 1947년부터 50년 넘게 신었다.
10여년 전 비서실에서 그 슬리퍼를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자 이 명예회장은 멀쩡한 것을 왜 버리느냐고 야단을 쳤다.
결국 쓰레기통을 뒤져 슬리퍼를 간신히 찾아냈다.
이 명예회장은 10년 넘게 맨스타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출장 시 수행 비서들과 한 곳에서 잠을 잤다.
등산이나 낚시를 갈 때에는 도시락을 지참하고, 9인승 승합차를 이용했다.
그룹 임직원들에게 옷을 물려주기도 했다.
고인의 점심메뉴는 주로 된장찌개와 칼국수, 수제비 등 '서민 음식'이었다.
다른 반찬이 남은 상태에서 추가 반찬을 시키는 일이 없었다.
삼복더위에도 부채와 선풍기만 있으면 됐다.
다만 '아낄 때와 쓸 때를 구분하자'는 것이 고인의 생활철학이었다.
은혜를 갚는 일이나
신의를 지키는 일에는 알뜰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평소 검소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동찬 명예회장은
장학사업과 마라톤 꿈나무 육성 등을 꾸준히 지원했다"고 전했다.
이동찬 명예회장은 192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2년 수료했다. 고인은 1957년 4월 12일 부친인 고(故)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와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하고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해 한국 섬유 발전에 기여했다.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7년에는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화학·건설·제약·전자·정보통신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이 명예회장은 1945년 신덕진(2010년 작고) 여사와 결혼해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을 비롯해 1남 5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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