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반복의 힘,
천재조차 그것을 얻지 못하면 굴복하게 되어 있다.
역사 속 가장 흔한 사례가 바로 이 진실의 증명이다.
"나는 서글프지만
나 자신이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온 방탕한 삶,
여성에 대한 지속적인 선입관,
친구들과 밤마다 보냈던 늦은 시간들,
극장, 연주회, 점심과 저녁의 풍성한 음식들,
그리고 무엇 보다 이런 것들에 대한 나의 탐닉 때문에
나는 내 일에 전념하지 못했다.
연습한 많은 레퍼토리로 연주회를 준비했지만
더 나은 연주를 들려주겠다는 열정이 없었다.
악보에 충실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좋은 기억에만 의존했으며,
앙코르곡으로 적당히 청중을 열광하게 하는 방법을 영리하게 체득했다.
한마디로 악보에 충실하게 그리고 기술적 결함없이 완벽하게 연주했다고 자랑할 만한 곡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내가 진정한 음악가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재능을 끊임없이 계발하는 대신 그것을 밑천으로 뜯어 먹고 살고 있었다.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다른 위대한 음악가들처럼 타고난 천재였고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그리고 열심히 자신의 기량을 쌓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어디가나 환대를 받고 주목을 받을 때
그는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했다.
그는 타고난 밑천으로만은 무한정 먹고 살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밑천도 바닥이 나는 것이며 끊임없는 충전을 통해서만 심화되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자기성찰은 방탕한 삶을 접고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게 했다.
그리고 더욱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레퍼토리를 연습했다.
대부분의 훌륭한 피아니스트들도 나이가 먹어가는 동안 연주력이 떨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대중들에게 최고의 기량을 보여 주었다.
언젠가 지인에게 유명한 말을 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오케스트라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세상이 안다"
평범함에서 위대함으로의 도약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실천적 비법을 꼽으라면 그것은 매일의 훈련이다.
김연아는 한 인터뷰에서 '동작 하나를 익히기 위해 일 만 번을 연습한다' 라고 말한다.
그것이 김연아만의 대답이겠는가 ?
매일 할 때, 기술이 늘어 기예가 되고,
어느덧 그 사람과 떨어질 수 없는 한 몸,
한 영혼이 된다.
이 때, '춤추는 사람은 사라지고 춤만 남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화가는 사라지고 그림만 남고,
글 쓰는 작가는 어느덧 사라지고 글만 남는 경지는
매일의 훈련이 주는 기막힌 선물이다.
그러므로 훈련의 첫째 요소는 반복이다.
반복 또 반복,
오직 반복, 대가가 되는 유일한 실천의 비법이다.
매일 훈련한다는 것은 결정적인 과정이지만
그 훈련이 억지로 강압되어 노예처럼 훈련되는 것은 아니다.
깊어질수록 스스로 즐거움이 된다.
재능과 잘 일치된 훈련은 다른 것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몰입과 엑스터시를 동반하게 되어 있다.
훈련은 땀이기 때문에 노력이 수반되지만
매일 하는 습관이기 때문에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일상이며,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천복을 좇는 숙명의 기쁨이 있다.
그것은 처음 강제된 훈련이었지만
점차 육화되어 기예가 되고
이윽고 행위자는 사라지고
그 행위만 남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때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삶의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아르트르 루빈스타인은 피아니스트다.
피카소는 화가다.
버나드 쇼는 극작가다.
이것보다 더 잘 그들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
그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인 것이다.
우리는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해당 분야에서 적어도 10년은 준비해야 한다는
10년의 법칙이나 1만 시간의 법칙-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적어도 1만 시간은 투입해야한다는 주장-을 기억해야한다.
이것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투자 과정이다.
훈련의 두 번 째 요소는 창조성이다.
반복하되 단순히 반복되지 않는다.
훈련 역시 창의적 진화를 하게 마련이다.
훈련은 그 과정에서 불현듯 무엇을 어떻게 반복해야하는 지를 깨닫게 한다.
가장 뛰어난 춤꾼 중의 하나인 마사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한다.
" 300년 동안 발전해온 발레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시간 낭비다.
나는 발레 자체와 싸운 적이 없다.
그러나 고전 발레의 경우는 뭔가 충분히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특히 강렬한 극적 상황이나 열정을 다루는 점에서 부족하다.
