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이 되고 싶던 소년이 한 은행장을 찾아가 자신을 채용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은행장은 소년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실망한 소년은 방을 나서다 바닥에 떨어진 날카로운 핀을 보았다.
다른사람이 다칠것을 염려한 소년은 핀을 주워 옷깃에 꽂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소년이막 집에 도착했을때,은행에서 온 사람이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소식을 전했다.
방금 거절당하고 온 소년은 어리둥절한채 다음날 은행으로 갔다.
은행장은 소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제 자네가 돌아가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네.바닥에서 핀을 주워 가더군.
은행 에서는 작은 일에도 세심한 주의와 정성을 기울여야 해.앞으로 열심히 일해 주게"
소년은 훗날 프랑스 제일의 은행가가 된 자크 라피트.그가 핀 하나를 줍는 마음으로
신뢰를 얻은 섯처럼,인생을 뒤바꾸는 성공이나 기회는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작은 걸음에서 온다.
자크 라피트(1767~1844) : 금융가 이자 국회의원 및 국무장관
부모님과 곰신을 위한 공군가족 에서 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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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시대 말기부터 7월 왕정(1830~31) 초기까지 공공문제를 능숙하게 처리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파리 페레고 은행 직원으로 들어가,
1800년에는 은행의 공동경영자가 되었고 1804년 페레고 뒤를 이어 은행장이 되었다.
'페레고라피트사'는 유럽에서 가장 큰 회사로 자랐고,
라피트는 프랑스 은행 이사(1809)를 거쳐 총재(1814), 상공회의소 소장이 됐다(1814).
1814년의 임시정부와 나폴레옹의 백일천하기간 중 루이 18세를 위해 상당한 금액을 모금했다.
1816년 하원의원에 선출되어, 좌파로서 주로 재정문제를 다루었다.
1818년 다량의 주식을 사들여 파리의 재정 위기를 벗어나게 했으나
다음해, 언론 자유와 1819년 선거법을 열렬히 옹호하다가 은행총재직을 박탈당했다.
그는 일찍부터 오를레앙 공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하는 입헌군주정을 강력하게 지지했으며
1830년 7월 바욘 지역구 출신 하원의원으로 있을 때에는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을 혁명적인 그의 당 본부로 사용했다. 샤를 10세가 국민들의 원성을 사던 칙령을 철회하고 개각 문제를 논의하려 했을 때, 그는 "너무 늦었다. 더 이상 샤를 10세는 없다"고 대답했다.
7월 혁명이 일어난 뒤 하원의장에 선출된 그는 공화정을 피하고 루이 필리프가 왕위를 계승하게 하려고 힘썼다.
루이 필리프가 새로 왕위에 오르자 그를 국무장관에, 1830년 11월에는 총리에 임명했다.
라피트는 외국, 특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혁명운동을 돕겠다고 공언했으나 실제로는 벨기에 이외의 지역에 대해 개입하기를 거부해 좌·우익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1831년 3월 13일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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