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견훤․왕건의 리더십 비밀
※ 궁 예
1. 역사속의 궁예
궁예는 태봉국을 처음 세운 32세 때만 해도 카리스마를 가진 매우 전략적이고 현명한 리더였고, 훈련을 할 때는 선두에서 시범을 보이며 식사 때나 잠 잘 때도 항상 군사들과 같이 했다. 그는 신상필벌의 엄격한 군율 적용과 사사로운 감정으로 부하를 대하지 않았으나, 종국에는 내면적 정신세계의 자진 몰락으로 의심과 독기로 가득 찬 외로운 독재자로 군림하였다. 부하들 또는 가신들을 의심하고, 이들을 처단하는 관심법을 동원한 것은 그의 최대의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궁예의 수성실패의 또 하나의 원인은 현실성 없는 목표설정이다. 삼한도 통일 못한 상태에서 대동방국의 건설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여 오히려 자기무덤을 파는 결과가 되었다. 현재의 자원과 핵심역량을 고려, 어렵지만 도달할 수 있는 '도전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스트레칭골이 아닌 디스트로잉골의 설정은 그 리더뿐만 아니라 조직도 파멸로 몰고 가는 지름길이 된다.
궁예에게 또 한가지 발견되는 교훈은 민심이반을 초기에 적극 대응하라는 것이다. 즉, 고객의 마음이 떠났다고 판단되었을 때 가능한 최단시간에 성난 고객의 불만을 잠재워야 한다. 고객의 마음을 읽지 못한 궁예는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2. 리더십 행동특성
이러한 궁예의 행동을 바탕으로 볼 수 있는 리더십유형은 다음 두가지와 같다. 첫째, 공격적인 카리스마형 리더십이다. 이것은 변화지향적인 결단력과 과감한 실행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새로운 사업기회가 생겼을 때 놓치지 않고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포착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 기존의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적 리더십이다. 이것은 출신과 신분을 구애받지 않는 혁신적 인재채용에서 그 장점이 도출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특성의 단점으로는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비현실적이고 이데올로기 지향적이 된다는 점이다. 현실을 정확이 인지하지 못하고 하는 목표설정은 조직원의 좌절만을 안길뿐이다. 두번째, 자기 주변 친위세력을 둘 줄 모르고 인정할 줄 모른다는 데 있다. 조직은 한사람의 카리스마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결론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보유한 권력을 나누어 주는 리더십 분산의 원리 실천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3.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이러한 궁예의 공격적인 리더십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① 리더는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을 갖어야 하고, 주어진 기회에 전력투구하여야한다.
② 리더는 조직원을 등용하는 데 있어서, 능력과 인격에 치우침 없는 혁신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③ 조직의 목표는 현재보다는 항상 높다는 전제하에 실현 가능한 Stretching Goal을 수립하라. 이 Stretching Goal이 Destroying Goal이 되지 않도록 항상 목표를 다듬어야 한다.
※ 견 훤
1. 역사속의 견훤
견훤은 무진주(지금의 광주광역시)를 점령하고, 전략적 요충지였던 완산주(지금의 전주)를점령함으로써,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일명 후백제를 세운다. 견훤은 660년에 멸망한 백제의 원수를 갚기위해 신라를 치고 신라의 경주까지 점령하고, 왕건의 군대를 계속 물리쳐 전라, 충청도 그리고 약간의 경상도 서쪽땅까지 먹어 한때 후삼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한다.
하지만 고창(지금의 안동)싸움에서 크게 패한 후 서서히 국력이 기울게 된다. 이때 때마침 왕위를 물려줄 시기가 오고 그 와중에 견뤈은 총명한 넷째아들인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하지만 첫째아들 신검이 금강을 죽이고 자신을 쫒아내자 격분하여 고려로 도망오게 된다. 견훤의 이러한 다혈질적인 성격은 결과적으로 고려군의 선봉으로 후백제를 공격하여 후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아이러니를 불러오게 된다.
견훤은 통솔력도 뛰어나고 리더쉽도 강하며, 매사에 솔선수범하여 주위인물들의 신망을 두껍게 받지만, 과격한성격, 그리고 자기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성정으로 인해 상황파악을못해 전투에 패하기 일수였고, 실패를 인정하지 못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한 견훤의 리더십은 전략적인 실패관리에 실패함으로써 몰락하게 되고, 대권승계라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비운의 막을 내리게 된다.
