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보면 '운'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운칠기삼이 이런 종류죠. 살다보면 내 뜻과 상관없이 다가오는 불행과 운 때문에 휘청거리기도 벌떡 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정말 '운'일까요? 그렇다면 왜이리 오래오래 버둥거리며 살아야 할까요?
여기 어떤 답을 주는 이야기가 눈에 뜨입니다. 많은 분들이 남극탐험 하면 떠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문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출발한 로버트 스콧의 실패와 비교하며 배움을 얻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이 둘은 1911년 10월 비슷한 날짜에 여름 기온이 영하 20도에 육박하고 강풍이 몰아치는 남극점에 역사상 최초로 '도전'하게 됩니다. 두 남자는 나이도 비슷했고 (아문센 39세, 스콧 43세. 오히려 세상 경험은 스콧이 좀 더 많았겠죠) 초반 두 달 동안 날씨도 똑같이 겪었습니다. 2,250킬로미터의 거리를 왕복해야 하는 조건도 같았고요. 그러나 아문센은 성공했고, 스콧은 "날씨 운이 끔찍하게도 안 좋다." "우리 팀에게 닥친 불운들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라며 원망의 일기를 쓰고 죽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이 각자의 결과를 맞이하기 전에 준비했던 패턴까지 똑같았을까요?
아문센은 난파를 당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돌고래를 잡아먹어도 되는지 여행 전에 날 것으로 시식하는 경험을 가지고 식량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심지어 에스키모인들의 삶을 배우려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개로 썰매를 끄는 방법도 이때 배운 겁니다. 게다가 개들은 고기를 먹을 수 있기에, 식량이 떨어지면 가장 체력이 약한 개를 죽여 개들에게 먹일 계획도 가졌습니다. 또 그들의 헐렁한 의복, 보호 장비도 다 사용해 보았습니다. 스키 실력도 쌓았습니다. 고도 측정 장비인 위도계도 추위와 충격으로 파손될 경우를 대비하여 4개나 챙겼습니다. 식량 저장소를 설치할 때도 주요 저장소에 깃발 꽂는 건 당연하고 총 20개의 검은색 깃발을 (흰 눈 속에서도 잘 알아볼 수 있게) 저장소 양 쪽으로 정확히 1마일(1.6km)마다 설치합니다. 눈 폭풍을 만나 진로를 벗어났을 때도 목표를 찾을 수 있게 시야를 폭 10km이상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장소에도 대원당 3톤의 식량과 물품을 저장해 한 군데 정도는 지나치고도 100마일을 더 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스콧은 스키를 훈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썰매개를 시험해 보지도 않고 조랑말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조랑말은 개와 달리 살가죽 표면으로 땀을 분비하므로 묶어두면 몸 위로 얼음이 덮혀버립니다. 눈위에 발이 빠지면 잘 걷지 못하고, 고기도 먹지 못합니다. 게다가 검증도 되지 않은 모터 썰매를 선택하는 도박을 해 결국 엔진이 며칠 지나지도 않아 고장 납니다. 조랑말도 일찍 죽어버리고 모든 짐은 대원들이 짊어지며 엄청난 체력소모를 하게 됩니다. 위도계는 단 한 개만 챙겼는데, 그마저도 깨져버려서 스콧은 엄청나게 화를 냅니다. 식량저장소 깃발은 저장소 한 군데만 깃발을 꽂아두고 가는 길에는 표시를 남기지 않아, 진로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경우 매우 위험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저장소에는 17명의 대원을 위해 1톤만 저장해 두었을 뿐이었습니다. 한 저장소만 지나치더라도 식량보급이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1911년 12월 15일. 바람이 약하게 부는 영하 23도의 날씨에 아문센은 남극점에 도달합니다. 스콧이 580km나 떨어져 썰매를 직접 끌고 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말이죠. 한 달도 더 지난 1912년 1월 17일. 스콧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남극점에 도달하며 아문센이 이룬 업적을 보고 끔찍한 하루의 기분과 실망감을 일기에 퍼붓습니다. 이미 아문센은 760km 떨어진 남위 82도의 식량저장소에 도착한 이후였습니다. 여정도 쉬운 코스로 8일만 남겨 놓은 상태였습니다.
