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미래대비<-준비

"유가가 20달러까지 추락해도 감산하지 않겠다 / 초과 공급량은 2% 안팎이었지만 유가는 27~69%까지 떨어졌다 / 한계생산비용 10~17달러

modest-i 2015. 1. 13. 10:01

반토막 난 국제 油價… "50년 석유 카르텔 붕괴의 서막"

 

세계 석유시장에 무슨 일이

사우디·美의 '치킨 게임'

美생산량 급증에 위기감

 

그간 주도권 쥐던 사우디
減産 거부하며 低價 경쟁

 

 

왜 하필 작년 중반부터…
공급량 계속 넘쳐나는데

중동 등 국제정세 안정에

하반기 달러화 강세까지

 

 

저무는 OPEC의 시대
非OPEC 생산비중 늘며
油價 좌우하기 힘들어져

 

어려운 경제 속에서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그나마 위로하는 게 있다면 기름값이다.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지역의 ℓ당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6.38원 내린 1666.88원을 기록했다. 6개월 전에 비하면 290원 가까이 떨어졌다. '휘발유 ℓ당 1477원'이라고 내건 주유소도 여럿 등장했다.

 

국내 유가는 지난해 여름을 지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더니 연말에 가까울수록 가파르게 떨어졌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석유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시간 차이는 좀 있지만 가격 변화는 국제 유가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전 세계 석유 가격은 '천당에서 지옥' 수준으로 급락했다. 두바이유·브렌트유·서부텍사스산원유 등이 모두 연중 최고가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세계 석유 시장은 경악했고 산유국들은 공포에 떨었다.

 

석유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한 건 가까운 미래에 유가가 반등할 기미가 없는데도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산유국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진 유가가 떨어지면 석유수출국기구(OPEC) 소속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줄여 가격을 높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세계 석유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산유국들 "너 죽고 나 살자" 경쟁에 음모설까지… 서로 난타전


저유가에 대한 단순한 설명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생산 경쟁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나라의 '치킨게임'이 유가 하락의 결정적 이유라는 것이다. 논리는 이렇다. 미국이 최근 몇 년 새 셰일오일·가스 개발을 통해 석유 생산을 크게 늘렸고, 위기감을 느낀 사우디가 미국 셰일오일 기반을 고사(枯死)시키려고 저가(低價) 경쟁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석유 생산량 증가는 '혁명' 수준이다. 하루 평균 생산량은 2011년 564만 배럴에서 작년 860만 배럴로 증가했다. 생산이 늘면서 해외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줄었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원유 수입이 계속 늘었는데 2005년(하루 1250만 배럴)을 기점으로 줄기 시작해 작년엔 662만 배럴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OPEC 맏형 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나섰다. 사우디는 작년 11월 말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OPEC 총회에서 유가가 떨어져도 OPEC은 현재 생산량(하루 약 3000만 배럴)을 유지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연말엔 석유 장관이 "유가가 20달러까지 추락해도 감산하지 않겠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국제 유가는 급락했다.

 

우디가 큰소리칠 수 있는 건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비는 배럴당 35~75달러 수준이지만 사우디는 30달러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사우디의 원유 개발 단가가 4~5달러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단순 논리에 다른 산유국들이 끼어들면서 저유가에 대한 설명이 복잡해졌다. 음모론도 등장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사우디를 싸잡아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유가 하락은 정치적 요인이 배경이다. 두 나라가 (저유가를) 공모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도 유가 하락이 미국 등의 '정치적으로 계산된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국가들이 국제사회에서 미국 및 그 우방국들과 계속 충돌하는 행태를 취하자 저유가를 통해 보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국가들은 다른 산유국보다 저유가로 인한 고통이 훨씬 크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작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는 국가 재정이 균형을 이루려면 유가가 배럴당 105달러를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은 130.5달러, 베네수엘라는 161달러였다. 이에 비해 사우디는 97.5달러, UAE는 79.3달러였고 카타르와 쿠웨이트가 50달러대로 가장 낮았다.

