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매혹적인, 앤디 워홀 인생은예술
사람들이 하찮다고 버리는 물건을 활용해 돈을 번다면 꿈같은 이야기일 법 하다. 하지만 꿈같은 현실을 만들어낸 한 예술가가 있다. 그는 남들이 버리기에 바쁜 수프 깡통, 코카콜라 병을 그려 미술관에 전시했다. 고상하다는 예술가들이 거들 떠 보지 않던 마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할리우드 스타를 소재로 그림을 그려 떼돈을 벌었다.
“예술은 비즈니스다. 나는 돈 되는 예술을 하겠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돈을 버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선언하고
나는 차라리 기계가 되어 돈을 벌고 싶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는 대개의 예술가들이 돈과는 담을 쌓았다고 하면서도 뒤로는 막대한 돈을 밝히는 행태와는 차별화되는 점이었다.
파격적인 그의 발언과 예술 행적은 엄청난 지지자와 안티세력을 동시에 낳았다.
단언컨대 여지껏 그처럼 극과 극의 평을 받으며
평생을 세인의 주목 속에 살다 간 화가는 없었다.
바로 오늘날 ‘팝아트의 거장’이라 불리는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에 관한 이야기다.
영감이 아닌 철저한‘전략’을 바탕으로 이끌어 낸 예술
앤디 워홀은 본래 체코 출신 노동자의 아들인 이민 2세로 가난하고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청년 시절 단돈 200달러를 들고 뉴욕으로 향했는데 당시는 세계 예술의 중심지가 유럽에서 뉴욕으로 변화하던 시절로, 뉴욕에서의 성공은 곧 세계적인 명성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 뉴욕에서 상업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1960년 순수 미술가로 전향한다.
다른 예술가들이 아름답고 고상한 것에서 예술의 주제를 찾으려 할 때, 워홀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를 찾고 싶어 했다. 처음에 그는 만화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려 했지만 그것은 이미 간발의 차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라는 다른 아티스트가 먼저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아이디어를 과감히 포기하고 더욱 신선한 다른 소재를 찾기에 골몰했다. 그러다가 당시 미국 사회에 봇물처럼 쏟아진 매스미디어 물결과 대중문화 조성에서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발견했는데, 코카콜라, 캠벨 수프 등 슈퍼마켓에서 파는 흔해 빠진 기성품을 그리는 것이 바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첫 작업이었다. 이것은 매우 큰 주목을 이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 한 번 생각해 보라. 신라면 봉지 등의 그림이 미술관 벽에 주루루룩- 걸려 있는 풍경을. 하지만 바둑판처럼 그저 무미건조하게 늘어놓은 수프 통조림과 코카콜라 병 그림에 대중은 열광했다. 이러한 반응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1960년대는 본격적인 매스미디어의 시대로 TV나 라디오 방송이 넘쳐나고, 수많은 신문들이 뉴욕을 휩쓸던 때다. 매스미디어는 당시 미국사회 최대의 트렌드였다.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했으며 이로 인해 대중문화가 급격히 발달하고 있었다. 상품 광고가 쏟아지고, 전통과 기존질서의 자리를 소비문화가 대체했다. 미국사회는 그야말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그는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일부 계층들이 향유하는 것으로 생각됐던 예술의 영역을, 대량소비의 중점에 있던 대중적(popular) 소재들을 가져오는 것으로써 예술의 개념 자체에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대중의 니즈와 심리를 파악하여 정곡을 잡아내는, 마치 사업가와도 같은 탁월한 분석이 그의 성공 밑바탕에 있던 것이다.
▲ 슈퍼마켓에서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캠벨 수프 통조림.
