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25편[야마오카 소하치.2015] -세상의 흐름을 보는 법-
-세상의 흐름을 보는 법-
1 『 방심은 금물 』
'방심은 금물' 상투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큰 사건은 대부분 방심에서 발생한다.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어느 위치에 올라갔을 때, 방심을 하지 않기란 상당한 수련이 필요하다. 이에야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듣는 방식으로 방심을 경계했다. '텐가이'는 이에야스 주변사람들 중에서 가장 엄격한 스승이었다. 텐가이는 난세가 되살아 날 수 있는 씨앗을 철저하게 분쇄하기를 거듭 촉구했다.
텐가이는 히데요리의 그릇이 작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에야스에게 오사카 성의 히데요리(도요토미 가문) 숙청을 주장한다. 히데요리는 그 자체로 힘이 없지만 힘이 있는 세력의 훌륭한 도구(명분을 위한)가 될 여지가 있었다. 물론 히데요리가 똑똑했다면 텐가이는 냉혹한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텐가이 : ``문단속을 소홀히 하고 도둑만 미워함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에야스 : ``안 될 말이오. 그럴 순 없소! 그렇지 않아도 이에야스가 에도에 저택을 준다는 구실로 인질을 요구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는데.....
이에야스가 조정에까지 인질을 요구한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무엄한 자라는 평을 받을 것이오. 스님, 인간 세상에서 신의를 잃고는 어떠한 제도와 단속도 도움이 되지 않소. ``
텐가이 : ``와하하....소승은 주군이 좀더 훌륭하신 분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
이에야스 : ``아니 ....뭐라고 했소,스님?``
텐가이 : ``세이이타이쇼군 정도가 되면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되나봅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세상 눈치를..... 주군, 모처럼의 새로운 정치도 앞이 보입니다. 소승은 두 번 다시 말슴 드리지 않겠습니다. ``
세이이타이 쇼군의 자리에 올라간 이에야스는 어느새 세상의 눈을 의식하고 있었다. 혁신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은 어느순간부터 안정을 찾아 헤맨다. 텐가이는 나태해진 이에야스의 정신을 꾸짖었다. 안정을 추구하려는 정신은 곧 '이상론'으로 변질된다. 문제는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사회나 인간의 정신력에는 실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관성력이 존재한다. 텐가이는 불순한 세력들이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미리 자물쇠를 단단히 잠가두는 방안을 제시한다.
텐가이 : ``인간은 정을 버려서는 안 되지만, 정에 져서도 안 됩니다. 이상을 가져야 하지만 현실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함과 마찬가지....
주군 정도나 되시는 분이 은퇴를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말씀 드립니다. 내년 봄의 상경, 주군의 행렬은 그렇다 해도 히데타다 님의 행렬만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화려하게 갖추십시오.
이만이나 삼만으로는 안 됩니다. 보는 사람 모두 도저히 이 군사에는 대적할 수 없다.... 생각할 만한 대행렬이 아니면 오히려 죄를 짓게 도비니다. ``
텐가이는 이에야스가 자리에 연연하면서 세간의 시선을 염두에 두는 안일한 생각을 부숴 버렸다. 세상을 이끌고 나가야 할 리더는 표면적인 평판에 구애받아 미리 손을 써야 할 일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사익을 위해 웅장함을 꾀하고, 허장성세를 부린다면 멸망의 징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 압도적인 힘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위는,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리더가 힘을 사용한다면 이는 적절하다. 이에야스는 평소에 늘 검소했기 때문에 선뜻 텐가이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히데요시, 노부나가의 실패(분열의 씨앗을 방치)를 곱씹으면서 깨달았다.
