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 휴식 창조
브레인 룰스 (의식의 등장에서 생각의 실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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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4. 14:44
김 치풍 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창조적인 사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으로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실 일터와 학교에서 획일화, 규격화, 동질화에 관한 논의가 물러가고 창조, 창의, 혁신 등이 화두가 된 지는 오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무엇’에 대한 고민보다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기가 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물음은 이어진다. ‘무엇’이 창의성이라 할 때, ‘어떻게’ 그것을 개발할 수 있을까? 그런데 혹시 창조성 내지 창의력을 선천적인 재능 혹은 소수의 천재들만이 보유한 역량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 우리 두뇌가 움직이는 방식을 약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창의력, 그 무한한 가능성의 문은 열릴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바로 두뇌의 원리를 정리한 ‘브레인 룰스’라는 책이다. 사실 저자는 우리가 더 똑똑해지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두뇌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려 놓기만 해도 업무의 능률은 올라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루에도 수권씩 쏟아지는 자기개발서의 틈 속에서 이 책이 갖는 매력이라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잡기에 있을 것이다. 저자인 존 메디나 박사는 오랜 기간 인간의 두뇌를 연구해 온 학자로 단순히 이론 발견에 그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현실의 장에서 응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는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저자가 내놓는 ‘두뇌 부활 아이디어’에서 잘 나타난다. 2009년 대한민국 직장과 학교에 당장 적용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의 제안들이 일견 비현실적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비현실성이 앞으로 우리에게 갈 길이 많이 남아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본 서평은 메디나 박사가 전하는 12가지 두뇌 법칙을 세 가지 차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첫째, 저마다 개별화된 두뇌활동이 그것이고, 둘째는 주의력과 기억력 차원에서 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늘 자극하고 움직여야 하는 게 아니라 쉼이 필요한 기관으로서의 우리 두뇌에 대한 이야기다. 1. 사람들의 두뇌 회로는 서로 다르다 : 생각의 개인차와 남녀차 우리의 두뇌 회로는 모두 다르다. 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천 가지의 두뇌 연결회로가 있는 셈이다. 사람의 뇌는 흔히 일컫는 ‘미운 세 살’과 ‘무서운 십대’, 즉 사춘기 시절에 접어들면 폭발적 성장을 하는데, 이 때 모든 아이들은 서로 다른 부위가 서로 다른 속도로 발달한다. 이것이 마이클 조던이 최고의 농구선수이기는 했지만, 야구선수로서는 훌륭한 성적을 거둘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두뇌는 우리 몸의 근육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많이 쓰는 부위일수록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더욱 발달한다. 오랜 시간 현악기를 연주해 온 사람과 수학 통계를 연구해 온 사람은 뇌의 발달 부위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해진 시간 안에 모두가 같은 수준의 과업을 성취해야 하는 직장과 학교의 요구가 우리 두뇌법칙에 위배되는 일임은 명확하다. 우리의 뇌가 각자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깊이로, 다른 분야를 이해한다. 따라서 저자는 조직내 팀을 최소화할 것을 주장한다. 소규모의 조직은 리더들이 모든 직원을 특징 있는 개개인으로 인정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선사시대 적자생존의 장에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는 인간 고유의 능력 때문으로, 이는 고도의 두뇌활동이자, 상호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낸 단초였다는 이른바 ‘마음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생각의 개인차를 지적하는 동시에 어떤 생각을 포착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데 있어 남녀차도 조심스럽게나마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타고난 것인지 길러진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가 강조하는 사실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게 처리하는 감정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성별에 따른 팀을 직장에서 활용해 볼 것을 제안한다. 