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제력 · 리더십

리더십이란 전 방향적인 것 / 가장 기본적인 리더십은 셀프 리더십.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부터 시작한다

modest-i 2015. 12. 14. 13:12

“참 리더십은 약점에서 나온다”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가 지난 7월 5일 개최한 제1508회 세미나에서는 온누리교회 한홍 목사(횃불 트리니티 리더십센터 원장)가 ‘리더의 영혼을 가꾸는 전 방향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를 발췌해 싣는다.

 

 

나를 희생한다는 리더는 필요 없다. 가정을 건강하게 가꾸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하고,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가꾼 사람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는 파워가 생기는 것이다.

불꽃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리더십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 안에 있는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소리를 죽이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십이란 전 방향적인 것이다. 내가 있으면, 항상 내 위의 사람이 있고, 내 옆의 팀이 있고, 내 밑에 사람이 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리더십은 셀프 리더십.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부터 시작한다. 아랫사람을 다스린다는 것은 리더십이라는 큰 그림에서 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항상 우리 밑에 사람이 있으면, 우리 옆에 친구들이 있고, 우리가 복종해야 할 상사나 어른들이 있다. 내 위에 어른이 없다는 사람에게는 위에 하나님이라도 있다. 항상 위에 업(up)이 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굉장히 잘하는데, 밑의 사람은 너무 팽개쳐둔다. 위의 사람은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이 단기적으로는 좋지만, 밑의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묵과하지 못한다. 그 사람은 자기의 다운(down) 리더십을 소홀히 했던 결과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항상 배우는 것은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나, 동료와 팀워크를 이루는 것이나, 위에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나,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절묘한 곡예사에게 절묘한 조화가, 거룩한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운 리더십 무시하면 혹독한 대가

미국의 재계 회장 출신의 딜 하트는 미국 정·재계의 톱클래스 리더들을 데리고 이런 주제를 발표했다. 주어진 시간을 다음과 같은 4가지 틀로 봤을 때 어떻게 관리해서 거기까지 왔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시간의 50%를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훈련시키고 살 찌우는 데 썼다.

                                나머지 25%를 상향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자기 위에 있는 어른들과 관계를 나누고 배우고 대화하고 다루는 데 쓴다.

                                나머지 20%를 동료와 팀에게 쓴다는 것이다.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데에는 직접적으로 5%밖에 안 쓴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미국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고도 그 분들이 자신의 맡은 분야에서 톱클래스 리더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큐(EQ: Educational Quotient)’라는 말을 유행시킨 대니얼 골먼 교수가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

 

탁월한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부터 차별화시키는 척도는 감성적 자기통제 능력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얼마나 다스릴 수 있느냐에 따라

탁월함과 괜찮음이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하버드의 MBA스쿨에 기록되어 있는 스마트한 기업의 가장 우매한 실수가 바로 1980년대의 콜라전쟁이다.

그때까지 청량음료 부동의 1위는 코카콜라였고, 2등이 펩시였다. 1등과 2등의 차이는 2등부터 10등까지를 모두 합쳐도 1등을 넘어설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코카콜라가 2위 펩시에게 바짝 추격을 허용한 사건이 왜 터졌을까.

그 사건은 1980년대 중반에 ‘펩시 첼린지(Pepsi challenge)’라는 텔레비전 광고에서부터 시작됐다. 자그마한 샴페인 잔 2개에 코카콜라와 펩시를 따르고, 코카콜라 애호가에게 그것을 마시게 했다. 그랬더니 모두가 펩시가 맛있다는 것이다. ‘신세대 취향의 펩시’라는 광고를 보고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코카콜라의 톡 쏘는 듯한 거칠고 시원한 맛이 더 이상 신세대에서 먹히지 않는 것일까? 펩시가 뭐가 좋은지 알아봤더니, 묽고 더 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청난 연구비를 투입해서 새로운 코크를 개발했다. 그것이 ‘뉴코크’다.

바로 이것이라는 판단 하에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뉴코크 대박을 기대했는데 돌아온 반응은 충격이었다. 미국의 수많은 뉴코크가 전부 반품된 것이다. 분노한 소비자들이 불같이 코카콜라사로 전화와 항의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항의가 너무 거세서 클래식 코크를 다시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 화가 난 소비자들은 코카콜라를 떠났다. 13% 정도 매출이 격감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펩시가 13% 올라갔다.

 

 

 

손자병법에 보면 항상 적의 강한 전장으로 끌려가서 싸우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내가 잘 하는 전장에 적을 끌어내라는 것이다.

펩시가 정확히 그것을 찍은 것이다. 코카콜라는 전 세계를 수십 년 동안 지배했던 브랜드 파워를 상실하고 펩시화되어 버린 것이다. 코카콜라도 펩시도 아닌 것이 돼서 결국은 시장에서 참패한 가장 스마트한 기업의 가장 우매한 실수로 기록되고 있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자신의 브랜드 파워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다.

