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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진스키의 말 "그럼 저 사람도 도약할 수 있어요?"|

modest-i 2017. 1. 29. 19:00

 - 니진스키의 사진 앞에서

 

 글 : 최혜주(경영지원팀)

 

사형집행인의 칼이 육체를 꿰뚫는 순간 황금노예의 도약과 열정은 믿을 수 없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가 무시무시한 칼날에 굴복한 것인지, 혹은 그 믿을 수 없는 세 차례의 공중제비에서 오는 쾌감이 몰고 온 견딜 수 없는 폭력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Francis de Miomandre

 

니진스키는 죽음의 순간에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부여함으로써 보는 우리들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것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 Charles Ricketts

 

세 번째 문이 열렸다. 암흑 속으로부터 한 아름다운 남자 노예가 타오르는 황금빛 불꽃처럼 뛰쳐나왔다. 머리에는 황금빛 실크 터번을 두르고 얼굴에는 파란 물감을 칠하고 귀에는 묵직한 금귀걸이를 단 노예였다. 보석과 구슬이 엮인 탑과 허리춤이 거품처럼 부풀어오른 아랍 팬츠를 입고 보석으로 장식된 끝이 휜 비단 신을 신은 남자였다. 그는 황금노예였고 사랑받는 노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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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건 영영 사라져버릴 무엇, 결코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결국은 죽어야만 하는 운명에 놓여 있는 소중한 무언가를 포착하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나보코프가 험버트의 입을 빌려 퇴색하고 파멸해가는 롤리타를 향해 부르짖었던 사랑의 고백, 귓가를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향한 격정적인 감동. 만일 예술의 본질이 덧없는 생명과 불변할 듯한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우리 내부에 각인시키려는 노력에 있다면 그런 성격이 가장 강렬하게 발현된 것은 바로 사진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1910년 초연된 포킨의 발레 ‘세헤라자데’에서 황금노예를 춤추는 니진스키의 사진이다. 빛바랜 한 장의 사진, 엘리자로프스카야 지하철역 근처의 허름한 책시장에서 간신히 구해왔던 오래된 판본의 니진스키 일기에서 조심스럽게 오려낸 사진, 10년 전, 싸늘하고 황량한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내내 책상 앞 벽에 붙어 있던 사진이다.

 

종종 나는 성에가 하얗게 얼어붙은 유리창에 이마를 갖다댄 채 저 사진을 바라보곤 했다. 그 발레는 나를 취하게 했다. 니진스키란 이름은 유독하게 나를 홀렸다. 저 사진은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혀는 침묵한 채, 오로지 육체로, 그리고 그 안에서 금방이라도 해방되어 날아갈 것만 같은 혼으로.

 

안무가였던 포킨은 니진스키를 위해 만들어낸 황금노예란 인물을 반 인간 반 짐승이라고 말했다. 하렘의 여왕 조바이다와 사랑의 춤을 추면서 황금노예는 유연하고 민첩한 표범처럼 뛰어오르고 남자와 여자 그 어느 쪽도 아닌 동물적인 양성성을 보여준다. 그는 뛰어오르고 눕고 뒹굴고 애무하고 또다시 뛰어오른다. 관객들은 니진스키의 황금노예에게서 격렬한 에로티시즘만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니진스키의 춤은 마침내 죽어야만 하는 육체, 술탄에게 발각되어 살해당해야만 하는 운명의 덧없는 육체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생명력, 춤을 통해 혼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갈망을 구현하고 있었다.

 

니진스키의 황금노예 삽화, 좌로부터 George Barbier, Leon Bakst, Arthur Grunenberg

▲ 니진스키의 황금노예 삽화. 좌로부터 George Barbier, Leon Bakst, Arthur Grunenberg

 

오리지널 안무에서 니진스키는 믿을 수 없는 도약과 일련의 공중제비, 그리고 머리로 거꾸로 선 채 목 근육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는 극단적인 춤사위로 황금노예의 죽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빛바랜 저 사진을 올려다보며 나는 다가오는 죽음을, 분노에 떠는 술탄과 칼을 내리치는 망나니를 상상한다. 머리와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곤두박질치다가 빙그르르 돌며 허공으로 솟구치는 황금노예를, 녹아 흐르는 황금빛 용암처럼 홀을 가로지르며 허공을 나는 육체를. 바닥을 증오하듯이 뛰고 또 뛰어오르는 육체. 아무 말도 없이, 아무 비명도 없이 땅바닥으로 추락해 머리를 바닥에 대고 두 다리로 허공을 마구 걷어차며 죽음의 고통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육체. 명확한 파멸 속에서 느껴지는 자유의 아름다움. 혹은, 자유와 해방에 대한 헛된 갈망.