노부나가는 우다이진의 직위에 오르면서 변했다. 일본 통일이라는 뜻을 위해 압도적인 힘을 사용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에너지를 쏟았다. 동맹이었던 도쿠가와 가문의 대를 이을 노부야스를 할복케 하고, 미츠히데를 좌천시켰다. 자신의 감정에 맞지 않거나 생각을 따라오지 못하는 자에게 지체없이 힘을 과시적으로 사용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뜻을 관철하는 것까지 좋았지만 감정적으로 리큐 거사를 죽게 만들고, 모두가 반대하는 조선 침략을 자행했다.
영웅이라 불렸던 수많은 이들이 천하인의 자리에 올라가기 전가지 '공적인 뜻'을 모으는 데에 능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면 여지없이 사적으로 힘을 휘둘렀다. 텐가이가 보기에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와 달리 힘을 너무 과도하게 비축하는 유형에 속했다.
극과 극은 기울어진다. 힘을 사적으로 남용해도 문제지만 이에야스처럼 힘을 비축만 할 뿐, 너무 사용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내부 분열로 세상이 뒤집어지고, 후자의 경우는 외부에서 분열 조짐이 발생한다. 텐가이는 극단으로 치우친 이에야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히데타다'를 통해 압도적인 힘을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2 『 흐름을 보는 자 못보는 자 』
이에야스가 세이이타이 쇼군에 오른 후부터 긴박하게 돌아가는 에도 성과 달리 오사카 성은 발전이 멈췄다. 히데요리는 어릴 적부터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자랐고, 도요토미 가문을 위한다는 공경들은 요도 부인과 코다이인(히데요시 부인)쪽으로 분열돼 있었다. 혼란한 환경 속에서 자란 히데요리는 14세 때, 센히메(이에야스의 손녀, 히데타다의 딸)의 시녀, 오미츠를 임신시켰다. 겉으로는 히데요리를 '우다이진(공경 최고 관직)' 위치에 올렸던 이에야스였지만 히데요리는 점차 '천하를 위해 무익한 자'로 변해갔다.
히데요리는 허울 뿐인 '우다이진'이란 관직을 받고, 실질적인 힘을 구사할 수 있는 쇼군에 대항한다. 히데요리는 점차 모난 성격으로 자랐고, 요도 부인과 주변 공경의 의견을 따라 쇼군을 찾아가지 않았다. 만일 히데요시 정도의 뱃심이 있었다면, 우다이진 관직을 받자마자 혼자서 쇼군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 속에서 자라난 히데요리는 사나이의 뱃심 싸움에 응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히데요리나 그 주변의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을 보지 못하거나 혹은 모른체 했다. 사람의 몸에 혈이 있고, 땅에도 혈이 있듯 사회적 현상이나 흐름에도 반드시 혈이 있다. 혈은 흐름이 막히거나 뭉치는 자리다. 혈을 풀어주거나 맺히게 함으로써 생과 사가 결정되고, 활력과 침체가 반복된다.
흐름을 보는 자는 사회가 돌아가는 혈을 짚어내고, 혈이 맺힌 원인을 찾아낸 후, 풀 수 있는 방법과 풀렸을 때의 상황을 예측한다. 혈이 풀렸을 때 장차 흘러갈 방향이 바로 세상의 흐름이다. 즉, 흐름을 보려면 먼저 혈이 맺힌 부분을 찾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코다이인(네네.히데요시 부인)은 사회적 현상을 통해 혈을 잘 짚어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히데요시가 간파쿠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왔으며,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 실패할 것을 내다보고 반대를 했다. 이후, 카토 키요마사를 중심으로 반 미츠나리파를 중요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승리하도록 도왔고,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을 막았다. 코다이인은 중요한 순간마다 정확하게 혈을 짚고, 향후 진행될 흐름을 예측하고 움직였다. 어떻게 이런 예측이 가능했을까?
1) 금기시 될 정도의 민감한 부분을 찾는다.
2) 연결된 관계, 사람을 본다.
3) 감정과 논리의 갭(격차)이 큰 부분을 찾는다.
4) 위기를 비교한다.
