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이 전월 대비 995억달러(약 119조4000억원) 줄어든 3조2300억달러(약 3888조원)라고 지난 7일 발표했다.
중국에서 지난 한 달 감소한 외환보유액 규모는 한국의 1월말 기준 외환보유액(3672억달러)의 27%를 웃돈다.
이를 두고 주요 외신들은 자본 유출에 따른 경제위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중국 외환보유액 감소가 경제위기 논쟁 또 촉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2012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급감했다”며
“중국이 대규모 자본유출을 촉발하지 않고도 달러를 태워서 위안화 절하를 얼마나 더 방어할 수 있는 지 의문을 갖게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도 “1월 외환보유액 감소폭이 시장 예상치(1200억달러)보다 작았지만 자본유출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반면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은 “외환보유액의 유출입은 정상적인 시장 현상이고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여전히 세계 1위"라며
“각종 자본 유동성 충격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주장을 지지하는 서방의 학자들도 적지 않다.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 예일대 교수는 “중국이 한푼도 해외에서 빌릴 수 없는 상황이 온다해도
모든 단기외채를 갚을만큼 여전히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며
“중국 경제붕괴론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보유한 만기 1년 이하의 단기 외채 규모는 지난해 9월말 기준 1조달러로
이 가운데 48%는 위안화 표시 부채다.
중국에서 경기 부진을 보여주는 새로운 지표가 나올 때마다 이같이 위기론과 이를 반박하는 낙관론이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행동주의 경제학으로 보는 중국 경제위기론
중국 경제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까.
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보는 시각 중 하나가 행동주의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경제 사상사 존 메이나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인간의 비경제적 본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언급했다.
1930년대 대공황의 발생과 소멸을 심리적 변화로 설명한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 주체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행위가 경제 주체들간의 이익에 서로 부합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믿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와는 다른 것이다.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lof) UC 버클리대 교수와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 예일대 교수는 공저 《야성적 충동》을 통해
심리적 요소가 개인과 국가의 부(富)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음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로 불리던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보여준다고 갈파한다.
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자신감, 공정성, 부패에 대한 악의 ,이야기 등을 통해
경제 주체의 비경제적 본성이 경제 변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이를 통해 중국 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짚어본다.
◆자신감의 결여
애커로프 교수와 쉴러 교수는 자신감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 절차를 넘어서는 행동이라고 묘사한다.
자신감이 높을 때 자산을 사고
낮을 때 자산을 판다는 것이다.
자신감은 신뢰이자 믿음이다.
중국 증시의 급등락은 자신감의 결여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경제가 파동은 있지만 추세적으로는 여전히 좋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전세계 앞자리에 있다."(리커창 중국 총리)는 식의 설명이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던지는 데 제동을 걸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중국에서 경제 주체의 정부에 대한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리스크가 큰 그림자금융 상품에 자금이 몰린 배경엔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어떻게든 책임져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행위를 경제주체의 금융지식이 얕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중국은 지금 시장화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이 자원배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게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제시한 방향이다.
금융 상품이나 금융사에 대한 정부의 암묵적인 무한 보증은 이제 옛유물이 될 처지가 됐다.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 채권의 상장폐지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용인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당국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과도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 경기 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투자자들이 자신감을 잃어 쉽사리 패닉에 빠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당국이 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시각과 같은 맥락이다.
“믿음이 황금보다 소중하다"(원자바오 전 총리)는 걸 아는 중국 당국자들이 중국 경제에 신뢰를 갖고 있다고 부르짖는 배경이다.
◆의심 받는 공정성과 부패에 대한 악의
공정성에 따른 동기가 합리적인 경제적 동기보다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애커로프 교수와 쉴러 교수의 주장이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공정하지 못한 주체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부패에 대한 악의 역시 경제 주체의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 발생한 3차례의 경기침체,
즉 1990년 7월~1991년 3월
2001년 3월~11월
2007년 12월 이후 미국 발 금융위기 등에는 모두 부패 스캔들이 연루돼있다.
부패스캔들이 주식시장과 전체 금융부문에 대한 경제주체의 신뢰를 떨어뜨려 경기침체를 심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진핑 정부가 벌이는 반부패 운동이 단기적으로 중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 주석의 부패 척결과정에서
한 때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설문조사에서 최고의 인기 정치인으로 꼽힌 인물(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이 부패 행위로 무기징역을 받고,
중국 법을 총괄하던 수장(저우융캉 정법위 서기)이 거대한 부패 네트워크의 수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반부패 운동이 단기적으로 사치성 소비 위축을 낳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지대 추구(地代追求, rent seeking)를 줄여 경제가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반부패의 결과가 경제 주체의 경제 활동에 대한 열의를 식게 만드는 역풍 역시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경제 성장 속도가 둔화되는 시점이어서 반부패 운동의 역풍이 크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전염
《야성적 충동》에 따르면 인지 심리학자인 로저 생크(Roger Schank)와 로버트 아벨슨(Robert Abelson) 은
중요한 사실에 대한 기억은 이야기의 형태로 뇌에 저장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도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경제적 사건을 과도하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애거로프 교수와 쉴러 교수의 지적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야기에 기반해 상황을 분석하는 걸 비전문적이라고 폄하한다.
수치로 정량화된 사실과 경제적 변수의 최적화에 기반한 이론에 집중한다.
문제는 이야기 자체가 시장과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야기의 전염 효과다.
쉴러 교수는 지난 1월25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
‘이야기가 어떻게 주식 시장을 움직일까'에서 중국 증시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의 전염을 설명한다.
과도한 투자와
그림자 금융 그리고
유령 도시와 같이 해묵은 중국의 문제들은
서방에서 감정이 섞인 이야기로 바뀐다는 것이다.
중국의 실수를 서방의 낙관으로 보는 생각,
미국인의 애국주의,
미국의 경쟁주의 등이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장한다는 것이다.
중국 증시가 연초 붕괴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주식 시장의 급락 이야기(전염 효과)를 더욱 부추겼다는 게 쉴러 교수의 지적이다.
중국 증시는 첫 주에만 두 차례 조기 폐장 할만큼 주식시장이 급락세를 연출했다.
쉴러 교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시점에 나온 사건은 감정을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행동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 경제는 그리 낙관하기 힘들다.
경제 주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로 비쳐진다.
중국 당국자도 부족함을 인정한 ‘시장과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중국 당국이 모든 손실을 만회시켜 줄 것이라는 식의 투자자들의 맹목적인 신앙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경기둔화가 진행되는 시점에 경제 주체가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시장화 개혁을 병행하면서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가 시진핑 정부의 어깨 위에 지워져 있다.
오광진 중국전문기자 xiexie@chosunbiz.comCopyrights ⓒ 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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