남의 것을 보고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열정, 이 세상 최고의 브랜드 파워는 자기 자신이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브랜드 파워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자신을 더욱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이 바로 리더십의 첩경이다.

 

 

 

 

 

팀의 리더가 죽어야 동료 리더십 살아

리더가 자기 시간과 재능의 50%를 자기 자신을 쉬게 하고, 자기 자신을 개발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충전하는 데 보내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인가? 아니다.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이 시간이 가장 현명한 투자이다.

리더가 조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건강한 자기 자신이다. 나를 희생한다는 리더는 필요 없다. 자기 가정도 건강하게 가꾸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하고,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가꾼 사람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는 파워가 생기는 것이다.

 

 

둘째, 상향 리더십인 윗사람을 팔로우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리더의 리더이신 예수님은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쓴 적은 없지만 팔로우라는 말은 굉장히 많이 쓰셨다. 남을 따른다는 말이다. 제자들을 제일 처음 스카우트하실 때도, 예수님의 조건은 단 하나였다. ‘네가 나를 따르면, 물고기 떼처럼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먼저 네가 나를 따르라.’

따른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골프나 수영을 배울 때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가. ‘저 따라하세요’라고 한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따르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야단만 열심히 친 사람이 힘을 쥐게 되면 사고가 난다.

 

순종하는 법, 따르는 법을 치욕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리더들은 2인자였다.

 

다니엘, 요셉, 다윗 모두 위에 톱이 있었다. 하나님이 그 위에 있는 톱을 움직이는 능력을 주셔서 그들의 역사를 바꿨다.

 

 

 

 

셋째, 팀워크(teamwork)이다. 옆의 동료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점이 이것 아닌가 생각한다.

윗사람 따르는 것이야 나이도 많고 직위도 높으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지만 동료는 다르다. 학벌도 비슷하고 경력도 비슷한데 동료끼리 팀워크 리더십을 만드는 것은 거의 재앙이다. 똑똑한 개인들이 모일수록 더욱 그렇다.

동료 리더십이 살기 위해서는 팀의 리더가 죽어야 한다. 예수님이 자기의 자존심을 죽이고, 섬김 받기를 포기하고, 자기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희생이 있었기에 그 팀이 산 것이다.

여러분이 탁월한 팀을 만들고 싶으면 먼저 죽으라. 결정적일 때 현실적으로 손해를 몇 번만 봐주면 된다.

사무실에서 가장 선배가 가장 좋은 날 휴가 가는 것을 포기해줄 때, 가장 좋은 것을 취할 수 있을 때 몇 번만 그렇게 포기해주면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감동의 리더십이다. 죽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팀워크가 살아날 수 없다. 같이 폭탄주 돌린다고 팀워크가 사는 것이 아니다. 핵심적인 누군가가 손해를 보고 죽어야 한다.

 

 

 

 

설교하려는 유혹을 포기해야 참 목사(리더)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들어줄 것인가 이다. 남과 대화가 안 된다고 할 때 그 이유의 90%는 저 사람이 내 말을 안 들어줬다는 섭섭함이다.

내가 교회에서 설교자로서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는 빨리 끝내기 때문이다. 목사로서 내가 넘어야 할 장벽은 어디서나 설교하려는 유혹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신방가면 말을 안 한다.

동료 리더십에서는 말을 잘할 때 사람이 붙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줄 때 팀워크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하향 즉, 다운(down) 리더십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리더십은 간단하다. 첫째는 사랑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리더십의 핵심기술이다. 사랑하는 것은 믿어주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성공시키면 엘리트고, 남을 성공시키면 리더이다. 스타 플레이어가 스타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리더십이다. 남을 소리나게 해주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믿어 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가 자기 부하들을 믿는 것이다. 진짜 훌륭한 리더는 밖에 나가서 자기 국민들 흉보지 않는다. 믿어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스티븐 코비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8번째 습관》이라는 책을 냈다. 그 결론은 최후의 리더십은 자신 안에 있는 소리를 끌어내고, 남의 안에 있는 소리를 끌어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재능과 번뜩이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 빛나는 보석 같은 무엇인가를 건드려서 터트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이 리더십의 자질이다. 리더십의 자리는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속에 있는 무언가를 터트려 주는 것이다.

‘미스터 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한 시골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이 클라리넷을 못 부는 빨간 머리 여학생을, 다른 선생님이‘너는 F학점이야’라고 끝내 버렸을 그 여학생을 이 선생님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리더의 터치를 한다. 그래서 그 안의 빛을 끌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소박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나를 비우고 나를 사랑했을 때 내 약함 속에서 오히려 강한 리더십이 나온다는 것이다.

불꽃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리더십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 안에 있는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소리를 죽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지휘자가 남의 소리를 내게 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안의 소리가 너무 크면,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 안의 약점을 통해서 더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온누리교회 한홍 목사가 말하는 횃불 리더십 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