``세상의 흐름을 보는 방법``
1) 금기시 될 정도의 민감한 부분을 찾아라
사람은 누구나 숨기는 과거의 사건이나 과오가 있기 마련이다. 입 밖에 꺼내기조차 싫어하는 이런 부분이 바로 혈 자리다. 가령, 사람의 몸에 있는 혈 자리는 신경이 다발로 얽혀 있다. 그래서 민감한 부분이며 조그마한 자극에도 흥분한다.
사회적인 혈 자리도 몸과 같다. 가령, 한국인들에게 있어 사회적인 '혈'은 일본, 북한과 관련된 문제이며, 유교 사상에 정면으로 반하는 사회적 이슈들이다.(성 범죄, 하극상, 권력 다툼, 가족 문제 등....)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면 사회 전체가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혈 자리가 어떻게 맺히고 풀리는지에 따라 미래의 흐름이 달라진다.
만일, '불우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숨기고 싶은 '혈 자리'를 갖고 있는 A라는 사람이 있다. A가 정치를 하면서 악바리처럼 깡을 부린다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은 칠전팔기 정신으로 칭찬받을 일이 된다. 맺힌 혈은, 상황에 따라 오히려 좋은 흐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반면 A가 사업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도덕적인 부정을 저지른다면, '불우한 어린 시절'의 정보가 '수전노, 악질 구두쇠'와 같은 좋지 못한 이미지를 발생시키는 흐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해당 사회 구성원들이 금기하는 영역에 속한다면 반드시 혈이 맺힌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혈이 풀리는 방향이 달라진다.
코다이인이 보기에 자신의 남편, '히데요시'에게 금기시 되는 단어는 '이에야스'였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에 있어 '혈 자리'에 해당한다. 히데요시가 살아 있을 때, 이에야스에 적대시하는 언변과 행위는 좋은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미츠나리는 히데요시에게 지속적으로 이에야스를 무너뜨릴 계획을 말하고 실천했다. 문제는 히데요시가 죽고 난 뒤였다.
히데요시가 죽은 뒤부터 실질적인 실력자는 이에야스였다. 상황이 바뀐 것이다. 히데요시가 없다면, 이에야스를 깎아내리는 언변과 행위는 도요토미 가문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상황이 된다. 상황이 변했다면 행동은 민첩해야 한다.
도요토미 가문의 민감한 혈 자리는 과거처럼 풀어서는 좋지 못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츠나리는 과거의 행위를 지속했고, 결국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한채 역류하고 말았다.
2) 연결된 관계, 사람을 본다
모든 사건들은 '보편적-상대적 관계'를 갖고 있다. 인간 몸에 있는 혈자리에 많은 신경들이 존재하듯, 사회적인 현상에도 여러 관계가 다발로 연결돼 있다. 겉으로 불거진 사건이나 현상은, 약한 혹은 강한 관계들로 꼬여있다.
코다이인은 어떤 현상을 표면에서 떠들어대는 말에 현혹되지 않고 내면에 얽히고 설킨 관계를 찾아내어 해석했다. 사람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는 여지없이 관계가 꼬여있는 상황이다. 어떻게보면 인간은 모두 이상론자들이다. 현실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임에도 관계가 형성되면 친구따라 강남간다. 실력이 아닌 관계에 따라 결정한 선택에 의해 떠오르고 있거나 이슈가 되는 혈자리라면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현상도 결국 사람의 생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현상이라도 현상의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관계가 연결되어 있는지에 따라 흐름이 천차만별로 바뀐다. 코다이인은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 실패로 돌아갈 것을 예측했다. 그녀는 일본의 조선 침략을 '히데요시'라는 사람과 그와 관련된 관계 중심으로 생각했다.
