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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더건 교수가 말하는 전략적 직관 / 번뜩이는 아이디어 원한다면 당장 브레인스토밍 때려쳐야

modest-i 2019. 12. 15. 14:26

우르르 앉아 머리맞댄 회의선 절대로 혁신전략 나올수 없어
창의성 마지막 퍼즐 맞추려면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몰입후
완전히 새로운 발상 끌어내야 여기서 나오는게 `전략적 직관`



윌리엄 더건 교수가 말하는 전략적 직관

<사진 제공=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사진설명<사진 제공=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가 영어사전에 들어온 건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

윌리엄 더건 교수가 `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이라는 개념을 창안하게 된 출발점은 바로 `이 단어가 왜 이리 늦게 등장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Strategy(전략)`은 1810년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작전을 짠 전투에서 등장했고 영어로 편입된 언어다. 나폴레옹이 군사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처음 부임한 곳은 프랑스 남부 해안가 툴루즈. 영국군이 주 요새를 점령한 곳이었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의 역사적 사례를 토대로, 주 요새를 총공격해야 한다는 지휘관의 말을 반박하며 주변의 작은 요새를 하나 장악하고 작은 대포로 겨누고만 있어도 영국군은 퇴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폴레옹의 이 전략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더건 교수는 나폴레옹이 이처럼 역사적 사례를 수집하고, 마음을 비우고 문제에 집중한 뒤 섬광과 같은 통찰력을 발휘해 전략을 실행에 옮긴 과정을 연구했다. 그의 `전략적 직관`이라는 개념은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당연히 기업 간의 끝없는 전쟁과 전투가 펼쳐지고 있는 지금, 현대 기업조직과 경영전략에 도입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2년 만에 다시 인터뷰한 더건 교수는 좀 더 치밀하게 `전략적 직관`이 조직에서 꽃피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매일경제 MBA팀은 이틀에 걸친 그의 강연과 뒤이은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해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직관`이란 단어가 여전히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진짜로 과학인가.

▶그렇다. `전략적 직관`이라는 개념을 만들면서 다양한 과학 분야, 특히 뇌과학 분야를 많이 공부했다. 뇌가 한 사람에게 일어난 경험을 어떻게 저장해 놓고 그 기억이 필요할 때 어떻게 튀어나와서 조합되는지를 알게 됐다. 보통 어떤 분야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건 대부분 기억의 단순 조합이다. 나는 이걸 전문가적 육감 혹은 전문가적 직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위대한 혁신가ㆍ창조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걸 알게 됐다. 기억의 조합에 하나를 더 얹어서 완전히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이다. 이게 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제7의 감각`으로 번역된 전략적 직관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스티브 잡스가 사용하기 편한 인터페이스를 고민하던 찰나에, 지식의 조합에 제록스의 그래픽 유저인터페이스가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너무 유명한 사례여서 다시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벨트로 상징되는 `포드주의`를 도축장의 원리를 도입해 완성하게 된 과정, 하워드 슐츠가 이탈리아를 방문해 레스토랑 설치기기 박람회에 오가면서 본 에스프레소 기계를 들여와 스타벅스 커피숍의 개념을 완전히 바꾼 것, 이게 다 전략적 직관에 의한 것이다.

좀 풀어 설명하면 이들은 모두 전략적 직관이 탄생하는 네 가지 단계를 밟았는데, 모두 사업을 추진하면서 해당 사업 분야 지식을 갖고 다른 성패사례를 열심히 수집했다. 당연히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개선점에 대해 혁신해야 할 부분을 끝없이 화두로 삼았고 마음을 비운 채 완전히 몰입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혁신의 마지막 조각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견했다. 섬광처럼 번뜩이는 통찰력이 나왔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여기에서 순수한 자신의 창조물은 없다. 다 남의 것이지만, 기막히게 조합해냈고 `이렇게 조합하면 되겠다`는 통찰력을 얻었다. 이건 정말 뇌과학의 영역이다. 어느 순간 뒤통수를 치는 듯한 번뜩임, 바로 그런 뇌의 작용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기에 `직관`을 강조한다는 것이 경영자들에게는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다른 경영전략도 많지 않나.

▶시나리오를 엄밀하게 짜고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하는 경영의 다른 기법들을 관두라는 게 아니다. 앞의 것들은 모두 분석을 토대로 한 것이다.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흐름을 파악하고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써두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진짜 미래 성장을 위한 아이디어, 혁신을 위한 전략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과거를 열심히 관찰한 데이터와 자료, 이에 대한 분석에서 `창조성`이 바로 나올 수 있겠는가? 정말 재미있는 건, 다들 열심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과거를 돌아본 뒤에 `이제 아이디어를 내자`면서 브레인 스토밍을 하고 있는 점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브레인 스토밍은 절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다들 `브레인 스토밍`은 좋은 아이디어 창출 도구로 보는데.