바로 이 부족함 때문에 내가 하는 종류의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 그녀의 훈련 방식을 보면 이해된다.
예를들어 어떤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뒤로 허물어지듯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고전 발레의 경우는 무용수들이 이 극적인 장면을 손이나 팔 혹은 신체적 제스처를 가지고 표현해 왔다.
그러나 마사 그레이엄은 실제로 무용수들이 아무런 안전 장치없이 뒤로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방법을 고안해 내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등의 힘과 골반의 동작,
그리고 바닥의 압력을 모두 의식해야했다.
감정은 손이나 팔의 제스처가 아니라 근육의 수축과 이완 긴장과 경련등을 통해 표현하게 만들었다.
뱀처럼 똬리를 트는 동작을 통해 몸을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신체의 유연성과 힘을 기르게 했다.
그녀는 바람직한 움직임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생생한 이미지를 활용하였다.
예를들면 근육의 긴장은 낭떠러지에 서서 하늘을 보는 것과 같고
이완은 땅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기예나 연기가 아니었다.
신체를 단련해야했고 다양한 경험으로 정신을 풍요롭게 해야했다.
학생들은 고문 같은 훈련을 받았고 점차 근육질의 강인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의 무용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아무 보장도 없이 10년을 훈련 받아야 비로소 군무집단을 벗어나 4인 그룹에 들어 갈 수 있다.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도약을 위해 수천번의 도약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 무용수들이다.
어떤 분야가 되었든 그 분야의 대가가 되려면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 바로 이 경지에 다다르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세월을 견디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통에 기쁘게 다가서려는 마음만이 이 길을 걷게 한다.
반복적인 훈련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별하게 한다.
그러나 창의적인 훈련은 예술가와 비예술가를 구별해 준다.
이것은 전문가와 예술가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다.
바로 이 창의적 훈련 유무에 달려있다.
피카소가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곤했다.
나는 어린이처럼 그리는 법을 익히는데 평생이 걸렸다. " 라는 말처럼
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잠언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반복적 연습을 하면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
전문가 수준이다.
그러나 그것은 피카소가 아니고 라파엘로일 뿐이다.
피카소가 피카소가 되려면 피카소다운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피카소의 창의성은 어른의 기술력을 가진 어린이 같은 감수성에 있다.
그것은 변태하지 않고
어린 것이 그대로 성숙하여 어른이 되는 유형성숙의 한 예일 것이다.
위트있는 답변을 한 버나드 쇼의 일화 역시 동일한 깨달음을 얻게 한다.
그가 밤새 집필한 원고를 아내가 보았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그 원고들은 쓰레기라고 조롱했다.
그때 버나드 쇼의 대답이 일품이다.
''지금은 그렇소. 그러나 일곱 번 고치고 난 다음에는 달라질 것이요"
바로 이것이 창조적 반복의 정신이다.
거듭하면 달라지고 나아지는 것이다.
창조적 실험과정을 끊임없이 거쳐 가면서
이 세상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사람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공헌함으로써 당신이 지금 일하고 있는 분야가 의미있는 변화를 겪게되는가 ? '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만일 과거의 방식과 스승의 가르침만을 반복한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로 그치게 된다.
전문가의 가장 취약한 점은 바로 창조성의 결핍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새로운 실험과 모색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실패와 실수를 회피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실수'란 곧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이며,
더 이상 전문가라고 불리울 수 없는 결정적인 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는 새로운 모색이 수반하기 쉬운 실패와 실수를 지나치게 회피하는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비창의적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창조적 훈련과정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초대한 전문가만이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자신의 예술적 세상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오직 그 분야의 경계와 깊이를 넓혀 놓은 사람들만이
대가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단 한가지의 질문,
즉 '나는 내 분야에서 어떤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 냈는가 ? " 라는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매일 한다.
반복 또 반복한다.
지식에 지식을 더함으로써 늘 새로운 수련방식을 찾아낸다.
그리하여 과거의 전통이 다다를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낸다.
(펑법함에서 위대함으로 가는 12 가지 터닝포인트 이야기는 그동안 약 1년 간 동아 BIz Review 에 연재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고문 입니다)
구본형 칼럼에서 펌함 2107, 3, 2 / 각색: 모디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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