코다이인은 남편이었던 히데요시의 성향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히데요시 주변의 실력 있는 상인들은 남만으로의 진출을 원했고, 오랜 전쟁으로 지쳐있는 다이묘들은 안정을 원했다. 히데요시의 생각은 주변과 관계를 꼬이게 만들었다. 따라서 조선 침략과 관계된 상인과 다이묘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히데요시의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벤처기업의 직원을 보면 회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회사와 직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회사의 제무재표를 보기에 앞서 해당 회사나 조직과 관계된 사람을 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3) 감정과 논리의 갭(격차)이 큰 부분을 찾는다
연초가 되면 해마다 토정비결이나 신수를 보러 속세와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IT가 발전한 국가에서도 여전히 미신은 존재한다. 예로부터 속세와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일을 잘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왜?``
바둑을 둘 때는 잘 안 보였던 묘수가 훈수를 둘 때면 잘 보인다. 시험장 안에서는 그렇게 어렵던 문제가 시험장 밖에 나오자마자 쉽게 생각된다. 인간은 감정에 좌우되는 존재이다. 사회적인 문제 대부분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돈에 매달리는 이유도 결국 편안한 주거환경, 맛있는 음식과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안락한 감정을 느끼면서 구애받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함이 아닌가? 대부분 사람들의 행동 요인은 감정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살아간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 마트에서 1,000원짜리 물건 하나 고르는 데에도 감정이 앞서는 게 사람이다.
사회 현상들 중에서는 유독 감정과 논리의 격차가 큰 일들이 발생한다. 이런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하면 사회적 '혈 자리'에 해당한다. 가령, 2002년 붉은 악마 응원 열기는 비정상적이었다. 냉정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공 놀이 구경(축구)에 생업을 내팽겨 칠 정도로 열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감정에 달아 올랐고, 이런 현상들이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흐름을 만들어낼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코다이인이 이에야스를 다음 시대의 흐름을 창조하는 자로 점찍은 이유는 '감정 컨트롤'에 있었다. 이에야스는 실질적인 지배자의 위치에 올라가서도 결코 흥분에 휩싸이지 않았다. 그는 히데요시와 약속했던 일들을 하나씩 지켜갔으며, 7명의 장수들에게 쫓기던 미츠나리를 살려 주었다. 자신이 최고가 되면 누구나 감정에 들떠서 평소와 다른 기행을 저지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생활과 판단은 감정과 이성의 격차가 거의 없었다. 한 마디로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감정과 이성의 격차가 크지 않을수록 무겁다. 가벼움은 무거움에 제압당한다. 사람들은 무거운 쪽에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코다이인이 이에야스를 선택한 이유다.
4) 위기를 비교한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소설의 5단계 과정을 거치면서 변한다.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 소설에서 물음표 부분에는 결말이 들어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결실 혹은 좌절'의 갈림길이 등장한다. 결말 부분이 '결실' 혹은 '좌절'이 될지는 '위기'에서 '절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위기와 절정의 과정이 사회적 '혈 자리'에 해당한다. 혈 자리를 찾으려면 '위기'를 주의깊게 관찰해야 한다.
``준비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기회다``
위기는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A. 자연적, 환경적 변화에서 오는 외부적인 위기
B. 특정 세력들의 힘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위기
C. 내부 분열로 발생하는 위기
첫번째, 자연환경적 변화에서 발생하는 위기는 항상 존재한다. 지진, 태풍, 쓰나미, 황사 등.... 자연환경적 변화는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발생을 억제하기보다 대비가 필요한 분야다.
가령,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 같은 경우에는 발생을 억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국제적인 관계와 환경 변화가 엮여 있기 때문에 대비책을 중심으로 미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적응과 저항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자연의 변화에 저항을 했던 수많은 종은 멸종했다는 사실이다.