1912년 1월 25일 정확히 아문센은 계획한 날짜에 건강한 상태로 본부의 베이스 캠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두 달여 지난 3월 중순경. 스콧의 원정대는 식량부족에 시달리며 눈 속에 꼼짝없이 갇혀 식량저장소를 불과 16킬로미터 앞둔 곳에서 천천히 사체로 변해버립니다.
상황이 달랐을까요? 행동이 달랐던 걸까요? [위대한 기업의 선택]인 저자 짐 콜린스는 뛰어난 성과를 내는 리더들을 분석해 보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광적인 규율 : (성과를 내는 뛰어난) 리더들은 행동(가치,목적,성과 기준, 방법 등)에 극히 일관성을 보인다. 추구하는 바에 초점을 맞춰 가차 없고 편집광적이며 고집스럽게 행동한다.
- 실증적 창의성 :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리더들은 일반적 상식에 의존하거나 권위있는 사람에게 기대거나 지시해 줄 동료를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증적인 증거를 본다. 관찰과 실험 등 눈에 보이는 증거를 가지고 직접 실행해 보는 편을 택한다. 그들은 실증적 토대 위에서 과감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한다.
- 생산적인 피해망상 : 리더들은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에도 극도의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오는 위협과 도전에 민감하다. 그들은 상황이 불리하게 바뀌는 등 최악의 순간을 항상 가정해 본다. 그래서 자신의 불안과 우려를 행동으로 옮기고 준비하여 충격 완화제를 만들고 안전지대를 충분히 유지한다.
저는 제 인생에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철저한 리더는 아닙니다. 아문센을 보면서 '저렇게 하니까 최초의 남극탐험가'의 명성을 가진 거구나. 하면서 인정하는 수준인 거죠. 제 성향은 리스크를 높여서 모험하는 편은 아니지만 (저 이 말 참 좋아합니다. 충격완화제, 안전지대) 아문센 처럼 준비하는 기간이 긴 편은 아닙니다. 일단 질러놓고 수습해 가면서 규율을 만들어 나가지요. (어쩌면 남극탐험처럼 목숨을 내놓는 일들이 아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생사가 달린 일이라면 저 같은 스타일이라면 최고의 리더로서 그리 적합한 타입은 아닐겁니다.) 대신 좋아하는 것에 꾸준함은 있지요. 보통 5년 하는 건 좀 짧고, 자세 나오려면 10년, 그리고 제대로 리듬 타며 즐길 줄 알려면 20년에서 30년은 꾸준히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그것만 파는 편입니다.
운동으로는 농구만 한 20년 했으니 체력은 안 되도 즐길 줄은 압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10년 동안 깔짝거렸으니 가닥은 잡고요. 독서와 글쓰기도 이제 10년 정도 매일 한 권씩 읽고 쓰며 왔으니 이제 조금 자세 잡혀가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 사이에 개인적으로도 참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어쨌든 제 속도로 한 걸음 한 걸음 가고 있습니다. (또 그만큼 못 해본것들에 대한 끔찍할 정도의 낮은 수준을 보이는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불황과 호황이 동시에 옵니다. 그러나 규율을 가지고 최악의 순간을 가정하며 만약의 순간을 대비해 철저히 준비한 이들에게는 불황도, 불운도 어쩌면 그다지 이겨내지 못할 악몽은 아닐겁니다. 살다보면 칼바람 부는 날도 있고, 내가 준비한 인생 한 방이 무너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돌이켜 보세요. 날씨 따뜻할 때, 뭔가 인생 풀리듯이 살았던 그 시절 준비해 놓았으면 좋을 나의 [비상백업 충격 완화제]는 무엇인지 말이죠.
p.s) 짐 콜린스의 책은 호불호가 있지만, 제 결론은 언제나 하나! (최소한 여태까지 나온 책들까지는) 분명히 책 값. 그 이상은 기업인들에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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