앤디워홀의 그림은 대량생산과 소비의 시대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사업을 잘 한다는 것은 매혹적인 예술이다.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
앤디 워홀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돈을 벌기 원했고, 때문에 많은 작품 생산을 필요로 했다. 대량생산을 위해 그는 획기적인 제작 방법을 도입했는데, 이제는 그만의 전매특허처럼 되어버린 실크스크린 기법이다. 이것은 일종의 판화 기법으로, 무늬별로 나눠진 판형에 따라 물감을 부어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한 번 제작된 틀은 재사용이 가능했기에 작품을 대량 생산하기에 알맞았다. 그의 작품 중 색깔만을 다르게 하는 시리즈 작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복제된 듯 나열된 똑같은 이미지들 앞에서 관람객들은 이전의 예술 작품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충격을 느꼈다.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에서나 사용하는 실크스크린을 예술 작품에 사용한다는 것은 당시로썬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며, 이는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워홀은 예술품 대량생산을 위한 시스템 또한 창출해냈다. 우선 작업을 위한 넓은 공간을 확보한 후 그곳을‘아뜰리에’라 부르지 않고‘Factory’라 이름 붙였다. 그는 여러 명의 조수를 고용했고, 조수들은 그의 지시를 따라 실크스크린 틀을 제작하고 물감을 부었으며, 상자를 조립했다. 심지어는 작품에 들어가는 서명까지 조수를 시키기도 했다. 이는 예술의 가치 중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어오던 오리지날리티를 단번에 전복시키는 행위였다. 거장의 손을 직접 거친 작품들만이 대작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오랜 고정관념을 깨고, 그는 그저 손끝과 말 한마디로도 예술을 만들어냈다. 현재 미술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그의 그림 중 상당수가 팩토리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며, 특히 150억 상당의 금액으로 피카소의 작품 가격과도 맞먹는다는 <마오>와 <마릴린 먼로> 역시 팩토리에서 탄생한 것이다.
▲ 할리우드 스타였던 마릴린 먼로가 자살한 다음 해 앤디워홀은 그녀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앤디 워홀의 이름을 모르는 이도 반갑게 알아보는 유명한 그림이다.
그는 스스로 브랜드가 되길 원했다. 아티스트로써 뉴욕에 첫발을 내딛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워홀라’라는 노동 계층의 이름을 감추고‘앤디 워홀’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1949년에 함께 뉴욕에 온 동료 펄스타인이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것과 달리, 워홀은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근방의 상업미술 책임자들을 닥치는대로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했다. 말수가 적고 수줍어하는 성격이었지만 워홀은 성공하기 위해 민첩하게 행동했고, 책임자들에게 드로잉한 것을 열심히 보여주며 재능을 과시했다. 디자이너에서 순수 미술가로 전향했을 때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곳으로 크고 유명한 갤러리들을 찾아 뛰어다녔다. 영향력 있는 갤러리 책임자들을 만나고, 어떤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기 위해 다른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그림을 구경했다. 그는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 예술가의 실력 뿐 아니라 네트워크에서 나온다고 믿었고 인맥의 중요성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또한 대중이‘예술가’에 대해 어떠한 이미지를 원하는지 잘 알고, 대중의 환상을 능숙히 이용할 줄 알았다. 그의 겉모습은 그의 작품들만큼이나 기이했는데, 워홀은 천 여 개에 가까운 신기한 모양의 가발을 가지고 있었으며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언제나‘예술가’다운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그가 지날 때면, 할리우드 스타처럼 어디를 가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열광하며 악수를 청해왔다.
세계가 앤디 워홀에 주목하는 이유
앤디 워홀은 현대 사회의 반영을 통해 미래 가치를 창조한 혁신가적인 작가로 기록된다. 그는 예술적비주류로 외면 받던 대중문화 요소를 활용해 팝아트를 모던 아트의 주류로 등극시켰고, 이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예술가 반열에 올랐다. 사후에 그는 기존의 문화 주류에서 벗어나려는 후대 미술가들에게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 남게 된다. 그가 죽은 후 남긴 재산이 1조 여원에 달한다고 하니 생전에 그가 얼마나 많은 인기를 누렸는지 실감해볼 수 있다. 또한, 미국 시카고 대학의 조사 결과‘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앤디 워홀은 잭슨 폴록과 함께 미국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혔다.
그러나 돈과 명성, 대중적 인기만이 앤디 워홀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그는 고상한 것만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며, 대중적인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자칫 가벼워 보이지만 사회가 처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정확히 읽어낸 작가가 앤디 워홀이다. 그는 시대와 정면으로 대면하고, 치열하게 고민한‘통찰적 예술가’였다. 그리고 예술이란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앤디 워홀은 사회와 대중을 아우르며 예술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제시하고,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예술가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비단 예술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이념이나 규범도 당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 혁신으로 나아가는 기본 요건일 것이기 때문이다.
a bittersweet life 블로그에서 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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