외부적 변화에는 대비와 적응을 중심으로 미래 흐름을 예상하고 반드시 이에 대한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두번째 , 세력들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위기는 인간이 만든다. 인간이 만든 위기는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어떤 목표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경쟁이 발생한다. '발단 - 전개' 과정을 거치면 힘이 축적되고, 축적된 힘은 '위기 - 절정' 단계에서 마찰을 일으킨다. 위기는 반드시 '발단 - 전개'과정에서 힘을 축적하는 방식과 성격 그리고 방향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위기 상황'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를 준비한 세력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반대로 위기를 준비하지 못한 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점차 세력이 흩어지고 기반이 무너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노부나가의 세력이 성장하는 과정을 떠올려보자. 오다가문은 이마가와 가문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신식 무기와 기습과 야전 중심으로 '발단 - 전개'과정을 거치며 힘을 축적한 노부나가 세력과 기존의 정석(규모와 형식)으로 '발단 - 전개' 과정을 보낸 요시모토의 힘이 덴카쿠 하자마에서 충돌했다. 이때 노부나가의 최대 위기는 '기습 - 야전'이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농성'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기습전으로 상대를 곤경에 빠뜨릴 계책들을 강구했다. 기습이 통하지 않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식 총포부대'라는 준비가 있었다.
요시모토의 경우 정석, 물량전이 통하지 않을 경우 '회군'외의 별다른 준비가 없었다. 노부나가의 플랜A는 그 속에서 다시 작은 a, b, c가 연결되고 교차하면서 돌아가는 방식이었고, 이에 실패했을 경우 '농성'이라는 대비책을 미리 준비했다. 반면, 요시모토는 정석적인 플랜A와 역시 교과서적인 플랜B가 있었다. 위기를 준비하는 태도와 전략에 따라 결과는 180도 변한다.
코다이인은 세력의 힘이 부딪치는 위기의 발생 과정을 미리 계산하고, 축적된 힘의 성격과 방향에 따라 향후 흐름을 달리 해석했다.
이에야스는 위기에 대한 준비에 있어 달인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이에야스가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보다 뛰어난 부분은 '위기 관리 & 준비' 분야였다. 이 때문에 다른 세력들이 위기 속에 힘을 잃어갈수록, 도쿠가와 가문은 더욱 기회를 살려나갈 수 있었다. 코다이인은 위기가 발생하는 영역과 성격을 잘 관찰하고, 준비를 철저하게 대비한 세력을 중심으로 흐름을 예상했다.
마지막으로 '내부 분열'로 발생하는 위기는, 상위 구조에서는 '리더십의 부재', 하위 구조에서는 '불평과 불만'에서 발생한다. 극과 극은 연결된다. 리더십의 부재는 곧 불평 불만으로 이어지고, 불평과 불만은 다시 리더십의 부재로 연결된다. 사회적 혈 자리는 '리더십 - 불평불만'의 연결고리에 있다. 따라서 어느 조직이나 사회의 흐름을 예상하기 위해서는 하위 구조에 있는 사람들의 불평 불만의 성격, 강도, 방향, 증감을 관찰한 후, 리더들의 비전, 방향, 자세, 대응책을 연결시켜야 한다.
작은 기업이지만 하위 조직원들의 불평, 불만사항이 없으면서 리더의 비전, 방향, 자세가 명확하다면 훌륭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다. 반면, 큰 조직이더라도 하위에서 발생하는 불평, 불만의 성격이 악질적이고, 방향이 어지럽고(방향이 일정하면 특정 세력이 주도하고 있지만 어지럽다면 실제 민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 강도와 증감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면 미래의 흐름이 곧 막혀버린다.
하위구조에서 발생하는 불평,불만 중에서 가장 질이 좋지 못한 경우는, '경제', 즉 먹고 사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민생 봉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항상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불평, 불만이 극에 이르렀을 때였다. 과도한 세금, 파탄난 경제정책, 무리한 동원령으로 발생한 불평과 불만은 반드시 리더십을 붕괴시킨다. 반대로 '자유'가 억압되더라도 '먹고 사는 것'에 별 문제가 없는 사회는 '독재', '공산주의' , '왕조국가' 등....을 떠나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리더십은 궁극적으로 불평불만을 어떻게 관리하고 방향을 제시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에야스는 다케다 신켄과의 전투에서 '불평불만'을 처리하는 기법을 몸소 터득했다. 전쟁을 좋아하는 백성은 없다. 다만 전쟁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에 백성들도 전쟁에 찬성할 뿐이었다. 다케다 신켄은 전쟁을 하는 도중에도 백성 구휼에 앞장섰다. 명분과 의리만을 앞세웠던 젊은 시절 이에야스는 신켄의 위기 관리 능력을 통해 불평불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크게 배웠다. 리더십의 모든 해결책은 구성원들의 불평과 불만 속에 있다. 코다이인은 넓은 인맥을 통해 민생의 불평과 불만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체크했고, 불평과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었던 이에야스를 점찍었다.