▶그게 틀렸다는 거다. 브레인 스토밍이라는게 원래 좌뇌와 우뇌 구분법에서부터 시작된다. 금요일 오후 모두 모여서 좌뇌는 잠깐 떼어놓고 창의적이고 직관적인 우뇌로만 얘기해보자는 건데, 실제 사람들이 얻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샤워실이나 화장실, 조깅코스에서 나오지 우르르 떼지어 앉아서 벌이는 `브레인 스토밍` 회의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단 창의력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 기존에 해오던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바로잡고 질문을 던질 때에는 힘을 발휘한다. 그게 전부다. 세계적인 컨설팅사 홈페이지나 경영혁신 관련 서적을 많이 훑어보니, 다들 과거를 분석하고 기업의 현재 상황과 시장 환경을 분석하는 나름의 도구와 프레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아이디어 창출, 전략 제시 부분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더라. 그저 `브레인 스토밍`하라고만 돼 있다. 브레인 스토밍으로 성공한 사례 자체는 별로 제시하지도 못한다. 브레인 스토밍에 대한 맹신부터 버려야 한다.

-브레인 스토밍을 대신할 전략 창출 방법은 무엇인가.

▶GE에서 활용했던 `인사이트 매트릭스`방식이 있다. GE가 엄청난 대기업이다보니 가능했던 방식인데, 관리자 교육기간에 전 계열사 직원들의 경험을 토대로 특정한 문제에 대해 2주 동안 고민해서 20~30명씩 되는 사람들이 하나씩 사례나 아이디어를 제출한다. 그 아이디어와 사례를 조합하다보면 말 그대로 기가 막힌 조합으로 하나의 전략적 직관에 의한 창조적 전략이 탄생하는 방식이다.

GE에서 1990년대 후반 가전제품 온라인 판매를 도입할 때 문제를 이 방법으로 해결했다. 당시 GE는 부상하는 전자상거래를 무시하자니 미래를 대비할 수 없고, 당장 도입하자니 기존의 대형 판매점과의 관계 악화가 걱정되는 일종의 진퇴양난에 처해 있었다. 크로톤빌에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관리자들에게 이 문제를 던졌다. 물론 늘 GE가 교육과정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였다. 아이디어를 조합해보니, GE금융 쪽 계열사 직원들이 재미있는 사례를 내놨다. `직원만 가입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있다는 얘기였다. GE 최고경영진은 곧바로 `직관`을 얻었다. 전 GE 계열사 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만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엄청난 직원 숫자이므로 사실상 진짜 대중 판매와 비슷해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미리 준비해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판단이었다. 또 대형 판매점에는 `직원 복지 차원의 한정된 판매`임을 강조하면서 마찰을 피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 전형적인 4단계가 보이지 않나.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사례를 수집하고, 2주간 함께 몰입하며 `통찰력`을 얻어 실행하는 전략적 직관의 4단계가 이렇게 인위적으로도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GE방식 외에도 CEO가 조직의 전략적 직관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GE의 `인사이트 매트릭스`만이 정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이처럼 브레인 스토밍 이외에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들을 찾아봐야 한다. 때로는 어떤 직원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사례를 조합해 뛰어난 전략을 들고 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CEO가 질문을 잘 해야 한다. 그게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면서 보고서를 `수치`로 제시하라고 주문하면 안 된다. 그때 대부분은 포기한다. 이때 관리자나 경영자는 그 직원에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러면 그 직원은 자신이 역사적 사례를 어떻게 모았고 어떻게 조합했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그게 잘 설명되고 있다면 그건 좋은 아이디어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조직에 `전략적 직관`을 활용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들고 나타나는 직원이 늘어날 것이다.



■ He is…

기업에서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업무를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전략적 직관` 등 다수의 저서를 쓰며 아이비리그 명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됐다. 그는 군사전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와 자신의 개념을 만들었지만 저서가 큰 인기를 끈 뒤 오히려 미 육군으로부터 자신들의 전략을 검토해달라는 요구를 받았을 정도로 `경영`과 `군사`를 넘나드는 `전략의 대가`가 됐다. 대표 저서로는 `나폴레옹에게 떠오른 섬광 같은 통찰:전략의 비밀`(2002년), `성취의 기술:성공의 진짜 비결`(2003년), 국내에 `제7의 감각`으로 번역된 `전략적 직관:인류 성과에서 창조적인 불꽃`(2007년) 등이 있다. 현재는 자신의 `전략적 직관`개념을 실제 경영현장에서 창출해내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면서 `창조적 전략`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뉴욕 = 고승연 기자]