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역사책을 읽으며 위대한 프랑스를 꿈꾸다 샤를 드골

modest-i 2014. 6. 2. 00:20

21. 샤를 앙드레 마리 조 제프 드골
(Charles Andr Marie Joseph De Gaulle, 1890-1970)

 

 샤를 드골은 키가 작은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훗날 상징적인 의미의 거인이 되었다. 어느 날 밤 시골 마을의 평범한 노인으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는 언제나 자신이 쓴 위대한 서사시의 작가이자 주인공이었다.

 

 드골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로마 가톨릭계 중상류층 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드골 가문은 역대로 많은 역사가와 작가들을 배출한 가문이다.

 

아버지는 평소 드골에게 철학과 문학을 가르치며 폭넓은 독서를 강요했다. 그래서 드골은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역사」책을 들고 들판으로 나가 위대한 프랑스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책 속에서 ‘영광스런’ 프랑스의 역사를 대할 때마다 그의 자존심은 커졌고, ‘굴욕적인’ 프랑스의 역사를 대할 때는 분노심이 솟구쳐 올랐다고 전하고 있다.

 

1916년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드골은 전투 중 대퇴부에 관통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있었고 이후 32개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다.

 

빠르게 건강은 회복하였으나 포로상태에서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었다. 수용소의 소름 끼치는 생활로 일반 장교들은 대화 외에 별다른 일거리도 없이 막사 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샤를 드골은 이런 상황에서도 다시 한 번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

 

는 자신의 교양을 쌓기 위해 노력하였고, 독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독서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리고 독서에서 얻은 자신의 생각을 수첩에 기록하였다.

 

이처럼 견디기 어려운 포로 생활 속에서도 독서와 명상으로 보낸 2년 반의 세월은 가장 훌륭한 교육적인 경험이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훗날 ‘프랑스의 확실한 개념’을 역사에 남길 기회로 활용했던 것이다.


 샤를 드골은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책을 통해 훌륭한 작가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자신도 반드시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자랐다.

 

14세 때 그는 가족잔치를 위해 에드몽 로스탕의 작품을 가지고 모작 한 편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 후 청소년기 동안 시와 이국적인 소설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많은 습작을 남겼다.

 

그의 재능과 문학에 대한 취향은 유년 시절부터 훌륭한 작가들을 직접 만났고, 그 작가들이 쓴 책을 통독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얻게 되었다. 또한, 고전 작품들에 대해서도 정통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프랑스 역사를 읽으면서 드골이 꿈꾸었던 독서 상상력은, 훗날 ‘위대한 프랑스, 강력한 프랑스’를 외치며, 조국에 대한 헌신이라는 절대적인 신념으로 나타났다.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라 할 수 없다”며 국민에게 자부심을 선물했던 드골은 중요한 자리가 있으면 미리 써 놓은 원고를 밤새워 외우고 연설에 나섰다.

 

독서로 쌓은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도 품위 있는 언변의 기초가 되었다. 국가지도자의 말이 갖는 무게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항상 피나는 노력을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 대통령 드골 장군의 탄생은 순수한 책 때문이었다. 그는 처음에 가톨릭 성직자가 되려고 했으나, 역사책을 읽으며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1962년 10월 대통령 직선을 국민투표에 부쳐 승리를 거두고 드골체제를 완성했다. 1965년 대통령에 재선되었고, 1969년 사임하였다. 프랑스를 방문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발을 딛게 되는 곳이 샤를 드골 공항이다.

 

프랑스의 문은 샤를 드골이라는 이름과 함께 열리도록 장치되어 있는 셈이다. 프랑스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드골은 프랑스의 상징이며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