 

니진스키의 눈은 반쯤 감겨져 있고 입술은 벌어져 있다. 저 사진에서 뿜어져나오는 것은 무엇보다도 환희의 감정이다. 그의 육체가 혼을 끌어올리고 인식의 지평 너머로 내몬다. 헛된 갈망이라고 해도 좋다. 저 순간 니진스키는 자유롭다. 어쩌면 내가 황금노예에게 죽음의 운명이 내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죽음이라는 운명만큼 아름다움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레의 배역을 떠나 니진스키란 한 인간의 경우에는 광기와 파멸이라는 슬픈 종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예정된 파멸이 저 사진 속에 포착된 환희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렬하게 한다.

 

황금노예를 춤추는 니진스키, 파리의 니진스키 묘, 황금노예의 도약, 파루흐 루지마토프

▲ 황금노예를 춤추는 니진스키

▲ 파리의 니진스키 묘

▲ 황금노예의 도약, 파루흐 루지마토프

10년 후, 나는 다시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서 시내의 큰 서점에 갔다. 그리고 발레 뤼스의 프리마이자 니진스키의 파트너였던 타마라 카르사비나의 회상록을 발견했다.

 

기숙사 방은 10년 전이나 다름없이 추웠다. 창틈을 티슈로 틀어막고 옷을 잔뜩 껴입은 채 나는 추위로 곱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작고 흐릿한 흑백 사진, 무대 의상 차림의 발레리나와 나이든 남자,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표정의 한 남자가 웃고 있는 사진. 어딘지 불편함을 자아내고 가슴을 찌르는 사진이었다.

어느 극장 백스테이지에서 해후한 카르사비나와 니진스키, 그리고 디아길레프가 함께 한 사진

 

이것은 1928년, 어느 극장 백스테이지에서 해후한 카르사비나와 니진스키, 그리고 디아길레프가 함께 한 사진이다. 발레 뤼스의 단장이자 니진스키의 옛 연인이었던 디아길레프는 이미 완전히 정신이상이 된 니진스키를 ‘페트루슈카’의 무대로 초대했다.

오래 전 자신이 추었던 그 무대를 보고 혹시라도 정신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디아길레프의 헛된 희망 때문이었다. 아래는 카르사비나의 서술이다.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의 팔을 낀 채 억지로 명랑한 음성을 짜내며 무대로 그를 데리고 왔다. 무용수들이 바다가 갈라지듯 길을 내주었다. 나는 공허한 눈동자와 불안한 걸음걸이를 보았고 니진스키에게 입맞추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수줍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순간 내겐 마치 그가 나를 알아본 것처럼 느껴졌다. 간신히 그의 마음 속에 떠오른 기억을 방해할까 봐 감히 한 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침묵했다. 그때 나는 오랜 벗을 부르듯 그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바차!”

니진스키는 고개를 떨구며 천천히 돌아섰다. 사람들이 그를 사진사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의 팔을 끼고 있었고 정면을 향해 서 달라고 부탁을 받은 탓에 니진스키의 움직임을 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사진사들 사이에서 희미한 소음이 일었다.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니진스키가 몸을 숙인 채 뭔가를 찾기라도 하듯 내 얼굴을 자세히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는 아기처럼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그토록 고통스럽고 수줍고 무방비 상태의 그 모습이 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니진스키는 다시 관람석으로 돌아갔고 나는 무대에 올랐다. 나중에 디아길레프가 와서 그날 저녁 니진스키가 한 말을 전해주었다.

“저게 누구예요?”

무대에 세르주 리파가 등장했을 때 니진스키가 물었다. 수석 무용수라는 답변을 듣자 니진스키는 짧은 침묵 끝에 물었다.

“그럼 저 사람도 도약할 수 있어요?”

.. Tamara Karsavina, Theatre Street .

.

‘그럼 저 사람도 도약할 수 있어요?’

나는 니진스키가 그렇게 물었을 때 희미하게 웃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것은 사진에 나타난 공허한 미소가 아니라 오래 전 중력을 거부하며 뛰어오르던 젊고 생생한 육체와 한계를 넘어 상승하는 자유로운 혼이 발산하던 환희에 찬 미소라고. 지극히 짧은 그 순간 니진스키는 나를 매혹시켰던 서두의 사진 속으로 돌아갔다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간 황금노예와 한몸이 되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저 1910년의 니진스키, 살아 숨쉬는 환희를 담은 저 사진은 1928년의 슬픈 사진을 향해 과거로부터 뛰어나온 사랑의 메시지라고. 종종 예술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먼저 던져진 대답이자 부드러운 손짓, 사랑의 속삭임이니까. 문장끝




김은희 우리춤 움직임원리 연구회 , 밀양검무보존회 카페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