리비아 원유 정제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
리비아 원유 정제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 리비아를 비롯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12개 회원국은 작년 11월 말 열린 총회에서 저유가 상황에서도 석유 생산을 줄이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국제 유가 하락 폭이 더욱 커졌다. /AP 뉴시스

 

 

 

◇핵심은 공급과잉. 정세 안정달러화 강세도 한몫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저유가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왜 2014년 중반 유가 하락이 시작됐나'라는 의문을 풀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①석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이 계속된 가운데

 

②그동안 고유가를 유지하는 효과를 발휘했던 불안정한 국제 정세가 안정됐고

 

③여기에 미 달러화 강세가 맞물리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공급과잉이 된 건 전 세계가 경기 침체로 몸살을 앓으면서 수요는 크게 늘지 않았는데도 공급은 미국을 중심으로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는 작년 세계 석유 시장에서 하루 평균 170만 배럴 정도가 초과 공급된 것으로 분석했다.

 

심승택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공급과잉은 1.8%에 불과하지만 이 정도로도 큰 폭의 가격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며

 

"실제로 1980년대 이후 석유 초과 공급이 다섯번 있었는데 초과 공급량은 2% 안팎이었지만 유가는 27~69%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공급과잉에 중동 정세 안정이 가세하면서 유가 하락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통상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 유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정세가 안정되면 유가는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리비아의 주요 석유 수출항 봉쇄 해제, 미국의 IS 세력에 대한 공습 이후 이라크 원유 공급 불안 해소, 우크라이나 위기감 감소 등이 유가 하락 호재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점도 유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국제 투자자들이 달러를 사기 위해 원유 등을 내다 팔면서 유가 하락 폭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OPEC 시대 저물고 자유시장 시대 오나


관심은 이런 저유가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다. 유가 급락으로 캐나다 오일샌드 등 생산 비용이 높은 곳에선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업체들도 비용 절감이나 일부 생산량 감축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중에선 당분간 유가가 '예전 수준'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선, 생산량은 줄지 않고 수요는 급격히 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OPEC·러시아는 이미 저유가라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미국 생산량은 작년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기술 발달과 효율성 향상으로 셰일오일 생산가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어 저유가 대응력도 커지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의 올해 원유 생산량이 하루 평균 932만 배럴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산유국들 재정 수입이 줄더라도 판매 가격이 생산 원가보다 높은 수준이라면 생산을 계속하는 게 낫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너지연구원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동국가는 한계생산비용이 각 15~21달러, 10~17달러 수준이다. 최근 국제 유가보다 낮다. 국가가 충분하게 수입을 얻진 못하지만 아직까지는 '팔아서 돈 남는' 수준인 것이다.

다만, 미국을 중심으로 경기가 살아나면서 석유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럴땐 원유가가 오를 수 있다.

 

OPEC이 국제 석유 공급 시장에서 여전히 지배력을 발휘할 것인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김희집 서울대 행정대학원 에너지정책 초빙교수는 "작년 4분기부터 OPEC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50년간 유지됐던 석유 카르텔 패권이 붕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예전엔 석유 공급 주도권을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이 단독으로 쥐었지만, 그동안 미국·러시아·브라질 등의 생산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유가는 이제 OPEC이 혼자 좌지우지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자유시장체제를 갖고 있어 생산량을 국가가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OPEC 국가 간 균열이 커질 수도 있다. 사우디와 UAE 등은 외환보유액이 풍부하고 재정이 탄탄해 저유가를 버틸 수 있지만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재정난이 극심하다. 작년 11월 OPEC 총회에서도 회원국들은 감산과 현상 유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재정 균형점이 높은 국가는 유가가 기대보다 낮을 경우 생산과 판매량을 늘려 재정 수입을 늘리고 싶어한다"며 "OPEC이 한목소리를 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