3 『 선의 VS 악의 』
최근 남녀갈등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남녀갈등은 예전부터 피할 수 없는 이슈였다. 문제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여자는 남자로 인해 살게 되고 남자는 여자 때문에 살게 된다. 이용을 당한다는 것은 결코 억울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다. 어차피 세상은 이용가치가 있는 것들로 돌아가고 있고, 이용가치가 없는 것은 살 의미를 잃어버리거나 도태된다.
하지만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것은 '선의'로 만난 경우에만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 악의와 악의가 만난 '이용가치'는 시대를 어둡게 하고, 난세를 만든다. 야마오카 소하치는, 이를 두고 선의를 '정열'로 표현했다.
``아무튼 한 가지 일에 정열을 기울이는 인간은 훌륭하다. 특히 남자인 경우, 야심이건 기예이건 병법이건 한눈 팔지 않고 하나의 목표를 추궁해 마지않는 모습에 무한한 매력이 깃들어있다. 한 가지에 정념을 다하는 모습은 위대하다.``
4 『인간의 욕구, 욕망이란 』
나가야스의 부인, 오코(코에츠의 여동생)는 치토세라는 기녀로 변장하여, 남편 나가야스를 접대한다. 일본의 종교를 손에 넣으려는 천주교 세력들과 다테 테루모토 그리고 오사카의 허수아비, 히데요리의 세력이 이에야스의 심복, 나가야스(오코의 남편)을 악의로 이용해버리면, 세상은 다시 혼란에 빠져든다.
야심가(다테 테루모토)와 신념가(천주교 세력) 실천가(나가야스,타다테루) 이 세명이 합심한 상태에서 명분을 위한 도구(히데요리)가 걸려들면 여지없이 새로운 흐름이 발생한다. 오코는 평화를 저해하는 새로운 흐름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야심가-신념가-실천인" 세 가지의 축에서 실천인을 자처하고 있는 남편, 나가야스를 저지하려 노력한다.
이에야스가 이룩한 평화를 뒤엎는 행위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관해 야마오카 소하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욕구로써 표현한다.
``나가야스 :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
상대를 애무한다는 것은 같은 실망과 후회를 되풀이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알고 있으면서도 싫증도 내지 않고 잇따라 건드리고는 또 후회를 한다..... 그런 식으로 인간 육체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화가 난다. 별로 색다른 것은 없다. 이것도 저것도....
물론 인간에게 갈증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동시에 여러 가지 불안의 싹이다. 물을 마시고 싶다면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갈증이고 여자의 육체를 그리는 육욕의 갈증, 뭔가 먹지 않으면 지쳐버린다는 것은 피로에 대한 경계다.
나는 이처럼 일과 방탕 사이를 왕래하다가 결국은 늙어 죽을 뿐이란 말인가? 인생이란 하찮은 꿈만도 못한 덧없는 것이란 말인가. 모두 똑같다. 마찬가지야 모두들.``
나가야스의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결국 인간은 일과 방탕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다가 결국 심장이 멎으면 생이 끝나는 것인가? 성인들은 나가야스의 질문에 '예절'을 주장했다. 예절이 없다면 인간 세상은 동물들의 세계와 같아진다. 예절이 없으면 의식이 충분해도 그 넉넉함을 알지 못하고,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공자가 군자를 내세워 소인을 경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인이 예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분에 넘치는 재물을 가지면 자칫 죄를 짓기 쉽다. 히데요시가 넉넉하게 재물을 뿌리며 얻은 장수들이 서로 분별력을 잃고 물어 뜯은 이유는 '예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질로 이뤄진 인간의 욕망은 결국 내부 결속을 저해하며, 분열의 씨앗이 된다.
