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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히틀러의 잠 / 실패 사례

modest-i 2014. 11. 13. 21:00

미국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은 육.해.공군을 망라한 사상최대의 작전으로

1944년6월6일 16만명의 연합군을 지휘 프랑스 노르망디해안에 상륙 6.30 교두보를 완전확보하였다.

 

 

독일 방어군 총사령관 룬트슈테트와 롬멜 원수는

1차대전시 독일의 상병출신 히틀러가 어리석게 기갑부대를 자신이 직접 통제하기로 결정해

작전운용의 융통성을 잃었고,

때문에 히틀러로부터 자신이 보유한 예비 기갑 병력을 제때에 동원하도록 재가를 조기에 받지 못했다.

 

 

왜냐면 기갑부대의 운용권을 현지 지휘관이 아니라 히틀러자신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지휘관들이 히틀러의 허가를 받고 예비기갑 부대를 동원했을 때는

이미 오후가 되었을 때이고 최적의 시기는 놓친 상태였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프랑스가 나치 독일군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연합군이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위한 발판이 마련되어

제2차 세계 대전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연합군 대규모 지상병력이 영국 해협을 건너 히틀러의 독일군을 공격한 대규모 작전이었고 유럽 탈환의 작전에 발동을 거는 최초의 작전이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인명 손실이 발생했지만

이미 대소 전선에서 연패를 당해 패색이 짙은 독일의 후방을 들이친 것이어서

독일의 패망이 곧 확실히 올 것이라는 것을 확인해준 전투이기도 하였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성공을 거두었던 가장 큰 원인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

히틀러의 잠이라는 말이 있다.

 

상륙작전이 새벽5시에 이미 포착되었으나

히틀러의 잠을 깨우는것이 두려웠던 부관과 친위대장교는 아침11시까지 잠자는 히틀러를 내버려두고

보고하지 않았다.

 

 

(깨우면 불같이 화를 냄)

평소 그는 부관에게 잠을 자고있는 동안에는 절대 깨우지 말라고 명령했으므로,(첨삭 미쳤음, 전쟁하는 최고 수반이 긴급 상황에 대처해야 함을 망각했음) 

부하들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을 감행하였을 때,

동부의 기갑 사단만 그쪽으로 돌린다면 상륙을 저지 할 수 있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잠든 히틀러를 깨우지 못하고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다.

 

 

이말의 뜻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시작되어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독일군 수뇌부는 아무런 대책도 대응도 하지 못하면서 몇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냈는데,

그 이유는 히틀러가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서 있다며

친위대 장교들이 히틀러를 깨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몇 년전에 우리나라의 전임 대통령이 주무신다고 보고가 늦게 되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만일 독일군 수뇌부가 히틀러를 잠에서 깨워 대책을 몇시간이라도 빨리 논의하고

병력을 움직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새벽잠은 어찌나 깊은지 누구도 감히 깨울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한다.

히틀러가 한참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교두보를 확보 진지를 구축한 뒤였고

결국은 밀리고 밀려 패전하였다.

 

 

상병출신 히틀러가 작전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였고

그결과 여러 차질을 빚더니 결국 패망하고

히틀러는 1945.4.30일 56세에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전시에나 평시에나 지휘관은 언제라도 보고받고 즉응태세를 갖춰야하지 않을까?..

 

 

 

첨삭: 발지 전투에서도 히틀러가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밀어붙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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