성별의 차이를 무작정 무시하고 덮어둘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양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우리의 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주의력과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에 관하여 사실 ‘브레인 룰스’를 밝히려는 연구는 두뇌를 어떻게 써야할지 또는 어떻게 썼을 때 그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 등 두뇌 ‘활용’의 문제를 목표로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차가 뚜렷한 두뇌활동이지만 우리 두뇌를 지배하는 보편적 원리는 엄연히 존재한다. 가령 ‘따분한 것들은 뇌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거나 ‘기억을 오래 남기려면 반복해야 한다’는 것들이 그 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주의(attention)'에 관한 문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지루한 것은 우리의 관심을 길게 붙잡아 두지 못한다.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졸음이 몰려오는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루함으로부터 우리의 뇌를 구하고 가능한 한 오래 자극할 수 있을까? 우선 뇌는 공포, 웃음, 행복, 향수, 의심 등 감정에 자극을 주는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극적인 광고가 우리의 머릿속에 오래토록 잔상을 남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다음으로 두뇌는 개념의 계층화를 통해 자극할 수 있다. 세부 사항을 자세히 설명하기 앞서 좀 더 광범위한 개념의 의미를 붙잡아주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마인드 맵을 두뇌 속에 그리는 것과 같다. 이 두 사실을 바탕으로 나오는 게 바로 ’10분 법칙‘이다. 강의나 프레젠테이션의 기본 단위를 10분으로 배분, 1분 안에 광범위한 보편적인 요점을 소개하고 나머지 9분은 그 보편 개념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10분마다 ’미끼‘, 즉 감정을 자극할만한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덧붙여 저자는 주의의 문제와 관련, 우리의 두뇌는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두뇌활동은 일련의 절차에 의거해 일어나는데,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옮겨갈 때 ‘어디까지 했더라?’라고 우리가 주저하는 그 순간에, 뇌는 일을 최초로 시작했던 단계로 되돌아가고 만다. 즉 일을 멈추었던 그 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따라서 일을 할 때는 이메일도 확인하지 말고, 전화기 전원도 끄고, 메신저 하지 말라는, 직장인들에게는 다소 잔인한 제안을 저자는 주저없이 내놓는다. 둘째, 기억의 문제다. 인간의 두뇌는 7가지 정보를 고작 30초 정도밖에 유지하지 못한다. 그 30초를 몇 분 혹은 한두 시간까지 늘릴 수는 없을까? 사실 기억만큼 불완전한 것도 없다. 이전에 명확했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틈을 메우기 위해 두뇌는 부분적인 기억에 의존한 단편적인 추론을 하기도 하고, 관계도 없는 기억을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이제 막 얻은 새로운 지식까지 과거 기억 속으로 배어 들어가 두 가지가 엉키기도 한다. 이토록 불완전한 기억을 붙잡아 둘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우선 정보를 계속해서 되풀이한다. 나아가 적절한 시간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면 기억의 지속시간을 더욱 늘릴 수 있다. 다음으로 ‘부호화’ 과정도 중요하다. 부호화란 뇌에 저장하기 전 우리가 정보를 암호화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부호화를 최대한 정교화(elaboration) 시켰을 때 기억의 지속력은 높아진다. 이 때 ‘정교하다’는 것은, 최대한 그것을 개인화할 때, 즉 나의 경험을 집어넣어 의미가 있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는 apple이란 단어를 외울 때 어린 시절 내가 먹던 애플파이와 연관된 경험을 끄집어 보는 식이다. 사례를 이용하면 학습 효과가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초기 기억이 이루어진 ‘조건’을 되살리면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조건은 공간적 조건은 물론 감각적 조건까지 포괄한다.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우며 혼란스러워하는 아이에게 스페인어방과 영어방을 따로 만들어주고 각각의 방에서는 해당 언어만 쓸 수 있게 하자 아이의 언어 적응력이 훨씬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공간적 조건을 지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두뇌는 기억활동을 보다 활발히 진행할 수 있다. 감각적 조건에 관한 논의는 후각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 냄새가 회상능력을 향상시켜주는 ‘프루스트 효과’를 보다 구체화시켜 보면, 최초 학습이 이뤄졌던 곳에서 났던 향기와 동일한 향기를 맡게 해주었을 때 기억력이 더 올라간다든가, 제품과 조화를 이루는 냄새는 제품의 판매를 촉진한다는 연구결과가 생소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커피의 향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근무 시간 중에 향수를 뿌리지 못하게 했다. 우리의 뇌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등 다양한 감각들로 정보를 모으므로, 자극이 다양할수록 기억은 뚜렷해진다.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감각적 자극을 주는 것이 기억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그 중에서 특히 저자는 백문이불여일견, 시각의 위력을 강조한다. 