의식주가 충분하면서도 국가가 무너진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리더는 조직원들을 단순히 부유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훌륭하게 조직을 이끌어갈 수 없다. 사람들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예를 기르지 못하면 사상누각이 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예'를 기준으로 탄생했다. 부자가 먼저 예를 지키는 국가나 조직은 꾸준히 결실을 맺는다. 반면, 예절이 없는 자가 부를 이루고 욕망을 발산하는 조직과 국가는 순식간에 기반이 무너진다. 히데요시는 이 원리를 깨닫지 못했고, 이에야스는 깨달았다. 히데요시는 누구하고라도 어깨를 두드려대며 이야기를 나눴고, 걸핏하면 상을 내렸다. 히데요시의 활달한 성격 아래 사람들의 방종과 낭비벽은 커졌고, 이는 무엄하고도 대담한 씨앗을 뿌렸다.
``부유하게 하는 일과 예절을 병행시키지 않으면 부가 부가 되지 않는다``
5 『 어른의 성장과정 』
이에야스는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을 3단계로 일축했다.
1단계 :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수준
2단계 : 사사로운 마음을 버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수준
3단계 : '세상'과 '나'라는 존재의 차이를 망각하는 수준
이에야스가 주장하는 인간 성장설을 간단하게 압축하면, 세상과 '나'라는 존재를 동일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이는, 한 톨의 쌀알에도 우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통찰과 일맥상통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어린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부모에게 떼를 쓴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생각이 깊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만 생각하는 수준이다. 이에야스가 말하는 1단계이다.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면 부모 심정을 깊이 이해하는 단계가 시작된다. 자식들의 필터없는 욕구를 보면서,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부모님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한다. 욕망에 눈이 먼 타인을 보면서 자신을 평가하는 단계가 이에야스가 말하는 2단계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TV속의 어르신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문득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여러가지 후회와 감회가 돌면서 주변의 어르신들이 있으면 괜히 안부를 묻는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남에게도 소중하고, 우리는 모두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운명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에야스는, 사람의 성장이 3단계에 이르면, 세상과 나의 구분이 없어지는 상태로 설명한다. 일명 사람은 원래 일체라는 것이다.
이에야스 : ``거목의 가지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일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는 것일세. 치우치지 않고 자라는 것만이 거목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좀더 요약해서 말하면 모든 사람을 구별 없이 사랑한다. 이것이 실은 하늘이 정하신 성인의 길이야.``
이에야스의 사람 일체설은 결론적으로 그를 다시 위험에 빠뜨렸다.(일본에 전파된 종교세력을 키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사상은 곧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에야스의 철학과 '종교'와 차이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종교에 관한 한 이에야스의 철학은 결점이 되었다.
노부나가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여 어느 정도 색다른 활동이 아니면 곧 싫증을 내는 버릇이 있었다. 그 때문에 부하에게 배반을 당하는 결점을 드러냈고, 히데요시는 큰 그림을 웅장하게 그리고 행동하는 능력이 발군이었지만 허장성세가 심했기에 아부하는 자들에게 넘어갔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에 비해 결점이 적었지만 그의 사람 일체설은 결코 종교를 뛰어넘을 수 없는 허점을 보였다.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 군주가 종교라는 기호에 너무 심취해버리면 전국이 사이비 교단처럼 변해버린다. 이에야스의 큰 생각은 말년에 이르러 너무 종교와 차이가 없어졌고, 이는 이에야스의 위대한 생각에 있어 유일한 결점이었다.
2019. 4. 13.) 에서 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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