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성이론, 양자역학 <- 조지 소로스: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
경제학은 과학(수학이 아님)이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이오.
일단 과학과 수학의 차이를 확인해보겠소.
(수학과 과학은 달라도 너무 다른데 이걸 모르는 사람이 많소.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 수학과 과학을 혼동하는 부류가 많소.
그 주원인은 사회과학 분야 사람들은 대학교 들어와서 실험실을 한 번도 안 들어가봤다는 것이오.)
수학이 다루는 대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소.
애시당초. 한 예로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정의한 "점"이나 "직선"이 이 우주에 존재하오?
아니, 현대 우주론을 통해 볼 때 무한하게 많이 존재할 수 도 있는 다른 우주들에 혹시 존재하겠소?
결국 수학이 다루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소.
인간의 머리속에나 있는 것이오.
공리로부터 출발해 정리와 증명을 통해서 인간의 머리속에서 "존재"할 뿐이오. "
0"이 존재하오? 없소.
그럼 다른 수들은? 없소.
에이전트 스미스 가라사대 "그런 것들은 매트릭스만큼 인공적이야!"
반면 과학이 다루는 대상은 이 우주에 존재하오.
오감을 통해서든 다른 관측 수단을 통해서든 존재를 확인할 수 있소.
우주 만물의 비밀을 풀어줄 기대주인 초끈이론은 일단의 물리학자들로부터 "과학'이 아니라는 맹렬한 비판을 받고 있소.
왜냐하면 "초끈"의 존재유무가 현재 과학기술수준으로 확인불가능하기 때문이오.
비슷한 예로 블랙홀도 예전에 같은 취급을 받았소.
물론 "초끈"의 존재를 확인하기위해 수많은 실험 물리학자들이 관측방법을 만들어내기위해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소.
아직은 발견되리라는 희망이 있소.
존재가 확인되어야 비로소 "과학"의 영역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을 것이오.
초끈이론의 수학적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는 많지만 아직 완전한 "과학"은 아닌 것이오.
그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어떻게 다르겠소?
소로스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쓴 개념. "반사성"이 중심과제가 되오.
쉽게 구할 수 있는 서적이고 "반사성"을 설명했기에 여기 추천하오.
사실 이 개념은 케인스도 언급한 적이 있소.
케인스 가라사대 "주식시장은 미인대회와 같다.
" 왜? 다른 사람이 어떤 시각으로 주식들을 쳐다보느냐가 주가결정에 결정적인 요인기에.
내가 당구장에서 당구공을 침을 흘리면서 쳐다보든 째려보든 당구공의 "변수값"은 변하지 않소.
질량을 포함한 물리량은 그대로인 것이오.
그런데 신통하게도 주식이나 미인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관점(즉 "인식")에 따라 그 "변수값"이 달라지고 마는 것이오.
해당 주식은 가격이 폭등할 수도 폭락할 수도 있고 미인들은 순위가 뒤바뀌는 것이오.
연구대상 객체의 "인식변화"에 따라 계를 좌지우지하는 "법칙(또는 함수, 또는 패러미터)" 자체가 변하고 마는 것.
그것이 바로 "반사성"이오.
주류 경제학은 결국 이것을 무시했소.
철저하게. "법칙"이나 "패러미터" 자체가 구성 개체의 "인식변화"에 따라 변하는 경제 시스템의 진정한 모습을 깡그리 무시했소.
거기에다 19세기 수준의 저급한 수학을 쓰고 앉아 있으니 주류 경제학이 변변한 성과를 못 내놓고
"수학"이론이나 붙잡고 있는 정체를 유발했던 것이오.
과학적 사고방식은 뒷전이 되고....
사실 경제 시스템의 참모습을 무시하는 구시대적 "수학"이론을 쓸 바엔
차라리 그것을 버리는 것이 현실 경제를 똑바로 연구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오.
경제학의 새로운 물결은 수십년전부터 시작되었소.
카오스 이론, 복잡계 경제학, 최용식 경제학.
주류 경제학의 일반 평형(균형) 이론은 이제 끝났소.
비평형 이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오.
고전 역학을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내쫓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