2. 리더십 행동특성
이러한 견훤의 행동을 바탕으로 볼 수 있는 리더십유형은 실무에 강한 면모가 두드러진 실천적인 리더십이다. 이 유형의 장점은 강력한 실천력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군사작전이나, 실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다각도의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솔선수범적인 리더의 실천력과 저돌성은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한 유형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강력한 신뢰구축의 필요성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통한 탄탄한 조직기반을 만들어나가는 가운데, 조직의 안정을 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유형의 단점으로는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대한 전략적 판단을 실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견훤이 신라를 점령하고 합병하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조직의 대권승계과정이 질서있는 프로그램에 의해 운영되야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후계자 양성은 리더의 자질평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점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병가지상사인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직의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많은 장애물이 생기게 마련이다.
3.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이러한 견훤의 실천적인 리더십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① 신뢰할 수 있는 경영진을 갖춰라.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조직은 위기극복능력이 탁월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②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라.
③ 유능한 후계자를 키워라. 질서있는 프로그램으로 후계자 인계는 이루어져야한다.
④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성공의 밑거름으로 이용하는 지혜를 가져라.
※ 왕 건
1. 역사속의 왕건
태조 왕건의 정책은 농민반란군의 대표자로서 국가를 세우고 왕이 된 견훤이나 궁예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궁예나 견훤은 정치력을 통한 평화적인 방법보다는 무력에 의한 통일을 구상하였다. 궁예가 신라에 대해 대단한 적개심을 가져 신라를 멸도라고 부르며 신라에서 투항해 오는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거나, 후백제 견훤이 신라의 수도를 직접 쳐들어가 왕을 죽이는 등 노략질을 하기도 한 사실이 그러한 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통치 방법이나 통일 정책은 신라인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많은 부담에 시달려오면서 불만을 품고 있던 대다수 농민들에게도 불안감을 주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농민의 지지를 잃은 채 후삼국의 통일은 고사하고 정치적으로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라왕이 고려에 귀부해 온 것이나, 내분에 휘말린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의 태조에게로 탈출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사회의 주도세력인 호족과 대다수 농민들의 지지가 태조에게 쏠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태조 왕건이 ꡐ통일을 한 것ꡑ이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ꡐ통일이 된 것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왕건은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평화적 방법을 강조한 가운데 통일을 이루었으며, 과감한 개방정책을 통해 새로운 사회에 맞는 제도를 만들고 인물을 등용하였다. 또한 명분에만 집착하지 않고 실리도 충분히 챙기는 가운데 실질적인 통합을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2. 리더십 행동특성
왕건은 한 마디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감싸 안는 포용적인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세 영웅 가운데 카리스마가 가장 떨어지는 인물이었지만, 포용력으로 이를 커버한다.
포용력이야 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기업 내 경영자에게도 절실히 요구되는 역량인 것이다. 왕건은 각 지방 호족세력들과 29번 혼인으로 혈맹관계로써 세를 구축했다. 기업경영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외 선진사들과 맞서 싸우려면 관계사간 연합작전이 필요한 것이다.
또 한가지의 중요한 장점은 '실패를 만회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궁예 축출 후 견훤과의 전투에서 연전연패를 했지만 그 때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세력을 재건했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실패는 병가상사'이다. 문제는 어떻게 실패를 대비해 탈출 전략(Exit Strategy)을 미리 준비해 두는가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형의 단점은 지나친 신중함으로 왕권을 견고하게 다지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나친 혈연관계의 확장으로 인한 후세의 왕권분쟁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왕이라고 하기에는 적극적인 리더십이 너무나 결여되어 있었다.
3.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① 리더로서 왕건은 위대한 2인자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을 통해 성공을 이루어 내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혼자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협력자들과의 공조를 통해 권한을 이양하는 수평적 관계로 전이되었다. 리더 혼자서 경영하기에는 경영환경의 변화가 너무나 빠르게 전개된다. 반면 조직 구성원간의 협력관계는 더욱 긴밀히 연결된다. 따라서 리더는 조직을 위해 배후에서 일하는 2인자들의 노력을 기억하고 진정한 사업 파트너로서 예우해야 하는데 왕건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② 리더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리더로 만들 수 있는 자신감과 끈질긴 창의성 개발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버린다.
③ 리더는 자기관리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성공한 리더의 대다수는 자신의 유형을 알고 그에 알맞은 행동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자신의 강점, 성과를 내는 방법, 가치관을 알고 있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왕건은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았고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상대를 이해하고 굳건한 신뢰를 쌓았던 커뮤니케이션의 귀재였다.
④ 리더는 시대에 부응하는 사업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왕건은 궁예의 뒤를 이어 일국의 제왕이 되었지만 통일 사업의 완성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백발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장을 누비고 다녔었다. 경영자에게 새로운 사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기꺼이 시대에 부응하는 사업을 일구어 간다는 것은 최고를 열망하는 불굴의 정신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세는 조직을 정체시키고, 시장에서의 고립을 불러올 뿐이다.
방랑하는 마음 카페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