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력을 드러내면 미움받는다
쇼펜하우어는 지성이나 분별력 보임으로써 간접적으로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비난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굴리스탄》을 인용했다.
“이해력이 풍부한 사람이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불쾌함에 비해서,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이해력이 풍부한 사람에 대해 느끼는 혐오감이 백 배다.”
쇼펜하우어가 존경했던 스페인의 현자 그라시안Baltasar Gracian은 이렇게 말했다.
생각은 소수와 함께, 말은 다수처럼 하라. 대세에 거슬러 움직이려 하면 오류를 저지르고 위험에 빠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에서 벗어나면 이를 모욕으로 간주한다.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을 쉽게 반박하지 않아 자신이 반박 당함도 피한다.
……어리석은 사람들 앞에서 현명함을 보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의 호의를 받는 유일한 수단은 가장 어리석은 동물의 탈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지혜The Art of Worldly Wisdom》
노자는 자신의 영리함을 숨기고 무리에 섞이라고 했다(화광동진和光同塵, 〈56장〉). 너무 밝은 빛은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빛이 나더라도 사람들을 눈부시게 해서는 안 된다(광이불요光而不耀, 〈58장〉). 한비는 이 부분을 아래와 같이 해석했다.
도를 터득한 선비는 비록 마음이 미덥고 행동은 유순할지라도
비뚤어지고 바르지 못한 자를 비방하지 않으며,
비록 절개를 위해 죽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면서도 약한 자를 모욕하거나 탐욕스러운 자를 비웃지 않는다. ……옳은 행동으로 사람들의 원수가 되는 것은 몸을 온전히 하고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절도에 맞게 행동하면서 세상과 함께 한다.
《한비자·해로解老》
많이 안다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자기를 높이려 하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 당장은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사람들의 시기질투가 나의 기회를 앗아간다. 어떤 사람은 위협이라고 인식하고 재기 불능으로 만들려 할지도 모른다. 노자는 공자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총명하고 깊이 살피는 사람은 죽음의 위험이 따른다.
이는 남을 잘 비판하기 때문이다. 지식이 많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몸이 위태롭다.
이는 남의 결점을 잘 지적해내기 때문이다.
《사기·공자세가》
이 일화가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공자가 노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공자가 제 한 몸 희생하여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공자가 군주의 진노를 무릅쓰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오해다. 아래는 상황에 따라 때로는 자신의 뜻을 굽히라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더불어 말을 해야 할 때 더불어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
《논어·위령공》
표정도 읽지 않고 말하는 자는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논어·계씨》
살다보면 정말로 무능한데다 인간성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아주 나쁜 경우 그런 사람이 상사로 모셔야 한다. 그러면 과거 현자들의 가르침을 떠올려 결코 그들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쇼펜하우어는 누구나 자기가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상대를 찾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들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더라도 맞장구를 쳐 줘야 한다. 당장 괴롭고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우월감을 느끼게 해 주어 나를 호의적으로 여기게 하는 편이 낫다.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호의를 얻을 때 쉬워지고 완전해진다.
……호의는 그대가 추한 잘못을 범하더라도 그것을 보려하지 않는다.
《세상을 보는 지혜》
이는 후흑학이 말하는 ‘두꺼운 얼굴과 검은 속’의 처세이기도 하며, 성공하는 기버의 ‘이기적 이타주의’ 행동이기도 하다.
동서 현자들의 가르침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똑똑함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차라리 대세를 따르거나 어리석은척 함으로써 호감을 얻어라." 그래서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지만(대지약우大智若愚) 똑똑함을 드러내기는 쉬워도 멍청한척 하기는 어렵다(난득호도难得糊涂). 이 가르침을 좇아 성공한 사람, 출중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이와 반대로 행동해 몰락한 사람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무능하고 부도덕한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래서 비판은 물론 조언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한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몰락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이기적 이타주의”나 “후흑”을 모르는, 똑똑하지만 지혜롭지는 않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 줄 것이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남을 공경한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귀하게 여겨 공경하고,
못난 사람에게는 두려워하며 공경한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친하게 여겨 공경하고,
못난 사람이면 멀리하며 공경한다.
《순자·신도臣道》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라면 잠시 불쾌함 따위는 참을 수 있지만, 자주 만나야만 하는 사이라면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젊었을 때 그런 사람과 자주 싸웠다. 싸우고 나면 그가 자신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알고 변화하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강화시켰다.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거나, 앙심을 품고 나를 방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억울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다수를 대표해 악당과 싸워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못난 사람과 싸우는 못난 사람으로 보았다. 그래서 한바탕 싸우고 나면 후련하기보다 후회가 밀려왔다. 매번 후회하면서도 나는 굳이 싸워서 상대방을 교정하려 했다. 손자는 싸움은 생사와 존망이 갈리는 길이니 깊이 생각하라(〈계計〉)고 했다. 노자도 그랬다. 싸움이란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으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싸우지 않는다고(〈제31장〉). 그 때는 이해해지 못했다.
여러 번 곤란을 겪고 나도 변했다. 그의 자긍심을 채워주어 더욱 교만하게 만들고, 결국 실수하게 만드는 후흑술을 구사할 줄 알게 되었다. 얼마안가 그들은 다른 사람과 분쟁을 일으키거나 자신의 교만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누군가가 나를 부당하게 대해도 굳이 싸워서 존중을 얻거나 교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이로울 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순자의 말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남을 공경한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귀하게 여겨 공경하고,
못난 사람에게는 두려워하며 공경한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친하게 여겨 공경하고,
못난 사람이면 멀리하며 공경한다.
꼭 그만한 능력과 인품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공경하는 것은 아니다. 악하고 무능한 사람일지라도 공경하는 편이 나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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