색깔만 레드인, 실제로는 화이트 와인을 최고라는 와인감정가들에게 보이자, 이들은 모조리 레드와인에만 쓰는 어휘들로 와인을 평가했다. 이처럼 시각은 다른 감각을 속일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글자와 말보다는 그림으로 정보를 전달했을 때 기억효과가 높아진다면서, 파워포인트에 의존한 프레젠테이션은 버리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완벽히 사실적인 그림이 정보 전달의 효능을 높이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2차원 그림이면 충분하다. 이 책의 표지를 각 장의 제목과 주제를 간결하게 담고 있는 2차원 그림이 장식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3. 지금 우리의 뇌는 휴식이 필요하다. : 적당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조절 우리는 지금까지 뇌를 지배하는 몇 가지 원칙들을 짚어보며 뇌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개발 못지않게 우리의 뇌에 필요한 것이 바로 휴식이다. 칸막이가 쳐진 책상 앞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고 해서 우리의 뇌가 활성화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의 두뇌는 운동의 영향을 받는다.멍하니 앉아있는 두뇌는 창의적인 활동을 벌일 수 없다. 우리의 뇌는 움직일 때 산소를 공급받아 에너지를 발산하고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실제 노화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에 따르면 꾸준히 운동을 한 사람은 신체능력은 물론 인지능력에 있어서도 늙지 않는다고 한다. 수면의 중요성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부족한 잠이 업무 능률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은 평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며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수면의 중요성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놀라운 사실은 두뇌는 잠을 잘 때도 전혀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믿기 힘들만큼 활동적이어서 이미 동물의 뇌는 자는 동안 그 전에 배웠던 것을 재생한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된 상태다. 마지막으로 심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두뇌활동을 저하시킨다. 물론 스트레스 자체는 해롭지도 않고 독성도 없다고 한다. 오히려 특정 유형의 스트레스는 학습을 촉진하기까지 한다. 스트레스가 해로워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외부 세계와 스트레스를 다루는 우리의 생리학적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직장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상의 세 가지 사항을 감안하여 우리의 사무실을 떠올려보자. 두뇌에 휴식의 여지를 열어두는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는가. 이쯤 되면 사무실에 러닝머신을 설치하고, 걸으면서 업무전화를 받고 움직이면서 회의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산책을 하라는, 저자의 다소 엉뚱한 제안들에도 귀기울여 볼만하다. 또한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기업이 도입한 바 있는 직원 각자의 수면 사이클에 맞춰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으며, 낮잠 장려운동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끝으로 회사가 무료 가정 상담 프로그램과 탁아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도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오랜 시간 사람의 두뇌는 고정된 것으로 여겨졌다. 태어날 때 한 번 그 회로가 짜여지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손상되어 간다는 결정론적 입장이 지배적 의견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인의 두뇌도 어떤 부위는 어린 아이처럼 유연할 뿐 아니라 훈련과 학습에 의해 강화되기도 하고 조정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새로운 부위를 개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열린 무한한 가능성의 장에서 우리는 개별 주체로서 각자의 두뇌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회사와 학교라는 조직적 차원에서 브레인 룰스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었을 때 비로소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 역시 한 개인이 자기 개발을 목적으로 나의 두뇌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답이라기보다는, 직장과 학교라는 조직, 나아가 공공의 차원에서 어떻게 개인의 두뇌를 최대한 ‘활용시킬지’에 대한 고민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는 저자의 위트 넘치는 문장들 사이에서 진지한 정책적 제안의 대목을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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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 모디스티 2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